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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했 다

by 작은거인



순천에 사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들도 보고 진시장도 들를 겸 부산에 가자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진주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시내운전 못한다. 버스 타고 가면 친구가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와야 한다고 했다. 대화 끝에 서진주 톨게이트까지만 오면 시내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주차할 곳이 많다고 했다. 나는 친구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다음날 아침, 네비에 경상대학교 주차장을 찍고 달렸다. 네비는 국도로 가는 길을 안내했지만 시내로 들어가는 것이 두려워 고속도로를 선택했다.
서진주 톨게이트를 나오며 도착시간을 확인해 보니 아직도 20 여분이 남았다.
"뭐야! 톨게이트 근처라면서,,,"
구시렁거리며 운전을 하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차장에 주차할 곳이 없으니 후문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통화를 하는 사이 차는 이미 경상대학교 정문을 지나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네비 찍게 끊어!"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니 와도 너무 멀리 와버렸다.
양쪽에서 차는 휙휙 달리고 신호등 보랴, 차선 보랴, 눈알이 빙글빙글 돈다. 신호 대기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가좌동 우체국으로 오란다.
차는 우회전을 해야 하는데 우체국으로 가는 길은 좌회전이다.
당황한 나는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에라 모르겠다. 차 머리부터 들이밀었다. 뒤에 서 있던 차에서 빵~~~! 빵! 빵! 빵!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미안하다는 신호로 비상깜빡이를 켜니 이내 조용해졌다.
그리고 친구를 만났다. 반가운 건 나중이었다.
"야, 이씨! 너는 나를 어떻게 이렇게 골탕을 먹이냐? 여기가 톨게이트 근처야?"

우여곡절 친구를 만나 부산으로 가는 길에 벚꽃은 눈이 부시다. 긴장했던 내 마음도 환하게 웃는 벚꽃에 취해 풀어졌다.

친구들을 만나 우리는 끌어안고 겅중겅중 뛰었다. 맛있는 점심과 커피에 수다까지 얹으니 시간은 ktx처럼 달렸다.

서투른 시내운전이 무서워 어둡기 전에 부산을 출발해서 진주에 도착했다. 친구와 헤어지고 운전석에 앉아 진주에서 지금 들어간다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시내를 빠져나오는데 가다 보니 학교 운동장이고 가다 보니 생비량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어? 이 길은 아닌데? 차를 돌려 방향을 잡으니 3킬로 미터를 더 달렸다.
낯익은 길이 나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길에 집중하느라 보이지 않던 노란 쪽지 하나가 운전석 앞에서 나풀거렸다.
차를 세우고 볼 겨를도 없이 노란 쪽지를 집까지 데리고 왔다.
9시 46분 주차, 관리원 000, 농협계좌번호, 시간당 000 라고적혀 있었다.

어라? 친구는 분명히 무료주차장이라고 했는데, 나는 또 당했다.

부산 친구들이 가면서 먹으라고 사 준 빵도 먹을 시간이 없어 얌전하게 집으로 데리고 왔다. 저녁으로 요구르트에 빵을 찍어 먹는데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두려움 때문에 시내 운전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의 의도하지 않은 속임수 덕분에 나는 진주시의 좁은 도로를 달릴 수 있었다. 운전실력도 그만큼 늘었다.
친구를 골탕 먹이는 건 괘씸죄에 처하는 게 마땅하겠지만,
내 운전실력이 그만큼 늘었으니 이 또한 감사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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