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28] 고맥락 대화(5)(완)

좋은대화(3)

by 명경

한 남편이 직장동료와 저녁 당일 약속을 잡으려 아내에게 연락을 했다. 아내의 대답은 Yes도 No도 아닌 어정쩡한 대답이었다. 분위기는 급 냉랭해졌다. 남편은 눈치를 보다 이내 약속을 없던 일로 돌렸다. 하지만 분위기는 쉬이 나아질 생각이 없었고, 남편의 기분도 언짢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녁을 먹을 때까지 부부는 냉전체제를 유지했다. 집에서 밥을 먹을 여건이 안되어 외식을 하게 된 그들은 차 안에서 저녁 메뉴를 상의하던 중 아내는 갑자기 한마디를 꺼냈다.

“오랜만에 가족끼리 고기를 먹고 싶었어. “

아내가 원하는 것을 들은 뒤, 남편의 언짢았던 마음이 언제였는지 모르게 풀렸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세 가족은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쳤다. 남편은 그저 평소처럼 약속을 잡으려 했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그날 남편에게 원하는 것이 있었다.

아내의 입장에서 그날은 세 가족이 오랜만에 스케줄이 맞아 도란도란 외식할 수 있는 날이었고, 마음속으로 그런 행복한 시간을 계획했다. 하지만 눈치 없이 약속을 잡겠다고 온 남편의 전화는 기분을 망치기 충분했을 것이다.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밤에 맥주 한 잔 하자는 직장 동료의 제안에 그저 나갈 수 있는지 아내에게 허락을 구했을 뿐이다. 남편은 평소에 종종 지인들과 모임을 갖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그날이 그리 특별한 날도 아니었다. 남편도 이상하리 만치 가시 돋친 아내의 반응에 황당하기 충분했다.

그날이 보통의 날과 차이가 있었다면 아내에게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만약 아내가 남편에게 “오늘 오랜만에 우리 세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저녁인데 함께 식사 하고 싶어! 특별한 약속이 아니라면 오늘은 같이 저녁을 먹으면 안 될까?”라고 이야기했다면 어땠을까? 남편은 고민하다 이내 직장동료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식사를 했을 것이다.

그저 마음속에 있는 원하는 바를 이야기했을 뿐인데, 몇 시간 동안 이어졌던 소모적인 시간들이 사라지게 된다. 대화를 하다 보면, 가까운 사이일수록 원하는 바를 말하는 것을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상황은 이상하게 흐르곤 한다. 상대방을 판단하고 평가하게 된다. 말하지 않은 나의 의도를 모르는 상대방이 눈치가 없어 보이고, 가족은 마다하고 밖으로만 나도는 남편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의도하지 않은 가시 돋친 말들이 상대방을 향해 날아가게 된다. 비난하는 말이나 화가 난 듯한 낮고 무뚝뚝한 어조와 표정, 빈정거리는 태도 등 다양한 가시들이 상대방의 눈 안에 들어온다. 대화를 통해 관계의 진전이 아닌, 대화를 통해 되려 소통이 막히게 되는 것이다. 눈빛만으로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상대가 몇십 년을 같이 산 가족이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내 마음 안의 의도를 숨기고 상대방을 바라본다면, 그 사람은 대단히 탁월한 사람으로 보이거나, 형편없는 사람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후자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좋은 대화를 위해서 내 말과 태도를 돌아보고 가시를 빼려고 노력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화를 이어가다가 내 말이나 태도에서 상대방을 향한 날 섬이 느껴진다면, 대화에서 가시를 덜어내 보고 내 의도를 충분히 설명해 보려고 시도해 보자. 대화에서 내가 원하는 것만 이야기하는 것보다 왜 그런 것들을 원하는지 목적과 의도를 충분히 설명해 주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일상적인 대화에서 고맥락 대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다. 좋은 대화를 위한 방법은 상대방을 공감해 주거나 존중해 주는 방법 등 매우 많은 방법이 있다. 하지만 대화의 맥락성을 줄이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대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여러 관계 안에서 내 생각과 의도를 충분히 설명해 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갈등의 요소들을 제거할 수 있다.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다고 해도 대화를 할 때, 말에 가시를 빼고 내 생각과 의도를 친절하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관계와 소통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좋은 대화를 통한 좋은 관계 그것을 위한 시작엔 대화의 맥락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