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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Dec 09. 2021

쓰기의 나날

다시 글쓰기

쓰기의 나날      


무언가에 홀렸던 것이 분명하다.

여느 아침과 같이 눈 뜨자마자 인스타를 확인하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쓰기의 나날” 5기를 모집한다는 피드를 보며 홀린 듯이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는 나 정도? 왜 홀렸던 것일까? ‘쓰기’라는 말이 내 안의 어떤 욕망을 자극했던 것일까?     




글쓰기에 재미를 붙였던 첫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초등학교 때로, 당시 또래 여자애들 사이에서 인터넷소설이 유행 중이었고 그 흐름을 타고 나 역시 많이 읽고 직접 공책에 끄적이기도 했었다. 그저 재미로 쓴 소설이 친구들 사이에서 돌려 읽어지고 인기가 많아지면서 조금씩 글쓰기에 대한 재미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중학생이 된 나는 갈고 닦은 필력과 경험으로 뜻밖의 부수입을 창출할 수 있었다. 당시 교내 백일장 대회에서 수상하면 문화상품권을 줬는데 중학생에게 문상은 현금과 같았으니 쏠쏠한 용돈 벌이였던 것.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머리 아프고 귀찮은 글쓰기보단 그나마 덜 귀찮은 그림을 선택한 친구들이 많아서 가능했던 거 같다.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대해 자신감이 생겼던 시절은 중학교 때 한 국어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이다. 그 만남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해프닝에서 시작되었다. 학기 초 수행평가로 소설“소나기” 결말에 이어지는 내용을 자유롭게 상상해서 써오는 과제를 내주셔서 정말 열심히 써서 제출했다. 아쉽게도 다소 오래전 기억이라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소나기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와 소설의 상징성으로 나오는 “보라색” “징검다리” 가 좋아서 작품의 문체와 느낌, 키워드를 살려서 오픈 엔딩으로 결말을 이어가는 식으로 창작을 했었다.     


그런데 수행평가를 제출하고 나서 어쩐 일로 교무실로 호출을 당했고 이런 일이 잘 없었던 나에겐 여간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영문도 모른 채 교무실 문 앞에서 망설이다가 쉬는 시간에 쫓겨 마지못해 들어갔다. 선생님 자리를 찾아간 곳엔 뺨이 패일 정도로 마르고 창백한 여자가 있었다.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얼굴에 나는 더욱 긴장될 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 손에는 잿빛 갱지가 나풀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갱지를 가리켜 정말 네가 한 것이 맞냐고 물어보셨다. 나를 의심하는 질문에 조금 기분이 나빴고 억울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당황하여 제가 썼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결백을 피력하였고 가만히 듣던 선생님은 나의 모습에 수긍하셨는지 그대로 돌려 보내주셨다. 한바탕 진땀을 빼고 나와 복도를 걷다가 정말 내가 쓴 건지 믿지 못할 만큼 뛰어났다는 뜻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생각하니 마냥 기분이 상할 일은 아니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그 후로 몇 번의 수행평가를 통해 나의 실력을 인정해주신 선생님은 교내외 글쓰기 대회가 있으면 나를 추천해주셨다. 선생님의 응원에 힘입어 다양한 글쓰기 경험도 쌓고 교내에서 상도 타면서 계속해서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셨다.      


그 후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1학년 때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제6회 경기 북부 학생 백일장 대회”에서 수상을 하였다. 시외버스를 타고 힘들게 의정부까지 간 고생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전교생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단상에 올라 교장 선생님께 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그것이 글쓰기로 받은 마지막 상이 되었다. 고등학교 생활은 대학 입시로 굉장히 빽빽하고 쉴 틈 없이 수업이 돌아가는 데다가 야자까지 있어 하루하루가 고역이었고 피곤함이 나를 좀먹어갔다. 태풍 같이 휘몰아치는 일상 속에서 글을 쓰기 위한 정신적 행위를 할 여유가 없어졌고 그때 나의 글은 멈췄다.      



글을 쓰던 당시에 주변을 관찰하고, 사색하고, 곱씹어보고, 끄적여보고. 영감을 얻고 했었던 일련의 모든 과정을 돌이켜보니 참으로 열정적이고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이따금 일상에서 그때의 감정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립기도 하고 다시 해볼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들어서 애써 외면하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지인의 인스타그램에서 “쓰기의 나날” 활동을 보게 된 것이다. 그녀의 글들을 보면서 조금씩 ‘쓰기’에 대한 욕망이 고개를 들었고 나의 일상들을 그저 무미건조하게 평일, 주말로만 요약하고 끝이 아니라 하루 틈 사이사이를 기록하고 글쓰기의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어졌다.      


올해 1월에 “타이탄의 도구들” 책을 읽고 감상을 적어놓은 공책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이렇게 말해주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있었던 욕망을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홀렸던 것은 잠재되어 있었던 나의 욕망에 홀렸던 것은 아닐까. 짧지도 길지도 않은 사회생활 속에서 받은 상처들을 책을 통해 위로받고 다독이면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원동력을 얻곤 했다. 그리고 내가 받았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위로와 따듯한 온기를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느려도 괜찮으니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갖고 조금씩 나만의 글쓰기를 “쓰기의 나날”을 통해서 시도할 생각이다. 나만의 글로도 누군가에게 위로와 위안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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