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아이를 가정 보육한다는 건 첫째를 키우던 시절과는 또 다른 환경이었다. 5년 전만 해도 도서관이나 짐보리에 가면 가정 보육을 하는 엄마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엄마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도서관의 4살 프로그램은 어린이집이 끝난 뒤 참여할 수 있는 시간대로 바뀌어 있었고 짐보리도 마찬가지였다.
수업이 간혹 있더라도 예전에는 수업이 끝나면 엄마들과 아이들이 잠깐 어울리다 돌아갔는데 지금은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첫째 때는 함께 육아할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외로움이 사라졌었다. 하지만 둘째를 가정보육하면서 그 외로움은 다시 찾아왔다. 가끔 가정보육하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아이 나이 차이가 많아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엄마들끼리, 아이는 아이들끼리 동네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던 아주 오래된 시절로 돌아가 육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아이 네 살이 되며 어린이집을 보낼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네 살은 내가 아이에게 주었던 사랑이 아이의 말로 다시 돌아오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첫째가 두 단어를 연결해 말하기 시작하던 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했던 그 말을 잊지 못한다.
“엄마 예쁘다.” 그날 느꼈던 당황스러움과 가슴의 반짝임은 지금도 마음 깊이 남아 있다.
어제는 둘째랑 같이 부둥켜 안고 "엄마, 아빠, 형아한테 와줘서 고마워. 아주아주 많이 고마워"라고 했더니 둘째가 "고마워?"한다. "응. 고마워 아주아주 많이"했더니 "아빠가 도와줬어."라고 한다. 갑자기 아빠가 도와줬어라니 아이는 무슨생각이 들어 이 말을 했을까? 아빠가 도와줘서 너가 우리에게 온 게 맞긴 맞는데... 자세한건 모르지만 웃음이 났다. 아이가 더 사랑스러워 보인다. 앞으로 또 어떤 말들을 해줄 지 기대가 된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네 살은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시기로 느껴진다. 첫째를 키우며 천천히 크라고 늘 말하던 나와 달리 남편은 언제 크냐며 빨리 크라고 말했다. 남편도 이제는 이 시기의 소중함을 아는지 둘째에게 너무 빨리 큰다며 그만 크라고 한다.
결국 힘들어도 순간 순간 빠져드는 행복감에 나는 어린이집을 보내지 못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게 꼭 선생님께 아이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빼앗기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날 너무 지치면 다시 어린이집을 진지하게 고민하지만 숨통이 트이면 다시 마음을 접는다.
이렇게 말하지만 가정보육의 외로움은 아이의 사랑스러움만으로 다 채워지지는 않는다. 작년 한 해는 온라인 모임에 많이 의지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건 매주 화요일 밤 육퇴 후 열리는 독서모임이었다. 같은 사람들과 매주 만나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각자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면 다음 날은 정말 좋은 영양제를 먹은 것처럼 기운이 났다. 그 힘으로 또 한 주를 살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그 모임이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어들었다. 마음이 다시 허전해졌다. 그때 내게 온 책이 『렛 뎀 이론』이었다. 책에서는 우정을 만드는 데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근접성, 타이밍, 에너지. 가까운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런 조언도 나온다. 딱 1년만 노력해 보라고. 자주 마주치는 사람에게 먼저 인사하고 미소를 건네고 공동체에 참여해 보라고.
그 글을 읽고 나는 바로 당근에 동네 아침 루틴 모임을 만들었다. 가정보육을 하는 세상은 생각보다 외롭다.
하지만 그 외로움 덕분에 나는 온라인 독서모임을 시작했고 오프라인 독서모임도 열게 되었다. 외로움 덕분에
하루를 더 잘 보내기 위해 루틴 모임에 들어갔고 이번에는 그 모임을 직접 열게 되었다.
일 년 뒤 이 작은 노력들이 또 나를 어디로 데려가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