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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희 Aug 23. 2024

문신

경북일보 문학대전 수상작품

 마지막으로 어머니 얼굴을 보는 날이다. 입관실에 누워 계신 어머니는 잠에 취한 듯 미동도 없다. 눈만 감았지 산사람과 다르지 않은 어머니의 야윈 민낯이 창백하다. 이 시간이 지나면 영영 볼 수 없음에 오열하는 형제들의 눈물이 어머니의 차가운 얼굴에 뚝뚝 떨어진다. 

  어머니를 붙잡고 매달리는 자식들의 눈을 돌리려는 듯 장례지도사의 손이 민첩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탈지면에 알코올을 묻혀 정성스럽게 얼굴을 닦아내던 그의 손끝이 눈썹 주변에서 잠시 주춤하더니 유독 세심하게 닦아낸다. 두세 차례 닦아낸 어머니의 하얀 얼굴에는 그려놓은 듯한 청회색 눈썹이 그대로 남아있다. 아주 오래전에 동네 아주머니들과 같이 새긴 눈썹 문신이다. 

  사람이 죽어도 문신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머니는 아셨을까. 닦아낼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눈썹처럼 오래전 내가 어머니 가슴에 새겨드린 문신들이 화들짝 되살아난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이었다. 어머니는 늘 어두운 방에 모로 누워있었다. 불 꺼진 방에 이불과 하나가 되어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내 어린 시절 기억 일부를 잠식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만큼. 어머니는 창백한 얼굴로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음을 삼키는 날도 더러 있었다. 밥상을 들여와도 붙박이 장롱처럼 아랫목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버지는 말없이 어머니의 시중을 들었다.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떠다 어머니를 닦아주고 미역죽을 끓였다. 어린 마음에 꼼짝 않는 어머니가 야속하다가도 아버지가 정성스럽게 보살피는 모습을 보면 필시 중병이라도 걸린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를 도와 집안일을 하고 동생들을 돌보느라 수업이 끝나도 친구들과 노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극도로 쇠약해진 어머니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방에 있어야 할 어머니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어둡기만 하던 아버지의 얼굴에서 그늘이 걷혔다.

  어머니는 가까스로 기운을 되찾았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오빠들 도시락 싸고 집안일하느라 고생했던 기억은 마치 문신이 들어앉은 듯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잊을만하면 나는 기억의 회로에 차곡차곡 쌓아둔 응어리를 풀어헤쳤다. 오빠들은 잘해주고 나는 일만 시켰다고 심통을 부렸다. 두고두고 그때의 일을 우려먹으며 마치 큰 약점이라도 잡은 것처럼 걸핏하면 어머니의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내가 어머니의 고통스러웠던 긴 밤을 이해하게 된 것은 결혼 후 출산을 하고 나서였던 것 같다. 딸애를 낳고 산후우울증을 겪으면서 어머니의 어두웠던 방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머니가 머리를 싸매고 눕기 시작한 것은 막내가 죽고 난 뒤였다.    하늘에 별이 되려고 그랬는지 막냇동생은 유난히 예뻤다. 어머니는 막내한테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품에 끼고 살았다. 그렇게 식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막내가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갑자기 하늘나라로 갔다. 

  막냇자식을 잃고 나서 어머니의 방은 암막 커튼이 쳐졌다. 내일이 오지 않을 듯 어머니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때부터 맏딸인 내가 집안 일을 하게 된 것 같다. 동생의 죽음을 잊는 데도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 집에 언제 갓난쟁이 울음소리가 들렸었나 싶을 정도로 막내의 존재가 미미해졌다.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아픔이 클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때 어머니 나이 고작 서른여덟 살이었다. 얼마나 애달팠을까. 산모는 뱃속에서 아이를 뱉어낸 허탈감만으로도 우울증이 생긴다는데 당신 속으로 낳은 자식을 잃었으니. 한 달밖에 안 된 갓난아기를 가슴에 묻고 산후우울증까지 겪은 어머니가 받았을 통증을 생각하면 같은 여자로서 진심으로 어머니가 가여워졌다. 그런 줄도 모르고 어머니의 가슴을 한 번씩 헤집었으니. 아무리 철없는 자식이라도 어머니는 내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당신의 애끓는 속이야 말로 다 할 수 있었을까만, 어머니는 내가 그악스럽게 굴 때마다 장녀로 태어나 무릎이 꺾인 나를 따뜻하게 품어 주었다. 그때마다 어머니 가슴에는 푸른 문신이 하나씩 늘어났을 성싶다.      

  문신은 과거다. 누구나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는 것처럼 살면서 내 삶에 새겨지는 문신을 초라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순간을 모두 들어내 표백하고 싶을 만큼 창피하고 남루하게 느꼈던 일들은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다. 어쩌면 그것들을 오랜 시간 모른 체하고 살아온 내 탓도 있었겠지만, 원하지 않았던 얼룩이라 그저 덮기에 급급해하며 살았기 때문이리라. 가끔 과거의 나를 보듬어주고 격려해주었어야 했는데 사는 일에 바빠 그럴만한 마음에 틈이 없었던 것 같다. 

  어제 없는 오늘이 있을 수 있을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떤 시간들도 희망 품은 과정 없이는 이룰 수 없었듯. 과거가 깨알 같은 추억 속으로 편집되는 이유도 바로 그 순간을 함께했던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돌이켜보면 그런 아픈 시간이 응집되어 지금의 단단한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물끄러미 바라본 풍경 하나가 가슴에 콕 박히는 것처럼 문신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하는 것 같다. 오늘이 지나면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이 순간마저도 영원히 문신으로 남게 되리라. 그러고 보면 산다는 일은 바로 서로의 가슴에 문신 하나 새기는 일이 아닌가 싶다. 


  이승에서 어머니의 마지막 기도가 끝났나 보다. 바쁘게 움직이던 장례지도사의 손놀림도 속도가 줄어들었다. 정성스럽게 화장(化粧)을 끝낸 어머니의 얼굴에 초승달 모양을 한 눈썹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각도조차 변하지 않은 눈썹이 내 가슴팍으로 날아와 다시 지독한 문신으로 꽂힌다. 부모 자식 간의 연(緣)은 대체 어디까지일까. 당신의 몸을 이음매 삼아 우리를 엮어준 어머니는 가뭇없고 차오르는 슬픔을 억누르는 문신들이 고인을 눈바래움하고 있다.

 시나브로 내 안에 웅크리고 앉아 나를 괴롭히던 문신도 엷어지고 있는 중이다.


*눈바래움: 눈으로 배웅하여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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