나침판

행적

by 손진일

어느 선배의 지인은 돈을 모으는 것이 유일한 취미라며 돈에 관련한 활동을 제외하고는 다른 일에는 전혀 관심 없이 취미생활마저 돈 든다고 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부호인 워런 버핏이 점심을 햄버거로 먹는다고 들었다. 그의 자동차와 주택은 늙은 모습처럼 낡고 오래됐다. 딸이 아빠의 안전을 염려해서 신차를 구입했다고 하니 내가 보기에 그는 사치품을 사거나 혹은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 돈을 쓰는 일에는 관심도 없을 뿐 아니라 그런 능력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돈 버는 일을 하나의 게임처럼 즐기는 것 같다. 스티브 잡스는 거실에 가구나 인테리어를 들이지 않고 말끔하게 치워진 빈 공간을 선호했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심플 더 베스트라는 광고 카피 라이트가 생각난다. 존리라는 국내 유명 주식투자전문가는 커피 마실 돈으로 주식을 사라고 권유한다. 젊은이들에게 노후를 대비하라는 충고의 말이다.

이들은 돈 혹은 일에 에너지를 쏟으며 살거나 살았던 영웅들이다. 그러나 이들로부터 금융 메커니즘이나 일하는 태도 말고는 달리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가 있을까 싶다. 물론 세상의 논리로는 훌륭한 삶의 태도다. 그리고 이왕이면 늙어 편안하게 살다가 삶을 마감하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그런데 과연 죽음 앞에는 편안한 조건 혹은 그 반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니 굳이 노후의 안락함을 위해 매몰되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젊었을 때 하지 않았던 노역을 늙어서 숙제를 마친다는 심정으로 하면 속 편하다. 사는 방법이 저마다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가 사는 목적이 과연 무엇이며 삶과 죽음의 관계는 어떠한 지 한번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나이가 많아지니 여러 가지 생각하는 것이 예전과 달라지고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그동안 아등바등 살아온 행적을 돌아보면 대부분 기억이 희미하거나 아니면 별다른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저 부끄럽기만 하다. 흥분하던 많은 것들의 의미가 퇴색되거나 사라졌다. 노화현상으로 사라지는 것이라면 진정한 가치가 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가 스스로 되물어본다.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추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결실이 보이지 않아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평생 동안 그토록 집요하게 추구하던 능력계발의 결과물은 실로 초라하다.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떠오른다. 애썼지만 뼈다귀만 남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번 쓴 글은 다시 안보는 습성이라 글쓰기 실력이 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굳이 내가 글을 남겨 타인들에게 영향을 끼치려는 동기가 혹은 욕심이 덜해서 편안함이 있다. 원고료를 받지 않고 정기적으로 글을 올리는 교민지는 나의 즐거운 놀이터다. 워런 버핏이 사치품을 쟁여두려고 돈벌이를 하지 않듯 나도 놀 수 있는 마당이 있어서 좋다. 장소를 제공해 주신 배려에 감사한 마음이다. 때때로 독자분이 연락하면 즐거운 소통이 있어서 더 좋다.

사진도 열심히 찍어 폰에 저장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애틋한 추억의 사진도 담아 놓으면 관심밖이다. 그렇다고 내가 살아온 흔적들을 훑어보기 싫어할 만큼 무의미하고 재미없이 살았는가 하며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열정을 가지고 살았고 비록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어도 나름 인생의 기어를 제법 올려가며 살아왔다.

그런데 무언가 허전한 이유는 무슨 까닭일까? 게다가 어딘가 향방을 제대로 모른 채 달렸다는 느낌마저 든다. 왜?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버나드 쇼의 비석에 있다던 글이 생각난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모르지만 말이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고 미루면서 사는 것이 대부분 인생의 모습이다.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내게도 내면에서 치열하게 다투는 쟁점이 있다. 일종의 부끄러운 성품상의 약점을 말한다. 우선 지혜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성급한 성품이다. 나머지 하나는 변명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변명은 자기 합리화를 자행하며 타인과의 관계에 나쁜 영향을 주며 인생살이에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아마도 어렸을 때 또래 아이들보다 조금 더 힘든 환경에서 성장하며 자생한 자기 방어기제가 가져온 후유증은 아닌지.

약은 게 밤눈 어둡다는 말이 생각난다. 어머니가 생전에 자주 하셨던 말이다. 얍삽하게 살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어머니께서 나를 키우면서 약점을 정확히 꿰뚫어 보셨나 보다.

참으로 좋아했던 옛 여자 친구의 어린 조카가 어느 날 갓난아기 동생의 분유를 몰래 먹고 난 것을 보고 '너 동생 분유를 뺏아먹었구나' 하니 깜짝 놀라며 ' 이모 어떻게 알았어?'

귀여운 대꾸를 들으니 웃음이 터졌다. 입 언저리에 잔뜩 묻은 분유 가루는 생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자신의 잘못 보다 이모의 탁월한 능력이 그 아이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아마도 나라는 인생도 지혜가 어린 조카와 비슷한 수준이겠지. 남들은 다 아는 약점을 정작 나 자신은 모른 채 설치고 다녔던 바보 얼간이 천치였다.

비록 못난 삶을 살았지만 현재 내가 누리는 즐거움은 결코 작지 않다. 신앙을 가진 후 점진적으로 향상되는 삶의 태도가 희망을 준다.

돈과 능력 등 나를 노예처럼 끌고 다니던 우상들이 그동안 삶에서 차지하던 영역이 대폭 축소되며 따라서 그것들의 영향력 또한 상대적으로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늙는다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과정을 위한 도우미 역할을 하는지 모른다.

돈은 가용할 수 있는 만큼 있으면 된다. 없으면 나를 세상으로 보내서 살게 해 주시는 분께 구하면 된다. 오직 믿음만이 황폐한 세상에서 남은 삶을 평온하게 지켜준다.


“Ask, and it will be given to you; seek, and you will find; knock, and it will be opened to you. (마태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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