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 권력의 거짓과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

by 블랙마요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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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O드라마 <체르노빌>을 보았다. 처음에 체르노빌 얘기를 들었을 때는 솔직히 별로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냥 또 하나의 다큐멘터리일 거라 지루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보기 시작하니 완전히 달랐다. 다큐의 사실성과 드라마의 긴장감이 절묘하게 섞여 전개가 빠르고 흡입력이 있어, 어느새 끝까지 몰입해 보게 되었다.


결말은 대부분이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디테일하게는 오히려 모르는 부분이 훨씬 많아 더 흥미로웠다. 단순히 “원전이 폭발했다”라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벌어진 사람들의 선택과 갈등, 그리고 사건이 즉각 처리되지 못한 이유들이 드라마를 통해 드러난다. 냉전시대의 세계 정세, 체면과 자존심 같은 사소한 이유들이 참사의 본질적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이 답답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드라마 전개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괜한 캐릭터 소개나 배경 설명 없이, 첫 장면부터 곧장 원전 폭발 사고로 시작되니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다. 이후 사건을 수습하고 대처하기 위해 사람들이 분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치와 충격적인 비주얼로 피해 상황을 드러낸다. 결말이 새드엔딩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지막 법정 신에서는 사이다 같은 카타르시스를 주는 점도 인상 깊다. 총 5부작이라 내용은 무겁지만 의외로 집중해서 금방 볼 수 있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강렬했던 건 방사능의 무서움이었다. 끔찍한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간접적인 연출만으로 공포가 충분히 전해진다. 방사능 수치가 높아지자 하늘에서 새가 떨어지고, 헬기가 그대로 추락하는 장면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를 절실히 느끼게 한다. 그러나 방사능보다 더 공포스럽게 다가왔던 건 윗사람들의 무능함이었다.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고, 진실을 감추고, 자존심만 내세운 결과 결국 고통과 희생은 평범한 사람들의 몫이다. 현장에서 목숨을 걸었던 소방관, 광부, 군인, 그리고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시민들. 그들의 희생은 안타깝고 동시에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모습은 낯설지 않다. 멀리 떨어진 소련의 과거 이야기지만, 우리 역사 속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너무나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사고가 나도 윗선에서는 늘 “괜찮다, 문제없다”만 외치고, 실제로 뒷수습과 희생은 결국 국민들이 떠안는 구조. 그야말로 다이나믹 코리아의 전매특허다.


결국 체르노빌은 단순한 원전 사고 드라마가 아니다. 권력의 무능과 거짓, 그리고 이에 맞서 싸운 영웅들과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을 기록한 작품이다. 실제 사건을 이렇게까지 사실적으로, 있는 그대로 드라마로 풀어냈기 때문에 재밌을 수밖에 없다. 아마도 소련 사건이었고, 또 미국 HBO였으니 가능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현대사에도 드라마나 콘텐츠로 만들면 충분히 흥미롭고 재밌을 사건들이 많다. 하지만 체르노빌을 보면서 확실히 느낀 건,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재밌게’ 만들려면 우리나라에서는 만들면 안 될 것 같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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