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호, <역사 고증 반영의 문제와 역사의식>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인간과 다른 동물들을 어떤 방식으로 구분하는가?
역사 왜곡은 어떻게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해본 한 대학생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 할머니는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 너무나도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 흐릿한 장면들 뿐이지만, 곶감이 싫다던 나를 위해 약과와 한과를 한가득 접시에 담아 오던, 집안의 막내라며 귀여워해 주던 할머니의 따스한 눈빛이 어느 순간 사라져 서운했던 기억만은 아직도 남아있다.
기억이 지워진다는 것. 기억이 변한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주위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 인지와 기억에 생긴 구멍으로 한 방울씩 흘러나가던 삶이 메마르게 되고, 종국엔 생의 불씨마저 흘러나가게 되는 것. 기억과 뇌에 생긴 문제는 아주 작더라도 전체를 무너뜨릴 힘이 있기에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에게 있는 또 하나의 기억이자 뇌인 역사에도 해당된다.
우리의 머릿속 뇌를 컴퓨터의 내장 메모리에 비유한다면, 역사란 지금까지 흘러간 모든 이들의 내장 메모리 데이터를 복사해놓은 외장하드이다. 그리고 이 외장하드의 존재는 인류와 문어(文魚)의 차이를 만들어주었다. 혹시 수렴 진화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수렴 진화란, 박쥐와 새의 조상이 다름에도 두 종 모두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뿌리가 다른 생물에게서 비슷한 형태의 기관이나 생존 방식이 나타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문어는 인류와 수렴 진화 현상을 보이는 생물이다. 우리처럼 ‘지능’을 토대로 진화한 무척추동물, 문어. 문어의 지능에 대한 연구는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고양이보다 두배나 많은 뉴런을 가진 이들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알고, 사람들을 각자의 특징에 따라 구별할 수 있으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음식이 있다는 것을 학습할 수 있을 정도로 다른 동물들에 비해 놀라운 지능을 보여준다. 심지어 이들의 각 다리는 하나의 뇌와 같은 기능을 한다.
그런데 왜 문어들은 이런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 인간들처럼 문명을 만들지 못했을까. 바로 역사의 유무이다. 문어는 태어나자마자 부모 개체와 떨어져 혼자 살아가게 된다. 높은 지능을 가졌음에도, 수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음에도 한 개체가 죽으면 그 데이터는 그저 깊은 바닷속으로 흩어질 뿐이다. (아니면 다른 생물들의 뱃속으로 녹아들어 가거나) 이들의 ‘지식의 탑’은 각 개체가 첫 주춧돌부터 쌓기 시작해, 수명이 다하면 모두 무너질 뿐이다.
인류의 발전은 수 없이 많은 선대들의 발견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우린 어떤 유목민으로 인해 치즈를 만드는 법을 다시 연구하지 않아도 되었고, 어떤 과학자로 인해 중력의 존재를 의심할 필요가 없었으며, 한 위대한 왕으로 인해 문자 체계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없어졌다. 과거의 산물은 역사로 남아 미래를 위한 발판이 된다. 그들의 발견만큼 우린 다른 연구와 개발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의 고증에 우린 더욱 민감해져야 한다. 잘못된 지식의 전파. 더욱이 과학이나 기술이 아닌 역사적 사건과 경험들의 잘못된 전파는 당장엔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잘못된 기억의 변화가 조금씩 삶을 갉아먹어 들어가는 것처럼, 하나의 커다란 뇌인 역사가 변질되기 시작하면, 그로 인해 이뤄질 수 있었던 수많은 인과관계들이 어그러지기 시작할 것이며, 잘못 치환된 벽돌 하나로 인해 지식과 인문의 탑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없애버리고 싶은 벽돌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넘어짐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걸을 수 있게 되고, 수없는 실연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좋은 연애를 이뤄낼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그 어떤 잘못되고 부끄러운 역사라도 이를 직면하고 기록하여 올바르게 고증하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억을 바꾸지 말자. 기억을 왜곡하지 말자. 그 작은 구멍으로 시작해 우리는 어느 순간 문어가 되어있을 것이다. 역사가 세워져 지금까지 내려온 이유는 우릴 문어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이다. 우린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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