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서울 성모병원 정신과 병동을 퇴원하며 말 안 했던 게 하나 있다. 의사선생님은 절대로 병동에서 만난 환자들과 연락을 하지 말라고 했다. 병동이 폐쇄와 개방으로 나누어져 있고 또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여기로 많이들 왔다 갔다 하다 보니 핸드폰을 쓰지 못하는 보호에서 내가 전화를 하거나 친구들이 전화를 할 수 있도록 우리는 이미 번호를 다 교환한 상태였다. 하지만 의사선생님은 지금은 냉정하게 들릴 수 있어도 서로를 위해서 연락을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병동에서 특별한 친구를 사귀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진짜 친구였다. 나는 선생님 말씀을 어기고 그 친구와 연락을 꽤 자주 하며 지냈고 안부를 묻기도 그날의 생각과 감정들을 공유했다. 따로 만나기도 했다. 퇴원하고 나서도 지치고 힘들 때 서로에게 의지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죽고 싶다는 마음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죽고 싶은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공감 없는 위로를 하는 일이 많아졌고 때로는 위로도 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그 친구가 자살시도를 하면 '많이 힘들었구나. 어떤 마음이었어? 지금은 어떤 마음이야? 괜찮아?'라고 말해야 하는데 나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 나 진짜 받아들일 수가 없을 것 같아.'라며 나의 기준에서 말했다. 죽음은 답이 아니라고 죽지 말고 살라고 강요했다. 그러려던 건 아니었지만 그게 어쩌면 그 친구에게 더 상처를 주지 않았나 싶다. 나 또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죽고 싶다는 마음에 다시 휩싸여 며칠이지만 헤매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 만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어쩌면 연락을 하지 않는 게 서로를 위한 일이라고. 왜 선생님이 연락을 하지 말라고 그렇게 강조하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인스타 부계정에 친구의 자해 사진이 올라왔다. 친구는 피부 재생 치료를 받으며 부단히 노력하여 자해를 하지 않은 지 오래됐지만 노력해 온 걸 엎을 만큼 힘든 게 보였다. 본능적으로 연락을 했다. 하지만 부담은 주고 싶지 않았다.
언제든 얘기하고 싶으면 해. 미안해.
답장이 왔다.
뭐가 미안해. 나 많이 생각해 줘서 고마워.
깨달았다. 어쩌면 운명처럼 만나 서로가 서로를 아프게 하기도 하는 사이일지라도 그 친구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그리고 그걸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왜냐하면 우리의 우정은 찬란했으며 그 시간은 인생에서 누군가와 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새비 아주머니는 엄마의 상처였어. 그렇지만 자랑이기도 했지. 엄마를 크게 넘어뜨렸지만, 매번 털고 일어날 힘이 되어주기도 했으니까. 엄마가 새비 아주머니를 떠올리며 가장 많이 했던 얘기는 이거였어. 새비가 나를 얼마나 귀애해줬는지 몰라, 새비가 나를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몰라.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 아픈 일이 많았는데도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 아픈 일이 많았는데도, 새비 아주머니를 기억하는 엄마의 표정은 늘 환했어. 꼭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처럼 말이야.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런 상처 같은 거 받지 않아도 됐겠지만 그래도 엄마는......"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는 삶을 택하셨겠네요."
- <밝은 밤> 최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