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수리공

by 에반 환 Evan 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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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은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창문에 맺힌 빗방울이 아래로 또르르 굴러가는 걸 따라가다 보면, 마음이 이상하게 차분해졌다.그날도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우산을 쓰고 천천히 골목길을 걸었다. 비 냄새와 젖은 흙 냄새가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그러다 하린은 골목 끝, 작은 놀이터 위쪽 하늘에서 이상한 걸 발견했다. 회색빛 구름 한 조각이 찢어진 채로 허공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찢어진 틈 사이로는 파란 하늘이 보였지만, 그 주변은 마치 울음을 터뜨린 듯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구름이… 찢어질 수도 있나?”

하린은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 순간, 찢어진 구름 속에서 무언가 작고 반짝이는 것이 움직였다.가까이 다가가자, 작은 발자국 소리와 함께 조그만 그림자가 구름 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그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사람처럼 생긴 존재였다. 몸은 보송보송한 솜털로 덮여 있었고, 등에 바늘과 실타래를 메고 있었다.


하린은 놀라서 한 걸음 물러났다.

“누… 누구야?”작은 존재는 당황한 듯 실타래를 꼭 끌어안았다.

“난… 구름 수리공이야. 이름은 니무.”

니무의 목소리는 빗방울이 떨어질 때 나는 소리처럼 맑았다.


하린은 눈을 크게 떴다.

“구름을… 고치는 거야?”


니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구름도 하늘을 떠다니다 보면 찢어지고 구멍이 나. 그냥 두면 비가 멈추지 않거나, 너무 많이 쏟아질 수도 있어.”


니무는 곧장 찢어진 구름 쪽으로 날아가 작은 바늘에 은빛 실을 꿰었다.비가 똑똑 떨어지는 틈새를 하나씩 꿰매기 시작했다. 바늘이 오갈 때마다 구름은 조금씩 원래의 모양을 되찾았다. 하린은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마음속에서 이상한 설렘이 피어나는 걸 느꼈다.


‘나… 저 일을 도와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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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무는 하린이 지켜보는 것도 모른 채, 능숙하게 구름의 찢어진 틈을 꿰매고 있었다. 바늘 끝에서 반짝이는 은빛 실이 번쩍이며 구름 속으로 사라질 때마다, 새하얀 솜 같은 결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저… 내가 도와줄 수 있을까?”하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니무는 잠시 손을 멈추고 하린을 바라보았다. 작은 눈동자 속에 번뜩이는 빛이 담겼다.

“사람은 구름을 만질 수 없어. 하지만… 네 손끝에서 이상하게 따뜻한 기운이 느껴져. 혹시 비 오는 날을 좋아하니?”


“응. 비 냄새랑, 빗소리를 듣는 게 좋아.”


니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그럼 넌 ‘구름 감각’을 가진 거야. 그런 사람만이 구름을 다칠 수 있고, 고치는 것도 도울 수 있지.”


니무는 허리에 찬 작은 바늘 하나를 꺼내 하린에게 건넸다. 바늘 끝은 별빛처럼 빛났고, 손에 쥐자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이건…?”“하늘바늘이야. 조심해서 써야 해. 한 번 꿰매면, 구름은 금세 회복되지만, 반대로 잘못 꿰매면 울음을 멈추지 못하게 돼.”


하린은 바늘을 받아 들고, 니무의 손짓을 따라 찢어진 구름 옆에 섰다. 손끝이 닿자, 구름 속의 차가운 물방울이 살짝 진동했다. 마치 하린을 알아보는 듯, 작은 빗소리가 울렸다.


“살살, 부드럽게…”니무의 안내에 따라 한 땀, 두 땀 실을 당기자, 틈새에서 새어 나오던 비가 점점 잦아들었다.


잠시 후, 마지막 매듭을 묶었을 때, 구름은 동그란 모양을 되찾았다. 니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잘했어. 처음 치고는 꽤 훌륭하네.”


하린은 뿌듯함과 함께, 왠지 모를 책임감이 생겼다.

“혹시… 구름은 자주 다쳐?”


니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요즘은 바람이 거칠어져서 수리가 더 필요해. 우리 공방에 오면 보여줄게.”


니무가 손짓하자, 하린의 발밑에 작고 폭신한 구름이 생겨났다.

“자, 올라타. 이제 네가 진짜 하늘로 가볼 차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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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이 구름 위에 올라타자, 발밑이 폭신하게 꺼졌다.

니무가 “출발!” 하고 외치자, 구름은 조용히 부풀더니 서서히 하늘로 떠올랐다.놀이터와 골목길, 학교 건물들이 아래로 점점 작아졌다. 하린은 두 손으로 무릎을 꼭 잡으며 숨을 삼켰다.

“우와… 진짜 하늘을 나는 거구나.”


구름은 회색 장막을 헤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랐다. 거기엔 마치 또 하나의 마을처럼, 크고 작은 구름들이 모여 있었다. 둥근 구름, 길게 뻗은 구름, 심지어 동물 모양 구름까지 다양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일부 구름은 모서리가 찢어져 있거나,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었다.


“여기가 내 공방이야.”

니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하얀 지붕의 작은 집이 있었다. 지붕도, 벽도 모두 구름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창문 틀에는 바람방울이 방울방울 매달려 있었다.


공방 안으로 들어서자, 하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벽마다 걸린 수십 개의 바늘, 크기별 실타래, 각종 구름 조각들이 정리돼 있었다. 책상 위에는 은빛 물방울들이 담긴 병이 줄지어 있었는데, 그 안의 물방울은 햇빛처럼 반짝였다.


“저건 뭐야?”하린이 물었다.


“‘맑음 물방울’이야. 다친 구름을 꿰맨 뒤에 이걸 뿌리면 더 빨리 회복하지.”

니무는 선반 위에서 바람 모양의 틀을 꺼내 보여주었다.

“이건 구름 틀. 모양이 심하게 무너진 구름은 여기에 넣어 다시 형태를 잡아줘야 해.”


니무는 하린에게 작은 구름 조각 하나를 건넸다. 조각은 찢어진 모서리가 너덜너덜했다.

“자, 연습해봐.”


하린은 하늘바늘에 실을 꿰고, 조심스럽게 한 땀씩 매듭을 지었다. 처음엔 실이 헝클어지고 바늘이 엉뚱한 곳으로 빠졌지만, 몇 번 시도하자 점점 매끈하게 이어졌다. 구름 조각이 조금씩 본래의 동그란 모양을 되찾았다.


“좋아, 이제 맑음 물방울을 한 방울 떨어뜨려.


”하린이 조심스럽게 병을 기울이자, 물방울이 ‘톡’ 하고 구름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구름이 부드럽게 빛나며, 기분 좋은 바람 향기를 뿜어냈다. 하린은 신기하고 뿌듯했다.

“구름을 이렇게 돌보는 줄 몰랐어. 그냥 하늘에 알아서 있는 줄만 알았는데.”


니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 눈에는 잘 안 보이지만, 하늘도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해. 너처럼 구름을 아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 말이야.”


그때, 공방 밖에서 급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다른 수리공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니무! 큰일이야. 서쪽 하늘에 폭풍 구름이 찢어졌어!”


니무의 얼굴이 굳어졌다.

“폭풍 구름이라니… 하린, 이번엔 진짜 큰 걸 함께 고쳐야 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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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무는 급히 바늘과 굵은 은빛 실타래, 그리고 맑음 물방울 여러 병을 가방에 넣었다.

“하린, 폭풍 구름은 보통 구름보다 훨씬 크고 거칠어. 바람이 세서 수리하다가 날아갈 수도 있어. 하지만 너 없이는 안 돼.”


하린은 긴장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요.”


둘은 구름 위로 올라타 서쪽 하늘로 향했다. 멀리서 이미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울려 퍼졌다. 폭풍 구름은 검은 덩어리처럼 하늘을 뒤덮고 있었고, 가운데엔 커다란 찢어진 틈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틈새로는 거친 바람이 휘몰아쳐, 아래 마을로 세찬 비를 쏟아내고 있었다.


“저 틈을 막지 않으면 비가 멈추지 않아.”니무가 외쳤다.


하린은 바늘을 꼭 쥐고, 구름 끝에 발을 디뎠다. 발밑에서 우르릉 하는 진동이 전해졌다. 니무가 실을 건네주자, 하린은 바람에 휘청이면서도 한 땀씩 꿰매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람이 너무 세서 바늘이 자꾸 빗나갔다.


“하린! 실을 잡아당길 때는 바람이 쉬는 순간을 기다려!”

니무의 말에 하린은 귀를 기울였다. 번개가 치고, 바람이 몰아치다 잠시 멎는 순간—하린은 힘껏 바늘을 당겨 매듭을 지었다. 틈새가 조금씩 좁혀졌다.


마지막 매듭을 묶자, 니무가 맑음 물방울을 부었다. 그러자 폭풍 구름의 어두운 빛이 서서히 옅어지고, 번개가 사라졌다. 대신 부드러운 빗방울이 내려, 마을 지붕을 살짝 적셨다.


하린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정말… 해냈네.”


니무는 환하게 웃었다.

“너는 이제 진짜 구름 수리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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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가신 하늘 위로, 서서히 햇빛이 스며들었다. 구름 사이사이로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밀고, 무지개가 조용히 걸렸다. 마을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빗방울을 맞으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린은 구름 가장자리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봤다. 조금 전까지 무섭게 몰아치던 비와 바람이, 이제는 마치 장난처럼 부드러워졌다.

“이렇게 변하는 걸 직접 보니까… 신기해.”


니무가 옆에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구름은 하늘의 표정이야. 때로는 울기도 하고, 화도 내지만, 누군가 다정하게 돌봐주면 다시 웃을 수 있지.”


하린은 자신이 꿰맨 은빛 실 자국을 바라봤다. 그 자국은 마치 하늘에 그려진 조그만 미소처럼 빛나고 있었다.


“나… 앞으로도 도울 수 있을까?”


니무는 웃으며 말했다.

“하린, 하늘은 넓고 구름은 많아.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우리 공방의 문은 열려 있어.”


그날, 하린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비 오는 날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혹시 찢어진 구름이 있나, 혹시 니무의 부름이 들리나


마음속엔 늘 폭신한 구름 한 조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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