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나서 가장 어려웠던 건 엄마들과의 관계였다

by eun

첫째를 낳고 조동 모임을 일부러 만들지 않았다.

만들면 내 아이와 다른 아이를 비교하고 거기에 힘들어 질 것 같아서 그러지 않았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첫째를 키우면서 뭔가를 찾으러 인터넷 카페에서 보는 조동 엄마들 모임 얘기를 볼 때마다 안만들길 잘했다. 스스로 으쓱하기도 했다.


혼자 아이와 사랑에 빠져 육아하는게 힘들기도하고 행복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좀 크자 뭔가 같이 육아할 대상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나도 성인이랑 대화하고 싶었고 내 이야기를 공감받고 나누고 싶었다.


아이가 4살무렵 도서관 수업에서 가정보육하는 엄마 몇 분을 만나게 되었고 아이들이 자연스레 어울리는걸 보며 모임이 만들어졌다.


너무나 절실 할 때 만나게 된 인연이어서 그랬을까? 너무나도 소중한 내 아이와 연결된 모임이라 그랬을까? 모임 시간을 의미있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일주일에 한 두번은 근교로 나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했고 아이의 생일이면 아이들 선물을 다 챙겨가서 누구 하나라도 소외되지 않게 신경썼다. 우리집에 초대해 식사에 간식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너무 많은 마음을 써서 였을까?

둘째가 태어난 뒤로 모임에 가면 나는 둘째를 보고 있어야 했고 다른이들은 서로의 얘기를 나누기에 바빴다. 몸은 같이 있는데 마음은 혼자였다. 내 마음은 소외감이란 단어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일대일의 만남은 괜찮았다. 그렇게 괜찮았다가 마음상했다가를 반복하다가 혼자 상처받을 때마다 2-3주는 힘든시기를 지나야했다.

정리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둘째를 낳고 둘째에게 집중했었어야 했다.

둘째를 낳기 전의 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욕심이 나 스스로를 소외감덩어리로 느끼게 만들었다.


첫째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각자 다른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인연은 자연스럽게 멀어졌지만 몇 달에 한 번 만날 때마다 아이와 함께 있는 난 이야기 중심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마음은 친정이 가까이 있는 아기 엄마들을 더 부러워하게 만들었고 관계욕구에 갈증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단점을 찾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단점으로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 단점이 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한 엄마의 아이 교육에 대한 열정이 처음엔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그 마음은 교육에 욕심많은 엄마로 바꼈다. 한 엄마의 섬세한 아이케어는 예민함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거리를 두기 위해 그들의 단점을 찾았고 어떻게든 어울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 그때는 그게 내가 살 길이었다.


육개월만에 모임에 다시 나가게 되었다. 그 사이 몇 번의 자리가 있었지만 나가지 않았었다. 이번에도 못가는 상황이 되면 말고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얘기의 흐름이 나가는 쪽으로 연결되었다. 솔직히 미련인지 무엇인지 나가서 한 번 더 확인하고 이제 정말 정리하자 이 마음도 있었다.


집에서 모이게 된 모임은 아이가 잘 놀 수 밖에 없는 환경이어서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집 주인은 손님들 챙기랴 계속 바빴고 나는 가만히 앉아 챙겨주는 것들을 넙죽넙죽 받아먹고 있었다. 내 모습이 한심하고 웃음이 났다. 그렇게 배려받지 못함에 억울해하고 섭섭해했으면서 나 또한 똑같이 배려하지 않고 나 하고싶은 것만 하고 있었다.


그 동안 혼자 마음정리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썼는지 각자의 엄마를 보는 마음도 좀 편해져 있었다. 비꼬는 쪽으로 보기 보다 아 이엄마는 원래 이런 성향이었지라고 받아들이고 보는 마음이 생겨있었다.


사람은 다 자기 필요에 의해서 이기적인 마음에서 관계를 맺는다고 한다.

나도 똑같이 이기적인 마음에서 출발해 놓고 그 이기적인 마음을 채우려 헌신을 다해놓고 그 헌신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억울해하고 있었다. 그래놓고 나 또한 똑같이 이기적인 모습으로 돌려주고 있었다.


스스로 상처속에 갇혀있어놓고 상대가 상처줬다고 관계를 끊었으면 계속해서 상처속에 갇혀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예전처럼 그렇게 열정을 쏟으며 관계를 만들겠다는 마음이 있는건 아니다. 이제는 내 마음을 아낄줄 알게 되었다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이때까지의 나는 관계에 최선을 다해 맞춰주고 내어주는 사람이었다. 그 마음을 돌려받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아니었다. 주었으면 바라는게 사람마음이었다.


이제야 성숙한 관계를 향해 한 걸음 내딛은 기분이다.


작가의 이전글엄마의 생신날, 나는 또 엉덩이를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