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구현형학교

3화 - 삼품프로젝트

어느 조직이나 약간의 텃세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장이라 하더라도 새로 부임한 학교의 분위기와 관행을 살펴보고 당분간은 이를 따라야만 학교구성원들이 좋아합니다. 처음 부임하여 학교의 여러 모습들을 관찰하며 학교를 어떤 모습으로 바꾸어 나가야 할지와 구성원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기존 행사 중 낯선 모습 하나가 「삼품제」라는 행사였습니다. 지‧덕‧체 함양을 위한 행사로서 시행되는 「삼품제」는 방과 후에 희망하는 학생들을 모아 퀴즈를 풀고[지], 팀플레이 경합을 하며[덕], 체력을 겨루는[체] 행사였습니다. 몇 년 전까지 입시와 관련하여 학생들에는 수상실적이 필요하고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할 내용이 필요하여 지‧덕‧체 관련 행사를 실시한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왕에 하는 것이라면 지‧덕‧체 덕목을 좀 더 체계적으로 함양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도입한 프로그램이 「삼품프로젝트」입니다. 


         

「삼품프로젝트[지]」는 주당 2회씩 1년에 걸쳐 점심시간에 30분간 학교도서관에서 본인이 읽고 싶은 책을 읽는 프로그램입니다. 프로그램 성격상 여학생들 중에 참여하는 학생이 많습니다. 어떤 책을 선택하여 읽느냐는 학생 본인이 정할 문제이지 학교에서 개입하지 않습니다.                                          

만화책을 읽거나 그냥 책만 손에 들고 빈둥거리는 학생도 있어 아쉬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참여 학생들이 무엇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 그래도 학창 시절에 도서관을 꾸준하게 드나들며 책 냄새라도 맡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생들은 신청자 명부에 독서시간을 스스로 기재하도록 했습니다. 개인적 정직성도 있지만 같은 반 친구들이 서로 보고 있기 때문에라도 참여 여부와 시간을 정직하게 지키는 것 같았습니다.     


「삼품프로젝트[덕]」은 교내의 각종 봉사활동에 참여하여 연간 10시간 이상의 봉사활동을 하면 인정되는 프로그램입니다.     


「삼품프로젝트[체]」는 주당 2회씩 1년에 걸쳐 조회 40분 전에 등교하여 학교체육관에서 30분간 운동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프로그램 성격상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신청자가 더 많습니다. 실시 첫해에는 30명 정도가 신청했지만 이수기준(전체의 80% 이수)을 만족한 학생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프로그램에 신청을 하기는 했지만 1년간 꾸준하게 친구들보다 40분 전에 등교하여 아침운동을 하고 교실에 입실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행인 것은 프로그램 2년 차부터는 이수자 비율이 30% 정도쯤 되더군요. 「삼품프로젝트[지]」의 이수율이 70%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낮은 이수율이지만, 학생들 중에는 의지가 굳고 친구와 그룹을 지어 함께 운동하는 학생들도 있어 그나마 이수자 비율이 높아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래 자료는 두 번째 근무교에서 삼품프로젝트 ‘지’와 ‘체’를 1학기 동안 운영한 후 이수자와 학업성적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작성한 자료입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자료라 생각합니다. 이 자료는 선생님들과도 공유하고 개학식날 방송훈화 등을 통해 학생 전체에게도 설명을 했지만, 제 기대만큼 공감하고 교훈을 얻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이럴 때 일을 추진하는 사람은 허탈감과 무력감을 느끼지요!   


「삼품프로젝트」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고민한 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학생들의 정직성 문제입니다. 생활지도와 관련한 학생과의 대화에서 느끼는 절망감은 학생들이 너무 쉽게 그리고 자주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지요. 본인에게 불리하거나 부끄러운 상황에 대하여 정직하게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별것아닌 일에도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물론 저의 학창 시절과 그 이후의 인생에서 제가 얼마나 정직했는가를 생각하면 학생들을 비난하기 어렵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더더욱 어려운 점은 거짓말을 할 개연성을 생각하여 섣부른 훈계를 하면 바로 역공(?)을 당하여 오히려 사과를 하게 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어느 주 금요일에 「삼품프로젝트」 기록지를 휴대폰으로 촬영해 두고 1주일 후에 기록지를 살펴보니 촬영 후에 가필한 것이 있더군요. 해당 학생을 불러 지난주에 기록을 정직하게 했냐고 물으면 답은 둘 중 하나입니다. 기준치인 2번을 못하여 몰래 추가 기록을 했다고 고백하는 학생도 있고, 본인은 정직하게 기록했다 주장하는 경우인데 이런 경우도 꽤 있더군요. 후자의 경우는 사진을 제시하지요. 물론 그래도 빠트린 것을 기록했다 주장하는 경우가 있지요. 쩝... 어쩌겠습니까? 그냥 믿어야지요! 다만 바라는 바는 이런 확인 절차에 대한 소문이 학생들로 하여금 함부로 허위 기재를 하지 않도록 하는 억제력을 갖게 되어 학생들의 정직성이 좀 더 고양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학교 외부인들은 교사로서 어떻게 학생들을 믿지 못하느냐고 힐난할 분도 많이 있겠지만 제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면 정직이란 가치가 우리 사회에서 쉽게 관찰되는 미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정직성이 많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그런 사회풍토에 대한 책임 중 많은 부분이 학교에 있다고 저는 인정합니다. 학교가 얼마나 정직함을 존중하고 이를 어겼을 때 불리함과 훈육을 해왔는가를 생각하면 학교와 교사에게 많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하나는 공공기물을 사용하는 학생들의 마인드 문제입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농구, 탁구, 배드민턴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체육관 등에 기구들을 비치했습니다. 기대하는 바는 등교 전이나 점심시간 그리고 방과 후에 자유롭게 학교에서 스포츠를 즐기는 학생들이 많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학생이 많이 늘었습니다. 그런데 학교 스포츠를 즐기는 학생들이 공공기물을 사용하는 매너에 문제가 있다는 점입니다.      


탁구공 여러 개를 한주먹에 쥐고 사용하다 바닥에 공을 떨어트리면 공을 줍는 것이 아니라 손에 있는 다른 공을 사용합니다. 운동이 끝난 후에는 라켓을 지정된 보관함이 아닌 탁구대 위에 던져놓고 가구요. 배드민턴도 다르지 않습니다. 가끔 배드민턴 라켓이 부서진 채 발견되기도 하는데, 짐작하건대 화가 나서 라켓을 바닥에 내리쳐 파손한 것이란 판단입니다. 학교장 훈화를 통해 설득도 해보고 일주일 정도 체육시설을 폐쇄도 해보지만 학생들의 태도가 잘 바뀌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에서 일과 중 외에는 학교 체육시설 개방을 꺼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학교의 물건이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고 신독에 대한 훈화도 하며 공공기물을 아껴야 한다고 교육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학생들이 내면화하여 실천하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입니다.      


관련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처음 수업시간 외 학교체육시설 개방 제안을 했을 때, 여러 사람이 반대를 하더군요. 반대 논리 중에는 학생들이 라켓 등을 가져갈 거란 것도 있었습니다. 저는 요즘 같은 풍요로운 시대에 학교 물건을 훔쳐가는 학생은 거의 없을 거라고 예상을 하고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학생의 도덕성이 아닌 사회적 풍요를 이유로 도난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실제 운영 경험상 도난 사례는 거의 없었습니다.      


「삼품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학교교육에 있어서 ‘지속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학교 차원에서도 학생들에게 프로그램을 알리고 그를 통해 학생이 키워갔으면 하는 덕목을 알리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물론 이는 학교만이 아닌 지자체와 국가의 교육정책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정책 실시 초반에는 학생들이 학교의 기대만큼 정책을 따라오지 않지만 학교가 꾹 참고 정책을 지속해 나가면 여기에서도 얼리어댑터가 존재하고 이들을 인정하고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면 좀 더 많은 학생들이 프로그램에 도전하는 것 같습니다. 쉽게 포기하거나 프로그램을 변경하면 학생들이 안정적으로 학교를 믿고 따르기 힘들다는 판단입니다.      


학교보다 큰 차원에서도 정책을 너무 쉽게 바꾸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조급증과 정책을 통해 정책의 수립자와 집행자가 조직 내 인정 등의 이익을 얻으려 하는 관료제적 폐단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교육정책은 너무 가볍게 변화하지 않더라도 매년 다른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일관성 있고 지속적으로 관철되는 것이 오히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30년 넘는 여러 교육정책과 프로그램을 지켜본 사람으로서의 판단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구현형학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