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가 수긍할 만한 원칙을 만들고 다 같이 이에 합의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굴러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원칙은 만드는 것보다 지키는 게 훨씬 힘들고, 어렵게 만든 원칙이 쉽게 허물어지면 그보다 더 팀 분위기를 해치는 건 없다는 생각에 웬만하면 원칙을 만들지 말자는 입장을 갖고 있다.
민원 부서의 팀장을 맡고 있는 친구는 신입 시절부터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친구는 규정 친화적이었고 업무를 할 때도 사업을 만들기 보다는 매뉴얼 작업을 선호했고 원칙을 만들고 합의하는 절차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해 두어야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에 친구가 내게 "팀원 한 명이 민원 배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원칙을 정했으면 좋겠다는 거야. 문제제기가 합리적인 거 같아서, 원칙을 정해서 공지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다. 나는 반대 의견을 냈다. 원칙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미 대략의 원칙이 있는데 그게 안 지켜져서 문제인 것이고, 여기에 원칙을 더 촘촘하게 정한다 한들 앞서 말한 대로 결국은 흐지부지 될 것이 빤하고 결과적으로는 팀장의 체면만 상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외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는데, 문제를 제기한 팀원과 팀장과의 특수 관계 때문이었다. 친구는 그 팀원과 유독 가까웠다. 따로 식사를 하고 술자리도 갖고 심지어 여행을 가기도 했는데 나는 팀장이 팀원 중 일부와 특별히 가깝게 지내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갖고 있기도 하고, 다른 팀원들도 팀장이 자기랑 친한 팀원의 말만 듣고 움직인다고 여길 거라는 생각이 컸다. (팀장과 팀원의 특수 관계에 대한 생각은 다른 글에서 따로 써 볼 예정이다.) 친구가 이 사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본인 생각대로 원칙을 정해서 공지했을 것 같다.
그런데 1년 후 친구가 다시 '원칙' 얘기를 꺼냈다. 선임 팀원이 새로 왔는데 원칙을 다 무시하고 있단다. 새로 온 팀원이 몇 명 더 있어서 일부러 회의 자료까지 만들어서 원칙을 공지했는데 선임 팀원은 자기 권한 하에 있다고 판단되는 업무와 관련해서는 멋대로 하고 있단다. 친구가 두 번이나 '우리가 정한 원칙이 있는데 그렇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라고 했지만 선임 팀원은 "원칙이야 뭐 바뀔 수도 있는 거죠. 일단 알겠어요. 나중에 봐서 할게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더란다. 친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내게 의견을 물었고, 나는 이번에도 놔두라고 했다. 원칙이 있다 해도 그 원칙을 운용하는 사람의 재량권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선임 팀원은 자신이 책임과 권한을 가진 업무에 대해서 재량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인데, 그걸 두고 원칙만 강조하면 반발이 생길 게 빤하다. 반발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친구가 지키려 하는 원칙이 선임 팀원의 반발로 인한 손해, 예컨대 팀 분위기 저해나 팀장의 관리 부담 증가 같은 것들을 감수하고라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원칙인지를 따져 보면 그렇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법규가 아닌 한, 팀 운영 원칙은 팀장의 선호와 편의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또한 법규가 아니기에 원칙에 벌칙 조항을 담아 이행을 강제하기도 어렵다. 그렇다 보니 받아들이는 수준은 팀원의 성향에 따라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최대한 원칙을 지키려 하겠지만 위 선임 팀원 같은 사람은 '뭐, 대략 취지는 알겠고.' 정도로 받아들이고 말 수도 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원칙을 만들고 적용하는 데 집착하다 보면 어느 새 팀장은 일이 아니라 팀원들과 씨름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고정된 원칙 보다는 사람과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응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