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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종대 Oct 04. 2022

일을 디자인하라!

경품 추첨, 행사 먹는 하마인가!

경품 추첨행사 먹는 하마인가!     


살고 있는 면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행사가 있다. 일 년에 두 번 하나로마트 경품 추첨 행사이다. 인구 소멸이니 지역 소멸이니라는 위기의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오늘내일하시는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행사장으로 나오게 하고 추첨 번호가 적힌 행운권 여러 장을 손에 쥐고 하루 종일 버틸 수 있게 하는 불가사의한 힘을 제공한다. 이렇게 단 하루 회춘을 제공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경품이다. 그냥 싼 경품이 아닌 고가의 경품이라야 한다. 1등 경품은 금반지 다섯 돈, 2등은 대형 냉장고, 3등은 대형 TV, 4등은 전기밥솥, 5등은 자전거로 거의 준비된다. 가장 개수가 많은 경품은 두루마리 휴지 묶음이다. 평소 공짜로 생기면 기분이 아주 좋은데 이날만큼은 두루마리 휴지 묶음이 반갑지 않다.    

  

하나로마트 경품 추첨 행사는 말 그대로 경품을 추첨하기 위한 행사라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다른 목적과 내용을 가진 행사에서도 주변의 습기를 빨아들이는 물먹는 하마처럼 다른 프로그램들을 집어삼키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의 주된 관심은 ‘뭐 하는데?’보다는 ‘뭐 주는데?’에 쏠려 있다. 사람들에게 행운을 안겨주고 욕구를 채워주는 경품 추첨 행사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을 행사장으로 유인하고 사람들을 붙잡아 두는 보조적인 수단이 행사 목적과 주 내용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시간 또한 많이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행사 후에도 프로그램과 출연진보다 “00 마을 000가 1등 냉장고 탔데이”, “내 번호 부르는 줄 알고 좋다고 나갔는데 잘못 들었더라”와 같이 1등 상품의 당첨자, 경품을 아깝게 놓친 아쉬운 이야기들이 더 많이 돌게 된다.      


일반적인 경품 추첨 순서와 방법은 이렇다.

- 경품은 행사비에서 예산을 집행할 수 없기에 대부분 후원을 받는다. 

- 접수된 경품에 후원자의 이름과 등위를 적어 무대나 앞쪽에 잘 보이도록 진열한다.

- 행사장에 입장하거나 행사에 참여하면 번호가 적힌 두 장의 행운권 중 한 장을 참여자에게 준다.

- 같은 번호가 적힌 나머지 한 장은 추첨함에 넣는다.

- 일반적으로 행사 마지막에 한다.

- 사회자는 경품 추첨 시간을 알리고 무대나 진행석 앞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한다.

- 경품 추첨자를 호명하여 무대에 나오게 한 후 추첨함에 있는 번호를 뽑게 한다.

- 사회자는 추첨되는 경품을 미리 알린다.

- 사회자는 뽑은 번호를 부른다.

- 해당 번호의 행운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손을 들고 큰 소리로 대답하고 앞으로 나온다.

- 번호를 확인하고 경품을 전달한다. 이때 후원자의 이름을 알린다. 

- 해당 번호의 사람이 자리에 없을 시 다시 뽑는다.

- 가치가 낮거나 등위가 낮은 경품부터 차례대로 추첨한다.

- 1등 상품은 제일 마지막에 추첨한다.     

※ 1등 경품 추첨자가 결정되는 순간, 사람들이 자리에서 동시에 일어나 장내가 어수선하기 때문에 주요 전달사항이 있을 시 1등 경품 번호를 부르기 직전 안내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송쌤의 문제의식을 정리하면 이렇다.

- 행사장에 사람들을 오게 하는 주된 동력으로 이용한다.

- 행사장에 사람들을 붙잡아 두는 주된 방법으로 이용한다.

- 행사 내용과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흐리게 한다.

- 행사 구경과 참여가 경품 추첨을 기다리기 위한 시간 때우기가 되어버린다.

- 행사는 달라도 경품 추첨은 같은 방법이 되풀이된다.

- 고가의 경품일 경우 추첨 과정에서 가끔 문제가 발생한다.

- 의전 서열에 비례하여 고가의 경품을 추첨한다.

- 고가의 경품이 소수에게만 돌아간다.

- 행사에 대한 기억을 빼앗는다.

- 주민들의 주체성과 자발성을 떨어트린다.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관행을 바꿀 기회가 없었다. 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2021년 안계면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 중 주민총회 준비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경품 추첨 방식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젊은 시절처럼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 주민자치회 활동을 통해 절차와 과정에 대한 중요성을 말하고 회의를 통해 합리적인 의사를 결정하는 원칙을 지켜야 했다. 주민총회를 준비하고 실행할 행사 계획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회의는 준비위원회 회의, 임원회의, 정기회의를 거쳐야 했다. 새로운 시도를 제안할 때 “바꿉시다”라고 말하면 설득력이 부족하다. 기존 경품 추첨의 문제점과 새로운 시도의 방향성과 효과에 대해 논리적으로 준비해서 제안해야 동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을 언급했다. ‘고가의 경품’, ‘높은 사람이 무대로 나와 추첨하는 방식’, ‘많이 소요되는 시간’ 무엇보다 주민 스스로 뭔가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주민자치회 활동의 목적을 강조하자 회의에 참석한 분들이 바꾸어 보자는 것에 동의했다. 주민자치회 회의에서 참석자의 다양한 의견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상세한 안을 미리 제시하면 곤란하다. 참석자들이 완성도 높은 내용과 방법을 보았을 때 생각 문이 열리지 않게 되어 입도 열리지 않는다. 안을 만든 사람은 자신이 만든 결과물에 대한 애착을 가지기 때문에 계속 주장하게 되며 반대에 부딪힐 때 상처를 받고 감정이 상하기도 한다.    

 

임원 회의에서 세부 안이 논의되었다.

고가의 경품 문제는 1점당 가격대가 3만 원을 넘지 않는다는 기준이 정해졌다. 행운권 지급은 주민투표 시간에 투표를 완료한 사람에게 주는 것으로 정해졌다. 가장 중요한 추첨 방법이 남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틀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송쌤은 공식적인 행사를 마친 후, 앞서 추첨되어 경품을 받은 사람이 다음 경품을 추첨하는 방법으로 생각했다. 만약 경품이 100개이고 한 사람당 30초가 소요된다고 하면 예상되는 시간은 30분이다. 그러나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참석자가 많은 농촌의 특성상 예상대로 착착 진행되기가 만무하다. 개인적으로 더 이상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지만 체육문화 분과장님이 한번 해보니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고 효과가 있었다며 행사 후 행사장을 나가면서 추첨함에서 경품이 적힌 교환권을 직접 뽑고 해당 경품을 받아 가는 방법을 제안하셨다. 신선하고 효율적인 방법이라 모두 동의를 하셨다. 개인적인 의견이 반영되었을 때보다 무척 기뻤다. 여러 사람의 머리가 모이니 좋은 방법이 나왔다. 이렇게 과정과 절차를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경품 추첨 순서와 방법은 이렇다.     


- 경품 추첨권 인쇄

- 경품 접수, 경품 후원자 명부 작성, 경품에 이름표 붙이기   

- 후원된 경품에 맞게 경품 교환권 제작

- 주민투표 전 경품 추첨 방법 안내(투표 후 추첨권 받기)

- 주민투표 완료한 사람에게 추첨권 배부

- 행사 후 경품 추첨 방법 다시 안내

- 추첨함 앞에서 담당자에게 추첨권 내기

- 추첨함에서 경품 교환권 뽑기

- 교환권을 담당자에게 제시

- 해당 경품을 받아서 퇴장                 


안계면 주민총회를 앞두고 경품 후원을 받았다. 1점당 3만 원 이하라는 기준을 정하니 경품이 무려 243점이 들어왔다. 주민총회 참석자는 약 200여 명,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경품을 받아갔다. 고가의 경품이 걸려있을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가장 가격대가 높은 사과 상자를 뽑았을 때와 가장 가격대가 낮은 세탁용 세제를 뽑았을 때의 반응이 많이 달라 나름의 흥분과 긴장도 어느 정도 유지되었다. 


새로운 방법이 정답일 수는 없지만 본 행사를 집어삼키는 경품 추첨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였기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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