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돼도 된다더니, 스님이 될 뻔했다 9

120인분의 쌀 — 절에 온 걸 환영합니다


행자의 첫걸음 — 아는 것이 독이다


드디어 큰스님들의 허락이 떨어졌다.


"저 아이, 이제 행자를 시작해도 좋다."


그 한 마디가 얼마나 긴 여정의 시작인지, 나는 그때 전혀 몰랐다. 다른 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행자 생활의 기준은 청암사가 전부였다. 이곳에서는 처음 3개월은 오직 밥만 짓고, 그다음 3개월은 반찬만 만든다. 그렇게 6개월의 수습을 마치면 2~3주 수계 교육, 삼천배, 조계종 수계 심사를 거친 뒤에야 비로소 삭발하고 사 미니계를 받아 예비 스님이 된다.


솔직히 말하면, 이 과정을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절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사람은 모를 때 가장 용감하고, 젊음이라는 패기가 있을 때 가장 무모하다.



행자복의 의미 — 우리는 아직 수습입니다


나를 포함해 행자는 총 네 명이었다. 한 분은 이미 삭발을 마치셨고, 나머지 두 분은 긴 머리를 질끈 묶고 계셨다. 행자들은 일반 스님들의 회색 장삼 대신, 벽돌색 진한 갈색 승복을 입는다. 말없이도 온몸으로 말하는 유니폼, "저희는 아직 수습입니다."


이곳에서는 이름 대신 성씨로 부른다. 윤행자 님, 박행자 님, 최행자 님. 완전한 수계를 받아 새로 태어나기 전까지, 우리는 그냥 행자일 뿐이었다.



120인분의 쌀 — 절에 온 걸 환영합니다


첫날, 나는 밥 짓는 공양간으로 배정됐다. 청암사는 승가대학이 있는 절이라 스님이 무려 120분이셨다. 절에서는 아침에 죽을 드신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첫 번째 임무는, 120인분의 쌀 씻기였다.


커다란 고무 대야에 쏟아진 쌀 더미 앞에서, 나는 플라스틱 조리로 돌멩이를 하나하나 골라냈다. 봄볕은 따사롭고, 온 산에는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는데, 나는 그 아름다운 풍경 한가운데서 묵묵히 돌을 골랐다.


최행자 님은 맏언니처럼 하나하나 친절하게 알려 주셨다. 반면 박행자 님은 처음부터 서울 특유의 툴툴거리는 말투로 으름장을 놓으셨다.


"혹시라도 돌 하나라도 밥에서 나오면, 120명 스님들 앞에서 행자들이 각각 3배씩 올려야 해요."


속으로 생각했다. '참나. 절이라도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네. 텃세는 어딜 가나 있구나.'


하지만 이미 마음을 정하고 온 길. 나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넵!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자 다른 행자님들이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풋풋해서 좋네."


기분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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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과 무쇠솥 — 문명과 이별하다


공양간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무쇠솥이 있었다. 평생 전기밥솥과 압력밥솥만 써온 나에게, 장작불로 밥을 짓는다는 건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나무 타는 소리, 그 냄새, 솥에서 피어오르는 김. 처음엔 모든 것이 신기하고 근사했다.


모든 건 처음엔 다 신기하고 좋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찬물에 쌀을 씻는 일이 반복되기 전까지는.



새벽 3시의 기적 — 나는 어디서나 잔다


닷새쯤 지났을까. 몸이 슬슬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사회에서라면 새벽 3시는 잠들러 들어가는 시간이었다. 그런 내가 매일 새벽 3시에 눈을 뜨고, 예불을 드리고, 120인분 쌀을 씻고, 돌을 고르고, 솥을 들고, 장작을 날랐다.


6일째 되던 날, 법당에서 목탁에 맞춰 절을 하던 나는, 엎드린 채로 또 그만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목탁 소리는 백색 소음처럼, 120명 스님들의 염불 소리는 자장가처럼 들렸다. 꾸부린 자세 그대로, 나는 세상 편안하게 잠들었다.


10분쯤 지났을까. 옆구리가 꾹꾹 눌렸다. 최행자 님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발로 나를 깨우신 것이다.


변명을 하자면, 나는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하셨을 정도였다.


"어머니, 제가 15년 교사 생활을 하면서 연둥이가 두 번째로 잠을 많이 자는 학생입니다."


어머니의 대답은 명쾌했다.


"다행이네요. 첫 번째가 아니어서요."


...... 어머니........ 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벌떡 일어나 염불을 다시 따라 읽었다.


예불이 끝나고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크게 켜는데, 저 멀리 청암사의 마스코트 진돗개 설타가 어슬렁거리며 걸어왔다. 눈이 반쯤 감겨 있었다.


'너도 잠이 덜 깼구나! 너랑 어디 숨어서 하루 종일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



시장표 염색약과 분홍 핀 — 큰스님의 마음


며칠 뒤, 총무 스님이 나를 부르셨다.


건네받은 것은 검정 염색약 한 통. 큰스님께서 장날 시장에서 직접 사 오신 거라고 했다. 노란 머리가 영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다. 삭발 전까지 검정으로 염색하라는 분부였다.

받아 든 염색약을 보니, 브랜드 이름도 생소한 시장표였다. 마트 진열대에서라면 한 번도 손이 가지 않았을, 그냥 겉포장만 봐도 '아, 이건 아니다' 싶은 그런 제품. 별수 있나. "넵! 알겠습니다." 하고 염색약을 들고 목욕탕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염색약과 함께 건네진 것이 또 있었다. 분홍색 리본 핀, 색깔별로 네 개.

순간 눈을 의심했다. 내가 초등학교 때도 안 꽂아봤을 것 같은, 아니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내 머리에 꽂힌 적 없는 종류의 핀이었다. 시장 한켠 구루마 위에 수북이 쌓여 있을 법한, 그 비닐 포장에 묶음으로 파는 그 핀. 짧은 내 머리카락이 눈을 가리는 게 거슬리셨던 나머지, 큰스님께서 장날 시장 수레 앞에 서서 진지하게 핀을 고르고 계셨을 그 모습을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어른스님들은 너무 어릴 때 출가를 하셔서 긴 머리를 한 번도 해보신 적이 없다고 했다. 평생 머리핀 한 번 꽂아보지 않으셨을 그 손으로, 나를 위해 색깔별로 하나하나 골라 담으셨을 큰스님. 세상 물정 모르고 고르셨을 그 촌스러운 핀 네 개가, 왠지 모르게 가슴 한쪽을 찡하게 눌렀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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