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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자의 전성시대 Dec 19. 2024

넘실대는 바람결 나비 같은 그의 손짓

정명훈 님 아름답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젊은 남자 앞에 나이가 제법 있는 어르신이 들어와 서더니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다고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아? 내가 있어서 이 나라가 있는 거야!"를 외치며 무례하게 굴었다. 젊은 남자는 처음에는 못 들은 척하다가 못 견디겠는지 "왜 이러세요?" 하고 말했다. 그 순간, 어르신은 남자의 뺨을 때렸고 사람들은 소리를 질렀고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저 할아버지가 미쳤구나!' 다른 사람들은 슬금슬금 옆으로 비켜 나갔고 금세 작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나는 젊은 남자의 편을 들어주어야겠다는 생각에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그 순간에도 어르신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젊은 남자는 욱해서 대들려다 그냥 일어나 다른 칸으로 이동했다. 내 앞을 지나갈 때 "잘 참으셨어요." 하며 어르신 귀에 들리게 말해 주었다. 그러면서 그 교양 없는 아집덩어리 노인을 째려보았다. 


 종종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70대 남자들에게 원래도 좋은 감정이 아니었지만 이 사건으로 완전히 70대 할아버지들을 극혐 하게 되었다. 섬이나 시골에서 일어나는 성적 사건들 대부분이 70대 노인들이고, 지하철의 그 노인도 태극기 부대로의 자만은 있으나 타인에 대한 존중은 없는, 자신만의 세계에 살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지난주 주말, 문화생활을 열심히 하시는 선생님의 초대로 롯데 콘서트홀에서 하는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하러 갔다. 많은 사람들 속에 이미 기가 빠진 채로 공연에 들어갔고 나오는 하품을 참느라 힘든 채 관람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정명훈>이라는 세 글자에 기대를 갖고 몽글몽글해지는 마음을 느끼며 허리를 곳곳히 세웠다.


 10년여 전에 만났던 정명훈 님은 강력한 멋짐으로 힘이 넘치는 지휘를 보여주셨다. 그러나 나에겐 어려운 음악이었고 그분은 넘사벽으로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70살이 넘은 지금도 여전하실까? 하는 궁금증으로 맞이했다. 다행히 그분의 표정과 몸짓까지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자리여서 감사했고 2시간 남짓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연주 내내 이분은 마치 발레리노 같이 무용을 하는 사람 같았다. 지휘봉을 손에 든 한 마리의 나비 같기도 했다. 그 나비의 몸짓에 따라 연주자들은 한 자락의 바람같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곤 했다. 가장 끝에 있는 8대의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들은 황소바람 같은 격렬한 몸짓으로 시선을 사로잡았고, 비올라와 바이올린은 나비 옆에서 살랑살랑 부는 꽃샘바람 같았다. 



  70대가 넘는 노인이 된, 지휘봉을 손에 들고 나비처럼 유연한 몸짓으로 이리저리 흔드는 그와 지하철에서 태극기를 손에 들고 소리치던 몸짓이 오버랩되며 내 머릿속을 스쳐갔다. 물론 난 개인적인 정명훈 씨를 모른다. 개인적으로 태극기 부대를 만난 적도 없다. '70대의 노인'과 '손에 들고 있다'는 이 두 가지의 공통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 손에 무얼 잡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행위와 그 행위가 모여 만들어지는 삶의 향방과 그 향방으로 정해지는 무게가치... 그러면서 내 손을 바라보았다. 가방과 외투를 꼭 껴안고 있었다. 지금껏 살면서 내 손에 무얼 잡으려 애썼는지, 잡고 살았는지, 악기를 손에 들고 정성스럽게 연주하는 그들 또한 바라보며 생각하고 있었다. 


 연주도 좋았지만 생각하는 시간이어서 의미 있었다. 약간의 카타르시스도 느끼며 속이 좀 시원해졌다. 많은 인파 속에 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 내가 좀 좋았고, 떠밀려가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는 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같은 방향으로 격렬히 움직이는 콘트라베이스 같은 나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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