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순례길, 묵곡생태공원
토요일 아침. 산행을 하려고 목적지 없이 나섰다. 어디로 갈까 잠시 망설이는데 문득 마음속에 스치는 이름 하나 떠오른다. 엄혜산, 그 이름에 이끌려 성철스님의 순례길이 있는 겁외사로 달렸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머리를 찾아보았지만, 겁외사 주변은 생각보다 한적했다. 이정표도 보이지 않고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어디로 들어서야 하나?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 몸의 감각으로 산길로 들어섰다. 서걱이는 낙엽을 밟으며 좁은 오솔길로 들어서니 군데군데 산소가 보였다. 그곳에서 길은 끊어졌다.
또 어디로 가야 하나?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망개넝쿨을 헤치며 능선을 향해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 능선에 서니 길이 나타나고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펼쳐졌다. 그 장엄한 풍경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가슴 깊이 호흡한다. 방향을 알 수 없던 산길에서 길을 찾아 헤매던 두려움은 안도감으로 변했다.
엄혜산으로 가는 소나무 숲길에 들어서니 이슬에 젖은 흙냄새가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산 아래로는 경호강과 양천강이 만나 남강으로 흐른다. 강바람은 능선을 스치며 솔향 실어 걷는 이의 오감을 깨운다. 정상으로 가는 길, 나뭇잎 사이로 강 건너 원지 마을이 평화롭게 다가온다. 정상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는 작은 폭포 속삭이듯 흐르고 가파른 길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경호강과 양천강이 만나는 원지 둔치의 두물머리로 내려서니 성철스님 순례길로 이어지는 나무데크길이 나온다. 길은 경호강을 따라 남강으로 이어지고 나는 물소리 따라 걷는다.
길 끝에 보이는 겁외사는 2001년 3월 30일에 성철스님의 생가터에 지은 절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다는 뜻을 품은 이곳은 성철스님의 가르침이 스며들어 있다. 불자는 아니지만 조심스레 합장하 고 마음속으로 작은 기도를 올렸다.
절을 나와 길 건너에 있는 ‘묵곡생태공원’을 걸었다. 남강 상류를 따라 이어지는 숲길은 강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봄에는 강변을 따라 벚꽃길이 이어지고. 여름엔 참나무 숲이 짙은 그늘을 만든다. 가을이면 붉은 꽃무릇이 줄지어 피고 맥문동의 보라빛이 색의 향연을 펼친다. 은목서 향기 가을바람 따라 훨훨 날아다니고 붉게 익은 보리수 열매가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겁외사에서 성철스님의 무소유의 뜻을 배우고 생태숲 공원에서 황톳길을 맨발로 걸었다.
능선 위에서 맞은 바람, 흙길의 감촉, 그리고 붉은 보리수의 떫은맛까지, 엄혜산의 아침은 고요하게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