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미키 17>에서 원작을 찢어버린 방법
화제의 영화다. <기생충>으로 국내 최초 칸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님의 신작.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는 영화다. 평일임에도 짬을 내서 후다닥 보러 갔다왔다.
'또 어떤 주제를 가져왔을까? 이 영화에서는 어떤 연출로 또 우리를 놀라게 해줄까?'
두근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핸드폰을 끌 정도로 초집중 상태를 유지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나서 든 생각.
'깔끔한데... 뭔가 달라.'
영화의 구성, 진행 방식, 스토리 모두 흠잡을 데가 없었다. CG도 다양하게 쓰진 않았지만 미키가 도착한 니플헤임 행성의 원주민 크리퍼를 표현하는 데 공을 들인 것 같고.(진드기를 크게 확대한 생김새인데 징그럽다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들고 귀엽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굳이 하나 집자면 중간에 미키를 유혹하던 여자가 굳이 마지막에 레즈비언으로 나와야했나 싶기도 하고. 뭐 해피엔딩을 만들기 위해 가장 외모적으로 임팩트 있었던 사람이랑 엮었다고 생각하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봉준호 느낌은 아니었다. 사회의 어두운 점을 조명하며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보여주던 그의 작품들. 이번 작품이 SF라길래 <설국열차>같은 느낌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봉준호 작품 중 가장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영화가 좀 재미가 없었다."
"흔한 SF 영화 같은데?"
내 옆을 지나가는 남자 두 명이 서로에게 던진 말이다. 물론 난 재밌었지만, 어떤 느낌으로 말하는 건지는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라는 의문이 샘솟았다.
다행히 영화관 아래에 서점이 있었고, 곧바로 원작이 있는 책의 코너로 향했다. 그리고 책을 펼쳐 스토리를 본 순간 나는 그 '왜?'라는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원작인 <미키7>에서의 미키7은 미키8과 협력하는 관계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하는 상황에서 미키7이 죽으려고 하니까 미키8이 7을 붙잡고 "같이 반씩 살자"라고 권할 정도. 그리고 주인공인 미키7이 원본이고 미키8가 복사라는 느낌이 강하다. 실제로 미키8은 크리퍼에게 허무하게 죽고 그 크리퍼는 미키7에게 "네가 원조인가?"라고 물으니까.
그런데 봉준호는 여기서 더 나아갔다. 미키17을 미키 18이 죽이려고 한다. 그리고 둘의 성격도 완전히 다르다. 찌질한 17과 폭력적인 18. 그리고 원작에서 허무하게 죽은 8과 달리 18은 새 행성을 무력으로 점령하려는 사령관과 함께 자폭해 평화를 이루어낸다.
그렇게 바꾸니 재밌는 결과가 나타났다. 주인공이 원작보다 더 찌질(17)한데도 더 주체적(18)으로 될 수 있었다. 어떻게 이 두 개념이 공존할 수 있는지, 정말 참신한 방식이었다. 거기에다가 둘의 성격을 다르게 만드니 '복제 인간이 있으면 누가 나인가?'라는 주제를 약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난 오히려 그게 더 좋았다. 왜냐하면 어차피 답이 없는 문제이고 영화의 복제인간이라는 설정에서 잘 드러나는 주제이기 때문에, 그걸 깊이 파고 들기보다 오히려 스토리를 조금씩 바꾸니 원작보다 더 다양한 주제를 보여줄 수 있었다. 한 인간 안에 선악이 공존한다는 점(17과 18의 안티테제 구도), 생김새가 다른 원주민(크리퍼)에 대한 존중, 마샬 사령관의 죽음(원작에선 안 죽는다)으로 발생하는 찬성파/반대파의 편가르기 정치, 그리고 사령관을 가스라이팅하던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죽음 이후 자살할 정도로 사랑에 여러 형태가 있음 등등.
물론 원작에도 나오는 내용도 있지만, 더 중요한 점은 그게 영화 한 편에 다 들어갔다는 점이다. 솔직히 세계관 설명, 그리고 크리퍼와의 갈등과 해결까지 스토리 전개가 굉장히 빨랐다. 그런데 의외로 그 모든게 이해가 잘 되고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여유도 있었다. 아마 이 여유 때문에 지루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원작을 보고 나니 반대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미키 17>은 위대한 영화, 위대한 작품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원작에서도 영화에서도 이 영화의 핵심은 심각한 주제를 주인공의 찌질함으로 웃어넘기고 편하게 다루는 점이니까. 그렇지만 이 영화는 좋은 영화다. 적어도 원작인 <미키 7>을 100명의 다른 감독이 영화화해도 봉준호처럼은 못 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아마 이 영화에 대해 봉준호 특유의 진지하고 어두운 느낌이 없다고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번 작품의 의의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