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돼도 된다더니, 스님이 될 뻔했다 10

산속의 여름, 그리고 작은 탈출들

1. 여름이 산속으로 스며들다


어느새 산속에도 여름이 찾아왔다.


풀냄새와 흙냄새가 뒤섞인 그 싱그러움은, 가슴 한편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슬그머니 건드리는 계절이었다.


청암사는 CNN이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사찰 5곳' 중 하나였다. 그 이름값을 하듯, 절 곳곳에는 숨이 막힐 듯 아름다운 계곡들이 숨어 있었고, 주말이면 등산객과 신도들로 늘 북적였다. 덕분에 우리 공양간은 평일보다 훨씬 많은 밥을 지어야 했다.


그렇게 오가는 외지인들을 마주칠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는 뭔가가 꿈틀거렸다.


'저 언니 옷 진짜 이쁜데… 요즘 유행이 저런 건가…!'


들어온 지 고작 석 달. 벌써 바깥세상이 그리웠다. 열아홉 살의 나는, 절집 규칙보다 유행하는 옷이 더 눈에 들어오는 그런 행자였다.


2. 설탕 뿌린 누룽지 권력


공양간에서 밥을 짓다 보니, 나름의 '권력'이 생겼다.


바로 누.룽.지 였다.


우리가 쓰는 무쇠 솥단지는 다섯 살짜리 아이가 들어가 목욕을 해도 될 만큼 거대했다. 그 솥에서 장작불로 보글보글 끓여낸 밥은,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간장 하나만 있어도 대접으로 두 그릇은 거뜬했다. 구수하고 고소하고 바슬바슬한 그 솥밥의 맛은 — 지금도 생각하면 입에 침이 고인다.


밥을 다 퍼내고 나면, 솥 바닥에 노릇하게 눌어붙은 누룽지를 살껍질 벗기듯 쫙 떼어냈다. 그 꼬소한 냄새란, 참기름에 맞먹을 정도였다.


어른 스님들 몫을 따로 챙겨두고, 나머지는 행자들끼리 나눠 먹었다. 다른 세 분 행자님들은 연세도 있고 식탐도 많지 않으셨는데, 나는 달랐다. 누룽지가 따끈할 때, 냅다 채공간으로 달려가 하얀 설탕을 한 컵 얻어다가 누룽지 위에 쫘악 뿌려 먹었다.


'와… 기가 막히게 맛있그만!'


그렇게 신나게 먹고 있는데, 공양간 나무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 작고 동글동글하게 생긴 스님 한 분이 고개만 빼꼼히 들이미셨다.


"저기… 혹시 누룽지 남은 거 좀 얻어 갈 수 있을까요?"


"스님, 제가 지금 막 설탕 뿌린 것밖에 없는데, 그래도 괜찮으시면요?"


스님은 배시시 웃으시며, 따로 챙겨 온 비닐봉지를 내미셨다. 나는 한 움큼 쥐어 드렸다. 그게 바로 효봉 스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3. 마가린 고구마 사건 전말


그 후로 효봉 스님은 수업이 끝나면 종종 공양간에 들르셨다. 누룽지를 얻어 가기도 하고, 간식을 가져다주기도 하셨다. 같은 1학년 스님들도 몇몇 따라오시면서, 어느새 아궁이 앞은 작은 아지트가 되었다.


고구마에 포일을 싸서 아궁이 불씨 속에 넣어두면, 수업 끝나고 열었을 때 노릇하게 익어 있었다. 행자 생활 중엔 말도 함부로 하면 안 되고, 노래도 불러선 안 됐다. 모든 행동에 절제가 요구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열아홉의 나에게 그 규칙들은 — 솔직히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스님 한 분이 아이디어를 내셨다.


"고구마 구울 때 마가린 발라서 포일에 싸면 훨씬 맛있을 것 같은데요!"


내 머릿속에 번뜩, 스위치가 켜졌다.


'나 마가린 어디 있는지 아는데…!'


나는 창고 냉장고로 갔다. 그곳엔 절 지붕 공사 인부들 새참 재료들이 가득했다. 식빵, 계란, 마가린, 고향만두… 보물창고였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가린을 들고 돌아와, 스님들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들어 올렸다.


다들 큰소리는 못 내도 — "까악!" 하는 작은 비명과 함께 눈이 반짝반짝했다.


우리는 고구마와 감자에 마가린을 정성스레 바르고 포일로 꼼꼼히 싼 다음 아궁이에 넣었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포일을 여는 순간 —


"오메… 꼬순네!"


껍질을 벗겨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모두가 말을 잃었다. 스님들하고 함께 먹어서 더 맛있었는지, 아니면 진짜 맛있었는지 —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 작은 공양간 아궁이 앞에서, 우리는 그냥 배고픈 사람들이었다.



4. 삼겹살 냄새와 뽕짝의 습격


그 무렵 나는 꽤 많이 불어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 규칙적인 공양, 거기에 수시로 챙겨 먹는 탄수화물 간식들까지. 지나가는 높은 학년 스님들은 나를 볼 때마다 한 마디씩 하셨다.


"윤행자야~ 들어올 때보다 몸이 두 배는 커진 것 같구나."


… 나도 안다고요. 그냥 웃었다.


그즈음 나에게는 단짝이 하나 생겼다. 절 개 설타였다. 고구마도 나눠주고, 노란 슬라이스 치즈도 한 장씩 건네줬더니 — 그 후론 내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사실 절에는 체다 치즈가 늘 넉넉했다. 스님들은 육식을 안 하시는 대신 유제품으로 단백질을 보충하셨기 때문이다. 아침 공양상에는 흰 죽과 함께, 치즈를 김에 돌돌 말아먹기 좋게 자른 몇 조각, 무장아찌, 땅콩조림이 소박하게 올라왔다. 처음엔 '치즈랑 김이 어울리겠어?' 반신반의했는데 — 웬걸, 흰 죽이랑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꼬소하니, 은근히 맛있었다. 독자님들도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드셔보시길. 그렇게 치즈 한 장은 설타 몫, 한 장은 내 몫으로 — 우리는 꽤 좋은 짝꿍이 되었다.


어느 날, 드물게 긴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설타와 함께 절 뒷계곡으로 걸어갔다. 맑고 차가운 계곡물이 어찌나 시원해 보이던지, 옷 벗고 뛰어들 뻔했다. 그러나 나는 자중해야 하는 행자. 고무신을 벗고 발만 살포시 담근 채, 혼자 노래를 흥얼거렸다.


설타는 산짐승 냄새를 맡고 어딘가로 유유히 사라졌고, 나는 혼자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 흐릿하게 뽕짝 음악이 흘러왔다. 등산객들이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음악보다 더 먼저 코를 찌른 것은 — 바람을 타고 은근하게 풍겨오는 그 냄새였다.


'앗!!! 이건… 삼겹살 냄새가 아닌가…!'


저 사람들, 지금 계곡에서 삼겹살 굽고 있는 거야?!


발을 담근 채, 뽕짝 소리와 삼겹살 냄새 사이에서 — 행자복을 입은 열아홉 살의 나는, 그만 멍하니 굳어버렸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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