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초기엔 내 삶이 너무 버거워 친정에 오면 무조건 드러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특히 명절은 이틀 내내 시어머니 옆에서 시중을 드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탈탈 털렸다. 눈치껏 필요하신 걸 찾아드리고, 설거지감이 보이기 무섭게 해치워도 돌아오는 건 섭섭한 말 한 마디였다. 그렇게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친정에 오면,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설거지는 당연하다는 듯 안하고 친정에 있는 내내 누워만 있다가 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요즘은 다들 시댁 설거지 안 한다는데, 나는 왜 시댁에선 그렇게 기를 쓰고 했으면서 엄마 앞에서는 이 모양일까
언제부턴가 친정에서 설거지도 안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주방에 조금씩 발을 들이기 시작했는데 엄마랑 동생의 반응은 번잡스러우니 그냥 거실로 가라는 거였다.
그러다가 언젠가 부터 엄마가 안계시면 설거지는 당연스레 하고있다.
문제는 이거다. 엄마가 안계시면 !
엄마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타입이다. 언제나 할 일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이고 계신다. 시골집에 가시면 텃밭이며 아궁이며 날쌘 다람쥐 처럼 쌩쌩 옮겨 다니신다. 반대로 나는 한 번 엉덩이를 붙이면 잘 일어나질 않는다. 충분히 쉬어야 비로소 움직이는 사람이다.
결국 말로는 "엄마 내가 할게"라고 하고선 몸은 여전히 바닥에 붙어 있다. 엄마가 앉아서 좀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는데 엄마 성격은 또 그게 되질 않으니...
오늘은 엄마 생신이시니 당연히 딸인 내가 움직여야 하거늘
아침, 점심, 간식 설거지까지 엄마가 계속 하셨다.
물론 나도 재빠를 때가 있다. 버스에서 빈자리 찾을 때, 주차장에서 빈자리 찾을 때는 누구보다 재빠르다. 그런데 왜 엄마의 주방 앞에서는 이토록이나 속도가 느린 걸까. 어쩌면 엄마 앞에서는 영원히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어린 딸'이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이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년엔 호텔 노천탕의 따뜻한 물속에 엄마의 분주한 시간을 담가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