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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gmagazine Apr 12. 2021

불통의 시대, 다시 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_최광민

_4월호 <university, agora>

우리 사회는 왜 제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아고라 형성의 장애물은 무엇인가?)

불통의 시대로서의 현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현대사회는 불통의 시대이다. 성별 간의 불통, 직급 간의 불통, 세대 간의 불통, 가족 간의 불통. 불통이 만연한 시대이다. 서로가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한다. 불통은 혐오를 낳고 혐오는 사회의 결속을 저하시킨다. SNS와 미디어 또한 소통의 장이 되긴커녕 혐오의 장으로 변질됐다. 더욱이 코로나 19로 인해 사람들의 불통은 심화됐다. 나는 이에 대한 해답이 대학생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대학생들의 올바른 소통이 사회 전체 소통의 불씨가 될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한다. 역사적으로 민주화를 이끈 주체는 대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대학생들의 소통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대학생들 역시 불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대학생들의 대표적인 아고라인 강의실과 에브리타임을 통해 알 수 있다. 먼저 대학교 강의실을 살펴보자. 우리는 EBS 다큐멘터리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를 통해 대학 강의실의 문제점을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수업에서 침묵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수업에서 교수는 질문할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지만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 촬영 측에서 실험자를 수업에 개입시켜 많은 질문을 시켰다. 관찰 결과 사람들은 질문한 사람을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했다. 학생들을 인터뷰하여 질문에 관한 생각을 물었을 때, 대부분이 “나댄다, 질문하다가 혼난 적 있어 질문을 자제하게 되었다, 수업에 방해될까 봐 질문하지 못했다.” 등의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볼 수 있는 한국 교육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침묵하며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를 강요받는다. 강의실은 교수와 학생의 소통 장이다. 강의실만큼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소통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장소는 많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과 문화는 학생들에게 질문하지 않을 것을, 소통하지 않을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한다.


 다음으로 에브리타임을 살펴보자. 에브리타임은 대학생들의 대표적인 소통 앱이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시간표를 작성하고 중고거래를 하기도 하며 여러 가지 의논을 주고받는다. 최근 에브리타임에 한 가지 재밌는 글이 올라왔다. “19) 최순실이랑 문재인 정부랑 방탄소년단이랑 페미니스트”라는 제목의 글이다. 제목과 다르게 글의 내용은 자신이 잃어버린 체크카드를 찾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제목 어그로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많은 분이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라고 발언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이는 에브리타임의 현실을 보여주는 최적의 글이다. 자극적이고 갈등을 조장하는 글이 에브리타임의 주요 게시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최근 에브리타임에서 자신의 고민을 올린 여대생이, 자살을 부추긴 악성 댓글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도 있었다. 실제로 대학생들은 에브리타임에서 저급한 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성별 간의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글, 편협한 정치색으로 선동을 부추기는 글, 성범죄로 기소할 사유가 되는 글 등이 있다.


 강의실과 에브리타임은 불통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지만, 불통의 원인에서 차이점을 갖는다. 강의실은 ‘침묵’에 의한 불통이지만 에브리타임은 ‘막말’에 의한 불통이다. 나는 이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 한국 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교육은 주요 과목의 단순 암기 위주의 교육이다. 이는 첫째로 사유의 무능으로 이어지고 둘째로 능력의 협소화로 이어진다. 사유의 무능은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것 이상의 사고를 하지 못한다. 비판적 능력을 기르지 못할 뿐 아니라 배려와 존중의 능력 역시 기르지 못한다. 배려 역시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함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능력의 협소화는 주요 과목의 지식 외의 다른 능력을 갖추지 못함을 의미한다. 세상에는 국, 영, 수와 같은 주요 과목 외에도 필요시 되는 지식과 능력이 많다. 사회적 능력, 공감 능력, 도덕적 능력 등이 있다. 하지만 한국 교육은 주요 과목 외에 능력을 경외시한다. 이는 아고라 형성의 본질적 장해물이 된다.


 나는 체계화된 토론 교육이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유대인의 하브루타 공부법과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에서 참조할 수 있다. 하브루타는 토론식 공부법이다. 이는 지식의 전달만을 목적으로 하는 한국식 교육과 다르다. 조용히 혼자서 암기하고 수용하는 공부와는 달리, 사람들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질문하며 소통하는 공부이다. 위 다큐멘터리에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한 그룹은 혼자서 공부하고 다른 그룹은 둘이서 토론하며 공부하여 역사 시험을 보았다. 실험 결과 토론하며 공부한 그룹이 더 나은 성적을 보였다. 이는 학습능력에서 월등할 뿐 아니라 학생들이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며 발전하는 소통 장으로서의 강의실을 형성한다. 하지만 하브루타 과정에서도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공론장 이론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 하버마스는 자신의 책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올바른 공론장을 위한 5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평등성, 자발성, 합리성, 비판 가능성, 상호존중의 5가지이다. 우리 사회는 이 중 특히 합리성과 상호존중이 부족하다. 합리성을 통해 우리는 진실되고 이해 가능한 말을 할 수 있고 상호존중을 통해 우리는 서로 인정하고 배려할 수 있다. 이 원칙들을 지킨다면 우리의 소통은 타인을 배제하고 혐오하는 것이 아닌 공감과 연대를 가능케 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나는 대학생이야말로 이러한 개혁의 주체라고 생각한다. 대학생들은 잘못된 교육과정의 경험자로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할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상아의 진리 탑을 박차고 거리에 나선 우리는 질풍과 깊은 역사의 조류에 자신을 참가시킴으로써 이성과 진리, 그리고 자유의 대학 정신을 현실의 참담한 박토(薄土)에 뿌리려 하는 바이다.”라고 시작하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4·19 혁명 정신은 오늘날 대학생들에게 다시 새겨져야 할 민족정신이다. 이 정신을 통해 대학생들은 세상을 향해 “올바른 교육을 통해 올바른 아고라를 형성하자!”라고 주장해야 한다. 물론 제도의 개혁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 가도 고민해야 한다. 이는 올바른 아고라를 형성하기 위하여 대학생들 개인의 의식 각성을 촉구한다. 대학생들은 먼저 침묵을 깨야 하며 합리적 의사소통을 해야 하고 서로 존중해야 한다. 계속해서 고민하고 토론하여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해야 한다. 그리하여 작은 움직임이 큰 움직임이 되어 더 나은 아고라로, 더 나은 사회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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