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다사다난한 직장생활
2. '나'의 다사다난한 직장생활.
"나 잘렸어. 엄마."
월급이 밀린 상태에서 회사에서 잘렸다고 엄마한테 먼저 전화했다.
처음 내 말에 엄마는 화가 많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다사다난한 내 직장 생활에도 걱정이 많으신 거 같았다.
"괜찮아. 금방 취업하겠지."
"그게 어디 말처럼 쉽냐?"
엄마는 화가 났다. 또다시 딸이 백수가 되어버렸기에 엄마는 속상함이 컸었던 것이다.
엄마의 마음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엄마만큼이나 나도 내 현재 상황이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났다.
왜 이렇게 내 직장 생활은 다사다난해야만 하는지... 남들은 잘 다닌다는 회사를 나는 왜 이렇게 오래 못 버티는지... 그저 내가 바보 같고 한심스러웠다.
나는 전공이 의료계열이었다. 학점을 따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했고 중고등학교 때는 못해도 중간만큼은 했다. 하지만 나는 의료계열 시험에서 3번이나 떨어졌다. 다른 친구들은 다 합격했지만 나는 떨어졌다.
처음에는 내가 실패자 같고 낙오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도 나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다.
마지막 국가고시 시험에서 떨어지고 난 뒤 나는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땄다. 1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고 1년 동안 열심히 한 덕일까. 아님 시험이 좀 쉬웠는지 다행히 합격을 했다. 그때 나의 마음은 '안심'했다. '이제 나도 일을 하면서 엄마에게 효도를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가장 컸던 거 같았다.
하지만 나는 바로 간호조무사로 취직은 하지 않았다. 간호조무사가 합격이 발표된 날 그때 '새로운 도전'을 제안하신 분이 계셨다.
카페에 단골로 오신 분이었다. 건축이라는 새로운 일을 하신 분이었는데 새로운 직원이 필요하다고 해서 먼저 제안을 해주셨다. 그분의 제안을 나는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제안이 '나'에게는 아주 큰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처음에 건축과 관련된 직업을 가질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좋은 사수분을 만나 하나하나 가르쳐주면서 하나하나 습득을 했다. 회사가 돌아가는 시스템, 회사에서 보고하는 방식, 상사를 대하는 태도 등 사수분께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히 가르쳐 주었다.
처음 회식 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를 처음 본 모든 직원분들은 걱정이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너무 어린 나이이고 (그때 당시 나는 내가 어린 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본인들의 말에 내가 상처를 받을까 봐 걱정이 크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고 모든 직원분들은 내가 잘 적응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그때 나는 너무 행복했다. 내가 생각을 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왜 어른이 되면 행동과 말을 조심히 해야 하는지 그 이유도 알게 되었다. 모든 행동과 말에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또한 나 스스로가 내가 성장했다는 걸 느꼈고 모든 주위에 사람들도 성장했다고 느낀다고 말하셨다. 그때 나는 자존감과 자신감이 다 최대로 있었다.
하지만 그 행복한 시간도 3년 이상 못 갔다. 흔히 말하는 사업의 실패였고 그렇게 우리는 여기저기 찢어졌고 난 또 백수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퇴사하고 난 뒤 한 달 뒤에 간호조무사로 취직을 했다. 동네 가장 유명한 안과였다. 하지만 내 자신감과 달리 오래 다니지는 못했다. 바로 '집단 따돌림 문화'때문이다. 심지어 실장님의 주도하에 집단 따돌림 문화가 계속되고 있었다. 실장님의 기분을 맞추지 않거나 기분을 상하게 하면 한 달 동안 왕따로 지내야 한다. 다른 선생님들과는 실장님이 없는 곳에서 이야기는 할 수 있었지만 실장님 눈치 때문에 그렇게 오래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그게 지쳐서 8개월 만에 나는 그만두었지만 이전에는 하루 만에 나와서 그만두거나 오전에 출근하고 점심시간에 퇴사한 사람도 있었다. 그분들은 실장님의 텃세를 알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한 사람 때문에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왜 여기서 퇴사한 직원들은 나중에 길거리에서 나를 만나면 모르는 척하는지 모르겠어."
왕따를 주도한 실장의 말이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역시 가해자는 본인이 하는 행동들을 기억을 못 하고 피해자만 그 기억을 평생 갖고 가지고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8개월 만에 안과를 퇴사를 했다.
안과를 퇴사하고 2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나는 모든 것이 최악이었다. 아침 7시에 아르바이트하러 갔다가 저녁 12시에 집에 들어오는 생활을 했다. 그저 어떠한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오랜만에 사수분께서 전화가 왔다. 본인이 부장님과 함께 인테리어 회사를 차렸으니 면접 보라고 연락이 왔다. 그때 나는 자존감과 자신감 다 바닥이었다.
"실장님, 예전에 제가 아닙니다. 많이 소심해졌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에 대한 기대가 있던 분이었기에... 그저 나 자신이 안 좋은 쪽으로 많이 변했다고 말하고 싶었던 거 같다.
"근데? 그게 뭐가 중요해? 나는 너여서 면접 보라고 하는 거야."
이 말이 얼마나 나를 위로했는지를 모른다. '너여서'라는 답변이었다. 사수분의 말은 내가 원했던 대답과 다른 대답을 해주셨다. (내가 원했던 답변은 아마도 부정적인 답변을 기다린 거 같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도전해 보자 라는 생각으로 면접을 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나를 챙겨주던 사수분의 품으로 돌아갔다.
너무 간절했기에 내게 손을 내밀어준 사수분께 너무 고마웠다.
처음에는 많이 주눅 든 내 모습에 사수분은 화를 내고 안타까워했지만 점점 나아지는 내 모습에 뿌듯해하셨다. 그렇게 즐겁게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많이 소심해진 나에게는 영업직은 안 맞았다. 영업직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다. 나는 잘 설명하는 거 같았지만 매번 혼나기 일쑤였고 컴플레인을 받을 때마다 스트레스가 폭발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영업직에 환멸을 느낄 때 또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제의가 들어왔다.
그 회사가 바로 내 전 회사.
그때는 영업직에 너무 환멸을 느껴서 그런지 결국에는 2년 6개월을 버티고 나왔다.
내가 영업직에 맞지 않는 사람인 걸 알고 있었지만 가장 큰 계기는 내가 어느 순간 사수분의 감정쓰레기통이 되고 있었다.
주변에서 사수분을 말릴 정도로 우리의 관계가 많이 안 좋아졌다. 하지만 난 그래도 그분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를 이해해 주고 나를 많이 걱정해 주신 분이기에... 그래도 마지막에 그분은 나를 걱정해 주었다.
그렇게 일주일 쉬고 바로 내 전 회사에 입사를 했다.
그렇게 1년을 지내고 2년을 지내면서 정말 직원들과 마음은 편안하게 다녔다. 그래서일까 월급이 밀렸을 때 몇몇 분이 퇴사를 하고 할 때 나는 퇴사를 하지 못했다.
제일 큰 문제는 백수가 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같이 지내는 동료들이 너무 좋았다.
마음 편히 일을 할 수 있고 서로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대표님은 우리와 다른 생각이었던 거 같았다.
갑질과 무례함으로 무장한 대표님은 우리의 밀린 월급으로 접대를 즐겼으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
그런 대표님께 반기를 몇 번이나 들었지만 결국은 잘렸다.
그리고 나는 다시 백수가 되었다.
내 직장생활을 돌아보면 3년을 넘지 못했던 거 같다. 흔히 말하는 물경력이 되어버렸다.
내 나이 이제 30대 중반... 내 미래가 어두워서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