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1

'나'는 잘렸다.

by 알럽윤

1. '나'는 잘렸다.


8월 여름휴가를 다녀오고 난 뒤 대표님이 모든 직원들에게 면담 요청을 하셨다.


"모두들 들어오세요. 대화 좀 합시다."


처음에는 이 한마디를 들었을 때 좀 짜증이 났었다. 왜냐하면 이미 나는 월급 5개월이 밀려있었으며 대표님은 다른 대표님과 달리 믿음을 주거나 리더로서의 자격이 없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흔히 '갑질' 또는 '이기심'만으로 꽁꽁 뭉쳐진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표님 방에 들어가 앉았다. 그리고 모든 직원들이 대표님이 '무슨 말을 할까?' 하는 눈치들이었다.


"제가 회사를 접으려고 합니다. 그러니 8월 31일까지 다 정리하고 나갔으면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갑자기 회사를 접겠다는 대표님의 말에 다들 당황했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밀린 내 월급은 어떻게 되는 건가 하는 내 월급 걱정도 되었다.


"제가 돈이 생기면 월급을 드리겠습니다."


대표님의 마지막 말에 너무 어이가 없었다.

이 사람 지금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인가?

월급쟁이들은 매 달 들어오는 월급으로 사는 걸 모르는가?


대표의 폭탄 같은 통보에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대표님 방에서 나왔다.

다들 하나 같이 어이가 없어하는 분위기였다.

그중 몇 명은 화가 났있었고 또 다른 몇 명은 체념한 듯 있었다. 그리고는 다들 취직을 알아봤다.

그중에 나도 바로 취직 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속으로는 알아봐야지 하면서 검색도 해보지만 물경력인 나에게는 딱히 알맞은 자리도 없었다.

한 10분 정도 모니터를 보면서 내 미래에 취직 자리를 보고 있을 때 대표님 호출이 있었다.


"윤주임, 잠깐만."


나는 대표님의 방에 앉아서 대표님이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


"윤주임은 추석 전 주까지는 나왔으면 하는데..."


이럴 줄 알았다. 현재 재무를 맡고 있는 '내가' 필요한 것이다. 휴대폰과 컴퓨터를 할 줄 모르는 대표님이기에 인터넷 뱅킹이나 법인 세무조사가 걱정이 되신 거다.


"일단 체불된 월급은 어떻게 주실 건가요?"


내 말에 대표님은 노발대발하셨다. 내 말에 노발대발 한 이유가 추석 전까지 나올 수 있는지를 묻는 건데 왜 월급 이야기를 해서 기분이 나빴단다. 말이야? 방귀야?


억지 논리. 강압적인 태도. 뻔뻔함. 한마디로 완전체였다.


"제 입장에서는 월급을 정리해 주셔야 선택을 할 수가 있죠."


내 의견을 정확하게 표현했다. 그런 내 말에 언제까지 해서 월급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표님의 별명이 '회피형 사기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약속'을 받았다는 마음에 불안감이 조금 없어졌다.

그리고 현재 11월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까지도 급여 2개월분이 미지급이 됐다.


"추석 전 주까지는 힘들다. 3일 정도 나와서 정리하고 인수인계는 사모님께 하고 나가겠다."


내가 대표님께 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그런 내 말이 마음에 안 든 눈치였다. 하지만 5개월 동안 밀린 월급을 받지도 않는 상태에서 더 이상 해줄 마음도 없었다. 그리고 이미 잘린 사람에게 해달라고 말하는 건 양심이 너무 없지 않은가?


그렇게 대표님과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내 컴퓨터의 자료들을 정리했다.

대표님 빼고는 정이 많았던 회사였다. 정이 많고 서로 으쌰으쌰 하면서 지냈던 직원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대표님이라는 사람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무책임’한 사람이다.

무조건 ‘본인’이 최우선인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본인이 불편한 상황에 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 갑질‘의 표본이 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본인은 ‘이게 왜 갑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겪은 가장 황당한 일들은 몇 개를 적어보려고 한다.


첫 번째, 항공 수화물을 깜박했다고 찾아오라고 한다. 대표님이 출장으로 비행기를 탈 일이 있었는데 본인이 깜박하고 짐을 안 찾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그러니 나에게 전화 와서는 수화물을 찾아오라고 한다. 이게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본인이 항공 수화물로 붙여놓고서는 본인이 본인 짐을 잊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걸 찾으러 간 나는 항공사 직원을 만나 짐을 받았다. 그리고 그 짐은 골프가방이었다. 출장으로 간 강원도가 골프여행이었다.


두 번째, 회사에는 청소하는 업체가 있었다. 근데 청소업체의 청소 업체 실력을 못 믿겠다면서 외창을 청소하라고 한다. 심지어 방충망을 다 뜯어서 청소하라는 말씀이었다.

본인이 방충망이 너무 더럽다며 청소를 시킨 것이다. 처음에는 ‘업체에 말해 놓겠다.‘라고 말하니 ‘청소업체 실력을 못 믿겠으니 직접 해라.’라고 말씀하셨다.

얼마나 이 황당한 말인가? 결국은 차장님, 대리님과 함께 했다. 하는 내내 어이가 없었다.


세 번째, 이건 내가 겪은 일은 아니지만 과장님이 겪은 일이다. 차키를 주더니 업체에 맡기지 말고 직접 손세차를 지시했다고 한다. 심지어 대표님 개인 차량을 손세차를 하라고 한다. 봄에는 황사 때문에 2일-3일간 계속 지시를 하셨고 나머지 계절은 2주에 한 번씩 지시했다. 법인카드로 손세차 비용을 충당하라는… 한 번은 과장님이 거절을 했더니 과장님께 돌아오는 건 입에 담기도 힘든 욕이 이였다. 그 이후로는 과장님은 더 심한 갑질을 당하셨는데 대표님 차의 주유를 과장님께 시킨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표님은 자기가 스스로 주유를 한 적이 없었다.


네 번째, 법인 차량 중에 카니발이 있었다. 그 카니발은 대표님의 손님이 오시거나 직원들이 업무를 볼 때 사용하는 용도였다. 그렇게 사용하고 있던 차였는데 어느 날 대표님의 차량이 고장이 나서 카니발을 사용하신 적이 있었다. 근데 문제는 여기서다. 본인이 사용을 했으면 당연히 주유는 채워야 하고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하지만 대표님은 직원들을 시킨다. 한 번은 나에게 전화와 서는 카니발에 쓰레기가 있으니 정리하고 그 카니발 키를 내가 있는 곳까지 가져다주고 가라는 말이었다. 황당한 게 사무실에는 안 들어오면서 1분 거리에 있는 호텔 카페에 앉아서 일을 지시를 한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너무 물 흐르듯이 당연하게 지시를 내리는 모습에 황당할뿐였다. 그렇게 그 이후로도 1달에 한번 또는 2-3번 계속 지시를 내렸다.


다섯 번째, 직원들이 뒷수습합니다. 어느 날 대표님께서 직원 전체 회식을 하겠다고 한다. 근데 메뉴가 ’ 소머리 고기‘ 였다. 개인적으로는 잘 먹는 메뉴도 아닌 뿐더러 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그 메뉴를 선택한 대표님은 과장님을 불러서 여러 가지 지시사항을 내렸다. 바로 시장에 가서 직접 구매를 한 뒤 과장님이 직접 삶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식당에 가서 먹을 줄 알았던 직원들은 황당할 뿐이었다. 근데 여기서 더욱이 어이가 없는 것은 ’ 손님‘들이였다. 당연히 대표님 손님들이었고 그날 대표님 손님들께 서빙을 하고 음식을 하고 하는 것은 직원들이었다. 그렇게 직원들 회식이라고 말하더니 결국 본인들 손님을 다 불러서 본인 파티를 연 것이다. 그날 대표님 손님들은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가셨다. 그 다음날 직원들을 불러서 뒷정리하라는 대표님의 지시가 있었다. 그날 얼마나 황당하던지… 나는 먹지도 않는 음식들과 술병을 치워야 했고 다른 직원들도 다 똑같았다. 그날 이후 3명 정도 퇴사를 했다. 하지만 대표님은 퇴사한 직원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갑질이 있었지만 나열을 하려면 책 하나를 내야 할 정도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대표 밑에서 왜 계속 있었냐라고 물어본다. 회사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회사에서 대표님을 제외한다면 모든 게 괜찮았다.

직원들끼리 잘 으쌰으쌰 하며 서로 도와주는 분위기였다.

또한 가장 큰 장점은 내 두 번째 멘토를 만난 것이다.

내 두 번째 멘토는 바로 상무님이었다.


내 인생에 두 번째 멘토인 '상무님'을 만나서 회사일을 디테일 있게 배울 수 있었다. 한 단계가 발전 됐다는 걸 느낄 정도였다.

첫 번째 나 멘토에게는 전반적인 회사의 시스템 및 윗사람을 대하는 자세 등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디테일하게는 내 스스로가 알아야 했다.

하지만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 부분을 상무님을 만나서 많이 배운 것이다.

40년이 넘는 직장생활을 하시면서 배운 것들을 많은 걸 가르쳐주셨다. 그래서인지 헤어질 때 ‘딸 같아서 마음이 많이 쓰인다.’라고 아쉬워하신 상무님이었다.

그런 상무님께 나는 ‘상무님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감사의 표현을 했다.

상무님과의 관계를 보면서 인생에서 한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기회는 정말 소중한 거 같다.


그 이후 나는 3일 정도 회사에 나와서 인수인계를 해주었다. 사모님도 대표님과 같이 컴퓨터를 사용하시는 방법을 몰라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줘야 했다.

3일 후 인수인계가 다 끝난 뒤 사모님은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그 말은 크게 나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모님께 ‘솔직히 대표님을 원망한다.’라고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그런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아는듯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나에게 사과를 하셨다.


동료들 덕에 다녔던 회사였지만 대표님 때문에 회사가 싫기도 했다.

내 2년 3개월의 추억들이 깃든 회사였지만 회사가 망했다.

그렇게 나는 회사에 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