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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 Nov 06. 2023

2 흉선종 제거 수술을 받다

흉강경 수술

수술 전날 병원에 입원했고, 나는 그 전날까지도 일을 했다. 나를 대체할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일을 쉰다는 게 참 마음이 불편했다.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나로 인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걸 

견딜 수 없는 사람이었다. 무리의 무리를 더해서 정리를 끝냈다.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 정도의 부재를 예상했지만 나는 사실 뭔가 예감하는 게 있었나 보다.

슬리퍼까지 챙기고, 내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못 돌아올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었다.

이럴 때 보면 무슨 신기라도 있는 건 아닌가 싶다.



폐질환 환자들이 많은 병동이어서 곳곳에서 임종을 맞을 것 같은 기침 소리가 흔했다.

사람 일은 알 수 없다는 말을 실감하듯이 누워 있는 내내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다 폰을 켜고 메모장에 유언장 같은 편지를 남겼다. 

그때 당시에 만나던 사람한테 남겼던 글인데, 참으로 구구절절하다.

연애 관련해서는 너무도 할 이야기가 많으니 이건 나중에 패키지로 써야겠다.


수술 당일.

예정된 시간보다 더 늦게 들어갔다. 보통 노인, 어린이 순서로 들어가다 보니 그들 입장에서

젊은(?) 나는 끝 순으로 밀려났나 보다. 수술 전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시간도 상당했던 것 같다.

뭔가 다 같이 영화라도 보고 있을 수 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멍하니 있다 보면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생각보다 멘털이 약한 사람들은 너무 불안해했다.)

자세히는 기억나질 않지만, 극도로 불안해하는 어떤 아주머니 환자분께 괜찮으실 거라고

연거푸 말씀드렸던 기억이 있다. 생각해 보면 우습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가.



마취가 잘 되는 편인데, 그만큼 잘 안 깨는 편이어서 항상 걱정을 했다.

다행히 그 부분 관련해서는 생각보다 문제없이 잘 깼다.

사실 그보다 더 걱정인 부분은 수술의 종류였다. 비용 부담이 크더라도 흉터가 적게 나는 

로봇 수술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부모님 때문에 그렇게 진행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경우에는 흉강경으로 수술한다고 들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종양의 크기가 클 경우에는 개흉을 할 수도 있다고 들었다.

개흉. 개복. 이처럼 무서운 말이 있을까. 들리는 어감은 판관 포청천에 나오는 개작두 같았다.


다행히 개흉을 하지 않았다. 이게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해야 하는 일인지는 한참 후에나 알았다.

개흉을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회복 속도를 비교하게 되니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나는 좀 애매한 경우였다. 개흉 하지 않는 대신에 흉강경으로 수술 후, 종양의 크기 때문에

갈비뼈를 잘라 꺼냈다고 들었다.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 갈비뼈가 잘렸다가 붙고 있다는 건 기침을 해보고 문자 그대로 '뼈저리게' 알았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가끔 심한 기침을 할 때면 그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아, 내 갈비뼈.


수술을 끝내고 병실로 돌아왔을 때 상반신이 다 으스러진 것 같았다. 예전에 했던 팔 수술이라든가 사랑니 수술은 비교할 게 아니었다. 온몸이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몸에는 여러 줄이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지금 의학 드라마를 쓰고 있는 게 아니니, 전문적인 용어를 기대하지 말기 바란다)

기억나는 건, 진통제, 수액, 소변줄, 흉관 정도였다. 하나씩 제거할 때마다 얼마나 시원했는지 모른다.

생각해 보니 소변줄이라니, 좀 놀라웠다. 정신이 없어서 체감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엄마는 이 소변줄이 너무나도 불편한 존재였나 보다. 뭐랄까 나를 성녀 정도로 생각하시는 건지,

젊은 남자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드레싱을 할 때마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아직도 선했다.

나는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정말 하이라이트는 '흉관'이었다. 

이 흉관을 통해 좋지 않은 것들이 나와야 하는데, 정해진 용량이 채워져야 뺄 수 있었다.

그렇다. 나는 보통의 사람이 아니었다. 참으로도 천천히 느긋하게 통이 채워지고 있었다.

빼주고 싶어도 뺄 수 없어서 안타까워하는 의사분들을 여러 명 보내고 이제는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렇게 앉아서 자는 고통이 시작되었고, 그 고통의 친구로 변비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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