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지 3년이 다 되어간다. 우리 집이라는 표현을 쓰기까지 2년이 걸렸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며 모든 게 낯설었고 옛 집 주변이 그리웠다. 나의 집이 되려면 명의만이 아니라 그곳이 익숙해지고 편안함을 주어야 비로소 나의 집이라고, 내 동네라고 명명할 수 있다. 3년 가까이 살다 보니 골목도 건물도 상가도 익숙해지고 내가 갔던 내발자국이 남은 곳들이 생기며 우리 동네가 되었다.
이곳에 아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본죽가게 무뚝뚝한 아주머니, 자주 가서 언니라고 부르라던 김밥집 사장님, 우리 알콩이까지 챙겨주는 어묵집 사장님과 노가리집 아저씨, 늘 상냥한 카페 주인들 그리고 묵도 쑤어주시고 떡도 만들어 나누어 주시는 바로 옆집 할머니까지 새로운 관계가 생겨났다. 우리 집주변에 삼겹살 집이 몇 개 있고 어디가 맛있고 어디가 맛없는지 이제 좀 안다.
우리 동네 앞길을 소개하자면 봄이 되면 길 가에 가끔씩 쑥이나 다른 야채들을 뜯어 파는 할머니도 나오시고 옆건물에 있는 영풍문고에서 팝업으로 책을 팔기도 하고 신발가게에서 세일 상품을 내다가 팔기도 하는 등 사람냄새가 나는 생기가 돈다. 밤에 들어와도 무섭지 않게 유동인구도 많고 밝기도 해서 겁이 많은 나는 살기 좋다. 물론 아직 엘리베이터 탈 때는 살짝 무섭지만 말이다.
어느 날부턴가 우리 동네에 노숙자인 그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가끔 보는데 우리 아이는 자주 본다며 동네에서 이미 유명한 분이란다. 처음에 냄새 때문에 그녀를 알아보았다. 100미터 근처에서부터 나는 그녀의 체취는 너무나 강렬했고 눈이 안 갈 수가 없었다. 한여름에도 패딩옷을 입고 담요를 걸치고 있어 경악할 만한 패션 테러리스트였다. 게다가 손에 짐을 바리바리 들고 있어 참 무거운 인생을 살고 있었다.
알콩이 산책을 마치고 들어오는 길, 늦은 시간까지 쑥을 파는 할머니가 "아유, 먼 강아지가 이리 이쁘게 생겼나?" 하시며 아는 척을 하셨다. 우리 금쪽이 알콩이는 "왕왕"거리며 짖었고 우리는 "죄송합니다. 우리 애가 짖어요." 하며 머리를 조아리며 후딱 자리를 피했다. 몇 걸음 가다가 그녀를 만났다. 얼굴에 어떤 표정도 감정도 없는 얼굴로 역시나 두꺼운 패딩을 입고 한아름의 짐을 들고 벽에 기대어 있었다.
8시가 넘은 시간이라 난 그녀가 끼니는 때우고 있는지 걱정스러웠다. 급히 옆에 있는 빵집으로 들어가 두 묶음의 빵을 사서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그녀는 내가 다가가자 화들짝 놀라며 자리를 피했고 급한 나는 "이거 여기 빵집에서 지금 산 거예요. 좀 드셔보세요." 하며 따라갔다. 그녀는 더 강한 액션으로 나를 피해 갔고 난 더 이상 쫓아가지 않았다. 아니 쫓아갈 수 없었다. 더 가면 그녀에게 실례일 것 같아 멈추었다.
모든 걸 지켜보던 아이가 "그 사람은 혼자만의 세상에 있는데 엄마가 다가가니까 도망가잖아." 한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굶으면 어떡해?" "알아서 먹을 거야. 근데 그 빵은 어떡할 거야? 어제 산 것도 그대로 있는데." 아이는 실질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맞다. 어제 산 빵도 그대로 있다. 두 뭉텅이의 빵을 어찌한단 말인가! 우리 가족은 빵을 좋아하지 않아 가끔 조금씩 먹는 편이라 난감했다.
"아, 아까 쑥 파는 할머니 갖다 드리자. 오지랖 부리다 이게 먼 짓인지!" 그녀의 상태를 헤아리지도 않고 빵부터 사서 안기려던 나의 무지를 후회하며 생전 처음 본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할머니, 이거 요 앞에 있는 빵집에서 산 건데 간식으로 드세요." 하며 드렸다. 할머니는 "아이고 이런 귀한 거를 이렇게나 많이." 하며 받고는 갑자기 앞에 파시던 쑥 봉지를 내게 내민다.
"어이구 아니에요. 안 주셔도 돼요." 나는 손사래를 치며 받지 않으려 했다. 사실 나는 요알못으로 쑥으로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두 봉지나 내게 주려 하셨다. 너무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해서 "그런 한 봉지만 받을게요." "이거 내가 산 깊은 데 가서 딴 거니까 걱정 말고 먹어도 돼." 하신다. "네 감사합니다." 하며 쑥을 받아 들었다.
아이가 "엄마 이제 이거 어떡할 거야?" 하며 쑥을 가리킨다. "몰라 나도, 이거 어떻게 먹어야 하냐?" 내 손에 들려진 쑥을 보며 쑥떡이나 해 먹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본다. 할머니에게 빵을 드린 것도 의미는 있었으나 노숙자인 그녀가 받아 맛있게 먹어 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녀의 취향을 존중한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굶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렇게 우리 동네에 한 발짝 더 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