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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둘셋 Apr 18. 2024

직원이 고충을 토로할 때 팀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팀원 한 명은 건강이 좋지 못했다. 최근 10년 간 그는 거의 매 년 한 달 이상의 병가를 사용하곤 했고 때로는 6개월씩 질병휴직을 내기도 했다. 내가 팀장으로 부임하자 그는 내게 면담을 청해서 언제 휴직을 들어가게 돼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라며 자신의 건강 상태를 얘기했다. 팀원의 말은 일을 안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팀장이 업무 분장을 하는 데 있어서 고려해야 할 사항을 미리 말하고 자신은 어떤 불이익이든 감수하겠다는 취지로 들렸다. 실제로 팀원의 건강은 아주 안 좋았다. 


나는 긴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건강이 우선이니 잘 챙기시고, 나머지는 제가 감당할 몫인 것 같다."라고 하고 면담을 마쳤다. 그리고 그 팀원에게 주요 업무를 맡겼다. 그는 승진을 해야 할 시기가 한참 지났음에도 잦은 병가와 휴직으로 잡무 위주로 업무 분장을 받았고 그러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매번 승진에서 탈락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가 아픈 것과 별개로 더 늦기 전에 승진에 도전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안 되면 할 수 없지만 일단 기회는 부여해 보자 싶었다. 


그리고 그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휴직을 하지 않았다. 간혹 며칠의 병가는 사용했지만 업무에 적극적이었고 나와 3년째를 맞았을 때는 추가로 중요 업무를 더 맡겠다고까지 했다. 중요 업무를 담당하는 만큼 평가도 좋았고 그는 단숨에 승진 점수도 쌓아 올렸다. 


팀장으로서 나의 판단이 늘 이렇게 해피엔딩을 맞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는 고충을 말하는 직원을 대할 때의 원칙이 있다. 철저히 상대의 이익만을 생각해서 결정한다는 원칙이다. 그렇게 하면 애초 나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기대도 없고 실망할 일도, 짜증 낼 일도 없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든 상대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당당할 수 있다. 이러한 원칙을 갖는 데는 과거 경험이 주요했다.


첫 직장에서 5년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 그즈음 나는 일도 버겁고 평가도 만족스럽지 않았고 미래도 없는 것 같고 회사가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면서 위축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고민 끝에 사표를 내기로 하고 팀장에게 면담을 청했다. 내심 팀장이랑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위로받고 힘을 얻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팀장은 내게 "네가 나가고 싶다면 할 수 없는데, 너 나가서 뭐 하려고? 계획 있어?""라고만 물었다. 내게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그러자 팀장은 "다니면서 다른 직장 알아봐. 다른 직장 잡으면 그때 나가도 안 늦어."라고 했다. 


팀장은 내가 왜 그만두고 싶어 하는지 따위는 묻지 않았다. 그러니 그와 관련한 위로나 자신이 어떻게 해 주겠다는 공언도 없었다. 팀장은 나의 갑작스러운 퇴직이 자신에게 미칠 영향 -업무 부담, 관리 책임에 대한 질책, 구설 등- 은 일절 고려하지 않고, 내 입장에서 가장 유리한 방안을 제시했을 뿐이다. 그런데 '다른 직장 잡고 나가'라는 팀장의 말이 내게는 어떤 위로보다 더 힘이 됐다. 물론, 현실 자각도 됐고.


그 후 나는 팀원이 고민을 얘기하면 그 고민의 해결에만 집중하지 않고 보다 큰 틀에서 팀원에게 가장 좋을 만한 일이 뭔지 생각하게 됐다. 이때 나의 유불리에 대한 고민은 일단 내려놓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팀장은 '얘 빠지면 그 일은 누가 하지?, 나도 모르는 분야인데.. 다른 팀원들도 안 한다고 할 거고, 위에다가는 뭐라고 말하지? 얘를 봐주면 다른 직원들도 불만 생기는 거 아닌가?' 하는 오만가지 생각에 결국은 '살살 달래서 일 시켜야지 어떡해'라는 결정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고충을 토로하는 팀원에게 무턱대고 공감과 위로부터 하고는 '내가 신경 쓰겠다'라고 공언한다. 말이 좋아 '살살 달래고 신경 쓰는 것'이지 실제로는 팀원의 눈치를 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팀장으로서 팀원의 고충 자체를 해결하는 건 중요하지도 않고 사안에 따라서는 팀장의 능력 밖의 일인 경우도 않다. 그보다는 팀원의 이익을 우선하는 결정을 하는 게 장기적으로 상황을 풀어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일러스트 Bianca Blauth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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