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동안의 고독>, 만만치 않습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by 영자의 전성시대

이렇게나 가독성 떨어지는 책이 있다니!


지금껏 꽤 여러 인문학 책을 읽으며 나름 독해력과 문해력과 행간을 읽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건만, 이 책 앞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 마음과 싸워야 하고, 그만 읽고 싶다는 마음을 설득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이 작가를 미워하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무슨 생각으로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똑같이 만들었는지 그래서 독자들이 이리도 힘들게 하는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야속했다.


두 명의 남자 이름,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는 이 책에 무한 반복된다. 처음 150쪽까지는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읽어도 대체 누가 누군지 헷갈려서 책을 뒤적이고 만다. 여기에 비해 책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마콘도라는 가상의 도시를 건설하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슬라 이구아란 부부와 그 아들인 호세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가 책의 중심을 맡는다. 이들의 자녀들이 나머지의 부분을 살다 백 년의 시간 뒤, 도시와 함께 모두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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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거 없어 보이는 줄거리. 고립된 마콘도에서의 부엔디아 가문의 7 대기를 다루다 마지막에 전부 다 사라지는 이야기. 끝이 너무나 허무해서 이렇게나 열심히 읽어야 하는 책 맞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의 반전은 그렇게 어렵고 헷갈리고 허무맹랑한 마술적 이야기 때문에 힘들던 이야기가 150쪽이 넘어가며 재밌어지고 이해가 되며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드디어 작가에게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심지어 재밌다. 미녀 레메디오스가 하늘로 날아가버리거나 죽은 멜키아데스가 계속 살아 돌아오거나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17명의 아들을 낳아왔는데 모두 죽여버리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데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등장인물들 모두 고독하게 살다 침묵하고 죽는 과정이 우리 인생을 표상하는 거라 생각하며 숙연하게 고개가 끄덕여지기까지 하다. 중간 부분에서 사라진 레베카가 노년의 모습으로 죽지 않고 다시 나타났을 때는 그녀의 고독이 너무 안타까워 소름이 돋았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데 가장 큰 중심축은 이들의 사랑이다. 인간의 삶에서 사랑을 빼놓을 수 없는 것처럼 이들도 정말 열심히, 때론 처절하게 사랑을 한다. 풋풋한 사랑도 있고 열정적인 사랑도 나오지만 저주를 바탕에 둔 근친상간의 사랑과 그것에 대한 공포가 이 책의 바탕에 깔려있다. 1대의 호세 아르카디오와 우르슬라도 사촌관계다. 이들도 돼지꼬리의 아기가 나올까 봐 두려워하며 서로 잠자리를 하지 않고 우르슬라에게 정조대도 사용할 만큼 두려움을 기반으로 한 사랑을 한다. 그러나 아무리 두려워도 결국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란 생각도 든다. 다 사라질 줄 알면서도 사랑하는 것, 인간의 가장 큰 용기일 수도 있겠다.


마지막 세대인 아우렐리아노와 아마란타는 조카와 이모사이다. 계속적인 근친상간의 관계 속에서 이들은 저주 속 돼지꼬리의 아기를 낳는다. 나는 이 아기가 태어난 게 놀라운 것이 아니라 이 아이가 개미떼의 습격으로 끌려가 사라지는 것이 너무나 끔찍했다. 그리고 멜키아데스의 양피지 문서를 해독하며 도시도 사람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모두 사라진다. 가문의 시작은 고독 속에서도 화려하고 다양했으나 가문의 종말은 이렇게 비참했다. 하긴 우리 모두도 이 땅에서 다 사라짐을 알고도 매일 매 순간 처절하게 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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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의 축은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이다. 콜롬비아 내전인 천일전쟁과 식민지 살상의 바나나 학살사건이 책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관심 없던 콜롬비아의 역사를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허구와 진실 사이를 적절히 섞어 읽는 이들로 하여금 외면되었던 자신들의 역사를 돌아보게 했다. 실제로 책 속에 "그들은 바나나 송이를 어떻게 가꾸는지 가르쳐 주겠다며 예전에 본 적도 없는 사기꾼들을 데려왔고, 그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바나나를 한 입 베어 물고는 그 맛이 기가 막히다고 허풍을 떨었다."며 풍자했다.


작가는 2세대의 아우렐리아노 장군을 통해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실제로 자유파의 수장이 되어 보수파와 싸우는 가슴 아픈 상황을 노출시켰고, 식민지 시대와 바나나 농장의 착취와 학살을 간접적으로 나타내 독자로 하여금 추론하게 하여 근현대사의 아픔을 알고 느끼게 했다. 아마 이 부분이 이 책이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큰 이유 아닐까 유추해 본다. 부엔디아 가문의 인물들은 부와 명예를 가졌지만 역사의 소용돌이를 피해 갈 수 없어 몰락하며 죽음을 맞이했다.


이 책은 기괴하고 황당하며 환상적이다. 마치 우리의 옛날 설화를 읽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런 '마술적 사실주의'기법이 비극적인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을 더 강조한다고 하는데, 사실 그건 모르겠고 내 식대로 해석하자면 이런 말도 안 되는 기막힌 일들이 매일 매 순간 우리의 삶 속에도 나타나고 있고 세상 어딘가에는 일어나기도 하는 걸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생각한다. 기괴함이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우리 현실의 반향으로 종종 되돌아오는 것을 우리는 뉴스에서 매일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말을 우리는 종종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당연히 '고독'이다. 여기 나오는 인물 모두가 고독하다. 고독은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이라는 뜻인데 이 책의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다른 포장의 고독 같지만 결국 같은 고독함으로 살다 죽어간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아우렐리아노 장군도 화려했던 업적을 뒤로하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 고독 속에 죽어갔고, 그나마 가장 밝고 사리분별이 바른 우르슬라 또한 노년에 눈이 멀어 자신만의 고독 속에서 손주들의 놀림 속에 죽어간다.


동의한다. 나도 모든 사람은 고독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외로움 하고는 또 다른 감정으로 인간은 학습적 사회적 동물이지만 결국에는 철저히 혼자이고 혼자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고 존재해야 살 수 있다. 이것이 나는 고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종종 고독을 나쁜 의미로 사용하지만 고독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고독한 시간은 필요하고 이것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 사람들 속에 있다고 고독하지 않은 게 아니고 혼자 있다고 반드시 고독한 것은 아니다. 고독할 때 비로소 나를 성찰할 수 있는 시간임을 책 속 모든 인물들은 이미 알고 있어 자기만의 방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고독은 내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나를 성찰하며 채워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책의 인물들이 결국 자기 만의 방에 틀어박혀 오랜 시간을 견디며 가져야 했던 그 무엇이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그 시간은 힘들었을 것이고 외로웠을 것이며 매우 복잡한 생각의 고리 속에 묶여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필연적으로 있어야 했고 속에서부터 단단해지는 무언가를 느끼며 불행하지 않게 죽음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나무 위에서 죽음을 맞이한 1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도 마지막 사라져 간 방 안에 갇힌 아우렐리아노도 슬프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인물들이 죽어갈 때 그 누구도 애통하며 죽지 않았다.


많은 의미를 담은 이 긴 서사는 보면 볼수록 매력 있는 책이다. 매력을 느끼기까지 오래 보아야 하고 자세히 보아야 하지만 높은 진입장벽을 넘기고 나면 비로소 물밀듯이 넘쳐오는 의미들을 알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삶과 역사에 대해 고찰하며 나의 삶으로 끌어오기까지 조금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공들인 시간이 아깝지 않다. 방대한 서사를 이 짧은 식견으로 이해하려니 애꿎은 책만 탓했다. 책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였으리라! 읽고 싶은 것만 읽어왔던 탓, 읽고 싶은 대로 읽은 탓, 편독했던 고집 탓, 내 생각대로만 생각하려는 편견 탓.


살다 보면 다시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읽고 싶은 날이 오리라. 내가 외로울 때, 삶의 답이 없어 혼란스러울 때, 감정적으로 불안할 때, 내가 끝없는 혼자만의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이 책이 그리울 것 같다. 지금은 나의 과거를 이해하고 다른 이의 삶도 고독하다는 것으로 위로받았으나 그때는 더한 것으로 응원받을 것이다. 잘 생각하자. 잘 들여다보자. 그러면 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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