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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by 작은거인




낯선 사람 만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만나면 아무 말 안 해도 되는데 꼭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한다.
낯선 곳에 가려면 겁부터 난다.
어떻게 가야지? 문은 어떻게 열어야지?
특히 여러 사람 앞에 나와서 발표를 하거나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가슴이 쿵쾅거려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급기야 눈물까지 흘린다.
그런 내가 환갑이라는 나이에 직장을 구해 보겠노라며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 보러 가는 길에는 나의 합격을 응원하는 것처럼 벚꽃이 환하게 피었다.
20년도 훨씬 전에 면접을 보고 이번이 처음이다.
면접실 앞에서 내 체격의 두 배만 한 여자가 나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에도 떨리거나 긴장하는 마음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섯 개의 눈이 동시에 나를 훑었다.
실내는 탁자가 타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건너에 면접관 세 명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나: 안녕하세요.
남자 1: 앉으세요.
나는 의자에 앉으며 세 남자를 훑었다.
남자 1: 자신 소개 좀 해보세요.
나: 저는 65년생 뱀띠 ㅇㅇㅇ이고요.
귀촌 12년 차이고요. 산을
좋아해서 지리산을 종주하고
지리산에 반해 산청으로
귀촌했습니다. 텃밭 농사지으며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될까요?

남자 2: 무슨 요리를 잘해요?
나: 특별히 잘하는 요리는 없고요.
식구들 불평 없이 먹는 정도지요.
아! 김치 잘해요.


세 남자가 동시에 웃는다.


나: 제 김치 먹어 본 사람들은 다 제
김치 맛에 반해요.
남자 1: 예치마을에 사시는데 그쪽에
산불피해는 없습니까?
나: 너무나 감사하게도 저희 마을은
비켜갔습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숲이 다 타버려 마음이
너무너무 아픕니다.

남자 3: 특별히 음식에 대한 조예나
신념이 있습니까?
나: 신념까지는 아니지만 건강한
먹거리를 추구합니다. 먹거리는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이고요. 제가
귀촌한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남자 3: 그런 고집으로 인해
동료들과의 불화나 마찰은
없을까요?
나: 그건 저만의 제 먹거리에 대한
고집이고 직장에서의 문제는
다르지 않을까요? 신입이 직장의
규칙을 따르고 배워야지요.


나는 면접관들의 질문에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면접이 끝나고 "수고하셨습니다."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마음에 행복감이 마구마구 솟구쳤다.
그전에 나였다면 심장이 두근거려 면접관들의 눈도 마주치지 못했을 것이다. 긴장해서 울먹거리느라 묻는 말에 대답도 제대로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여섯 개의 눈동자를 마주 보고 그들이 묻는 질문에 여유 있게 대답했다.
면접이야 합격하면 감사한 것이고 떨어져도 그만인 것이다.
내 나이 60에 직장을 구하기 위해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떨지 않고 당당하게 마주 한 것도 놀라운 발전인 것이다. 나는 그만큼 성장하고 단단해진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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