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꼼꼼 Nov 18. 2024

교회의 위기,
당신의 대안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사건’이 발생한다. 

수직적 상승에 환호하더니 기울어지는 것도 모르다가 쓰러진 좀먹은 나무와 같다. 

‘교회’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이는 교회는 한국사회에서 수명이 다했다고 말하고, 희망은 없으니 포기하라고 말한다.

 굳이 개혁하고 변화와 갱신을 위하여 노력할 필요가 있는가를 묻는다. 다시 일으켜 낼 수 없으니 빨리 무너진 후에 다시 재편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쓰러져가는 교회를 붙들고 연명치료 하듯 대안을 마련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다음을 도모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내게 말하는 이들의 아픈 마음과 절망하는 정서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렇다고 지난 역사의 모든 것을 부정하며, 죽기만을 바라고 있기엔 


나의 마음이 교회를 놓아주지 못하고 있다.  


지면을 통해 ‘교회개혁’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것이 내게는 큰 행운이지만, 

이 글을 마주하는 독자의 심정은 무엇일지 두렵기만 하다. 

혹여 거짓된 희망을 다시 심으려는 것은 아니냐 따져 묻는다면 차마 아니라고 말 못 하는 나의 고민을 독자들이 헤아려 주기 바랄 뿐이다. 

한국교회에 대한 내일을 차마 떠나보낼 수 없고, 무조건 Re-set 하라고 선동하는 이들의 거친 표현에 모두 동의하지 못한다. 교회에 대한 실낱같은 기대를 이루어보고자 꿈틀대는 한 존재다. 

이 작은 글과 생각이 누군가에게 닿아 함께 교회에 대한 꿈 꿀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맘이다.  


‘위기’를 정의하기 


한국교회는 위기에 빠졌는가? 아니면 위기를 지나 몰락하고 있는가? 몰락했는가? 위기를 지나고 있는가? 아니면 위기를 맞이할 것인가? 다양한 생각과 주장이 있을 것이다. 

이런 때에 우리는 위기를 정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보자. 우리가 가진 개혁과 변화의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위기관리 표준에서는 ‘사건(Incident)’과 ‘위기(Crisis)’를 구분하고 있다 [1].

이 문서에 따르면 


‘사건(Incident)’은 진행하던 일이 중단되거나 손실이 발생하는 긴급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조직의 존재를 위협하지는 않는 것으로 정의하며, 

‘위기(Crisis)’는 조직의 목표, 평가 또는 미래의 가능성을 위협하여 존재를 흔드는 불안정한 상황으로 정의한다. 


이 문서는 어느 조직이든 ‘사건’은 발생할 수 있으나 그 사건이 ‘위기’가 되어 조직의 ‘존재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도록  ‘사건’을 다루는 방식과 ‘위기’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교회는 끊임없이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이제 웬만한 사건은 매체에 나오지도 않는다. 이전에 한 교회에서 목사가 약 3억의 횡령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방송매체에서 이 부분을 다루어 줄 수 있는가 문의했을 때 횡령한 금액이 너무 적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못해도 30억 정도는 되어야 기삿거리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3억 정도의 횡령은 이슈도 아니게 된 한국교회의 민낯이다. 

아렌트가 경고했던 것처럼 ‘악이 평범해진’ 교회의 모습이 씁쓸하다. 물론 기자의 잘못이 아니다. 밀려드는 제보가 어디 한둘이었을까 그러니 한쪽만 기사로 다루기 어렵다는 그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 간다.  


우리는 교회의 ‘사건’들이 모여 교회가 ‘위기’ 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교회의 무용론을 지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세대가 출현했다. 

하나님나라의 공의와 정의의 실현이라는 목표는 무참히 붕괴하고, 교회에 대한 평가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 교회의 미래를 논하는 것조차 의미 없다는 이들도 있다. 급격하게 탈종교 하는 한국 사회에서 교회라고 예외일 수 없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교회의 고령화 비율을 더 높아졌고, 20~40세대의 이탈은 가속화되고 있다 [2]. 



그럼에도

교회는 ‘사건’의 연속이다. 차마 거론하지 않으려는 것은 

이미 교회 사건으로 인한 피로도와 분노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이런 외적 상황에 대하여 대다수 교회는 더 굳게 문을 닫고 있다. 

더 근본주의로, 더 문자주의로, 더 폐쇄적으로, 더 배타적으로 전환하고 내부 결속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계 밖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내부를 개혁하는 일보다는 경계 안 사람들이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심리를 조작하는 데 급급해 보인다. 이대로는 안 된다.  


교회개혁의 시작은 ‘행동’과 ‘실천’에 있다.  


반복되는 구호나, 세미나 또는 필요의 인식, 위기감 등이 교회개혁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과정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실천과 행동이 없는 구호는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끝난다. 




Visualizing Lewin's 3 stages of community change. 


위의 그림은 Kurt Lewin (1890.9.9.~1947.2.12)의 조직변화 3단계(1947)에 대한 그림이다. 단단한 조직이 이완(해빙)(unfreezing)하고, 변환(changing)의 과정을 거쳐, 새롭게 재결빙(refreezing)하는 과정으로 변화한다는 주장이다. 

이 세 단계는 조직변화에 대한 고전적인 설명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과정을 거쳐 개혁과 변화를 일으키는 조직은 전체의 10%도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다. 


많은 조직이 첫 번째 단계 즉 이완(unfreezing)의 단계만 반복하고 있으며, 

개혁과 변화의 필요성은 강조하나 정작 개혁의 전략과 방법이 없고, 

있다고  해도 행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교회개혁도 유사하다. 


잘못된 교회운영이 교회개혁과 변화에 대한 요구로 이완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행동과 실천을 통해 교회개혁이 시작되고, 이후 교회 전체가 동시대적으로 재기할 수 있음에도 

첫 번째 단계 즉 교회개혁에 대한 구호와 담론뿐이었고 행동과 실천 방법이 너무 적은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지난 많은 기간 동안 교회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교회개혁에 대한 행동과 실천의 전략과 방법에 대하여 모호하거나 추상적인 답을 반복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의 실천이 무엇이냐 묻는 세대에게 이상적 답변을 던져주고 알아서 하라고 무관심했을 수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교회의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꼽으라면 행동과 실천의 방법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며, 길을 따라 행동과 실천함이 교회개혁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https://www.bsigroup.com/globalassets/localfiles/en-th/food-and-drink/article/bsi-crisis-management-article.pdf


 http://www.mhdata.or.kr/bbs/board.php?&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