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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fia Jul 11. 2021

굳어진 기득권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낭비와 해결

학벌 기득권, 재력 기득권, 젠더 기득권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에는 당연히 신분제가 제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현대 사회에선 당연한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자본주의 한국 사회는 여러가지 다양한 권력을 쟁취함으로써 사회에서 우위를 점하는 기득권층과 그것에서 배제된 나머지 사람들로 양극화되고 있다. 기득권을 그 성격에 따라 학벌, 재력, 젠더 측면으로 나누어 그 양상을 살펴보고 그것에 대한 나름의 해결을 제안해보고자 한다.


 먼저 학벌주의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 교육은 오직 입시를 목표로 진행된다. 개인의 일생에서 출세를 위해 학벌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입시 경쟁을 뚫고 소위 sky대학이나 인서울 대학에 입학한 사람들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엘리트적 기득권을 획득한다. 대학 입시에서 성공한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들의 사회적 성공의 정도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점점 더 벌어지게 된다. 거의 단 한번의 기회로, 획일적인 시험을 통해 한 개인의 인생이 좌지우지 되는 것이다.


 사람의 재능은 엄청나게 다양하다. 엉덩이로 하는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사람들과 토론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고 손재주가 아주 좋은 사람도 많이 있다. 그런데 그냥 정해진 과목의 시험으로 개인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 나는 대학 평준화에 찬성한다. 대학은 그 존재적 본질을 잃고 그저 취업을 위한 과정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제 대학은 정말 어떤 학문을 더 공부하고 싶을 때 가는 것으로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른 기회를 갖는 것이 사회의 불필요한 낭비를 막는 길이다. 모두 대학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다 대학은 필수라고 생각하는 탓에,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많은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재력 기득권 또한 공고하다. 대기업의 하청업체에 대한 갑질도 심각하고, 중소기업에게 대한민국의 기업 환경은 척박하다. 특히 빈부격차에 따라 개인이 받는 교육의 질이 다른 것도 사회적, 경제적으로 매우 위험하다. 넉넉한 경제 사정이 없으면, 대학도 각종 고등고시도 준비하기 어려운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가정의 경제환경 때문에 자신의 사회적 성공이 어려워지는 것은 명백하게 정의롭지 못하다.


 나는 이런 부정의를 위해 국가의 공교육과 복지를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싶다. 물론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아이들이 완전하게 획일적인 교육을 받게끔 하긴 힘들다. 하지만 공교육의 질을 끌어올리고 저소득층에 대한 국가의 대폭적인 교육적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학이 평준화가 되고 그로 인해 과열된 경쟁이 해소된다면 모든 아이들이 적어도 부모님의 재력과 상관없이 비슷한 출발선상에 설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체계적인 국가 의료보험제도를 보아도 돈에 의해 기본적인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자신의 경제 상황과 관련없이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게 해 줌을 알 수 있다.


 젠더 기득권은 다소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사회에는 여성 할당제 등 여성을 위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공무원이나 기업에서 고위직으로 올라갈 수록 여성의 비율은 뚝 떨어지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가정 단위에서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군대도 가지 않은' 여성들은 여성들에게 편중되어 있는 집안일 부담으로 인해 자신의 성공을 추구하는데 온전히 집중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맞벌이 부부라고 해도 아이가 아프면 엄마가 챙기는 것이 당연하다. 남성들은 같이 해야 할 집안일을 '도와준다'. 가장은 남자만이 차지할 수 있는 가족 내의 왕좌이며, 딸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상주도 될 수 없다. 오히려 사위가 상주가 된다. 언어 생활에서도 문제가 심각하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언어로서 사람은 세상의 사물을 구별하고 인식한다는 것은 이젠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경찰 아저씨'가 익숙하고 아내는 '집사람', '안사람'이 된다. 여자가 남편을 도우면 '내조'가 되고, 남자가 여자를 도우면 '외조'가 된다. 기본적으로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안의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고 남자가 항상 디폴트값(기본값)이 된다.


 여성의 인권 문제가 나타나는 원인은 개인적인 차원과 사회적인 차원이 연결되어 나타난다. 결혼한 여성은 살림을 담당하고 육아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기 힘들다.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도 그런 것들이 걸림돌이 된다. 결혼한 여성은 육아와 살림으로 24시간 일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고 휴가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정에서 여성이 해야 할 일과 남성이 해야 할 일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야 한다. 여성도 육아에서 퇴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또 불평등한 젠더를 담고 있는 언어 습관도 고쳐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여성은 '부가적인 존재'라는 프레임을 깨트릴 수 있다. 이 세상에 다 똑같은 노란색은 없다. 은행 나뭇잎의 단풍 색깔이랑 내가 좋아하는 노란 티셔츠의 색깔은 실제로 똑같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노랗다'라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서 그 두가지 사물을 인식한다. 이렇게 언어라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창이다.


 기득권층이 먼저 자신의 과도한 이익을 포기하고 내려놓는것도 중요하다. 사회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으로서 먼저 그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면, 양극화를 해소하는데 가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나는 역사적으로 봤을 때, 위로부터의 개혁은 아주 중요하지만 그 "위로부터"는 결국 "기득권으로부터"라는 뜻이기 때문에 '위로부터로만의' 개혁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개혁을 실행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기득권층이기 때문에 효과가 강력할 수 있지만, 약자의 입장에선 부실할 수 있다.


 기득권은 앞장서서 자신이 얻은 권리들을 사회와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사회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이 소수의 입장이라는 이유로 무시되거나 희생되지 않아야 한다. 계속해서 사회가 자신의 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자신의 위치와 상관없이 자신의 사회적 성공과 자아실현의 꿈을 쫓을 수 있어야 한다. 질 좋은 교육의 기회가 부모의 부에 의해 결정되어선 안된다. 여성과 남성은 권리와 책임을 동등하게 나눠 가져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경제 및 사회적으로 낭비가 없고, 사회의 인적 자원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심화되고 있는 젠더 갈등도 해소해야 한다.


 기득권층은 고정되어 있어선 안된다. 누구나 기득권을 차지할 수 있고 그 기득권을 쥔 사람은 계속해서 바뀔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영원히 그 자리에 있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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