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어 '호오포노포노'가 알려주는 용서와 매듭 풀기의 지혜
모두가 잠든 깊은 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웠는데 문득 불청객처럼 어떤 기억 하나가 머릿속을 파고들 때가 있습니다. 몇 년 전 누군가에게 무심코 던졌던 상처 주는 말, 타인에게 부당하게 오해받고 비난받았던 억울한 순간, 혹은 돌이킬 수 없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던 과거의 내 모습.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털어내려 해도, 그 기억은 늪처럼 우리를 더 깊은 감정의 수렁으로 끌어당깁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식은땀이 흐르는 밤. 우리는 이처럼 지나간 시간의 망령에 사로잡혀 현재의 평온을 너무나 쉽게 반납하곤 합니다.
소통은 가장 쉬워졌는데, 관계는 가장 어려워진 세상입니다.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이 기록되고 박제되는 거대한 저장소와 같습니다. 타인의 실수는 캡처되어 영원한 디지털 문신으로 남고, 우리는 누군가의 결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단죄하는 것을 일종의 정의라고 믿는 소란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삭막한 세상 속에서 누군가를 진심으로 용서하거나, 혹은 스스로의 허물을 온전히 끌어안는 일은 한없이 나약하고 미련한 태도로 치부됩니다. 상처받지 않으려 마음의 벽을 높게 쌓아 올리고, 내게 해를 끼친 사람을 향해 날 선 복수심을 품는 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기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 에세이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쓸쓸한 사전입니다. 날카로운 정답과 차가운 단죄만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저는 태평양 한가운데 자리한 눈부신 화산섬, 하와이로 당신의 지친 마음을 안내하려 합니다.
우리는 흔히 하와이를 에메랄드빛 바다와 야자수가 늘어선 휴양지로만 떠올리지만, 사실 그곳은 수천 년 동안 거대한 대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아온 폴리네시아 원주민들의 깊은 영적 지혜가 깃든 땅입니다. 안타깝게도 서구의 식민 지배와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그들의 고유한 언어인 하와이어는 소멸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스러져가는 언어의 심장부에는,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가장 위대하고도 숭고한 치유의 단어 하나가 고스란히 숨 쉬고 있습니다.
바로 ‘호오포노포노(Ho'oponopono)’입니다.
이 경쾌하면서도 주술적인 울림을 가진 단어의 뜻은 ‘결점을 바로잡다’, 혹은 ‘내면의 얽힌 매듭을 풀고 진정으로 용서하다’입니다.
단어의 기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의미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하와이어로 ‘호오(Ho'o)’는 ‘~을 하다, 만들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이고, ‘포노(pono)’는 ‘올바름, 균형, 완벽한 질서’를 의미합니다. 즉, ‘포노포노(ponopono)’라고 두 번 반복하여 강조한 이 단어는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문제를 대충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어긋나고 비틀린 관계의 본질을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바로잡아 본래의 완벽한 균형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과거 하와이 원주민들은 가족이나 이웃 사이에 오해나 갈등이 생기면, 해가 지기 전에 부족의 어른을 중심으로 모두가 둥글게 모여 앉았습니다. 그리고 누구의 잘잘못을 따져 벌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서로의 마음속에 단단히 꼬여버린 분노와 원망의 ‘매듭’을 풀기 위해 긴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고, 상대의 아픔을 경청하며, 마침내 서로를 온전히 끌어안고 용서하는 이 숭고하고도 치열한 영적 의식을 그들은 '호오포노포노'라고 불렀습니다.
시대의 거대한 격랑 속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는 인물들의 굴곡진 삶을 직조하는 역사 소설을 쓰다 보면, 저는 종종 누군가를 향한 짙은 원망과 증오가 어떻게 한 인간의 영혼을 철저하게 좀먹고 파괴하는지를 활자 너머로 생생하게 목격하곤 합니다. 복수심은 처음에는 타인을 향해 겨누어진 날카로운 검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검의 손잡이에는 가시가 돋아나 결국 검을 쥔 자신의 손을 가장 먼저 피투성이로 만듭니다. 원망이라는 감정은 마치 내가 독약을 마시면서 상대방이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슬픈 자해 행위입니다.
하와이 사람들은 이 무서운 진실을 오래전부터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용서란 상대방의 죄를 면죄해 주기 위해 베푸는 시혜적인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분노라는 독성 강한 밧줄로 꽁꽁 묶여 있는 ‘나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한 가장 이기적이고도 절박한 생존의 기술이었습니다. 나를 괴롭힌 누군가를 마음속의 감옥에 가두어 두려면, 나 역시 그 감옥의 문 앞을 평생 떠나지 못하고 간수 노릇을 해야만 합니다. '호오포노포노'는 바로 그 지긋지긋한 감옥의 열쇠를 내 손으로 부수고, 비로소 자유로운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는 용기 있는 결단입니다.
이 지혜는 비단 타인과의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용서하기 힘든 대상은, 남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나, 비겁하게 침묵했던 나, 어리석은 선택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나. 우리는 밤마다 내면의 법정을 열고 과거의 나를 가혹하게 심판하며 스스로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합니다.
하지만 매듭은 억지로 잡아당길수록 더욱 단단하게 조여들 뿐입니다.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일단 숨을 크게 고르고, 팽팽해진 긴장을 늦춘 뒤, 아주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실가닥 하나하나를 어루만져야 합니다. 스스로를 향한 날 선 자책을 멈추고, "그때의 나는 그게 최선이라고 믿었어. 참 많이 불안하고 아팠구나."라고 가만히 다독여 주는 시간. 내 안의 상처받은 아이와 마주 앉아 화해의 악수를 건네는 그 내밀한 의식이야말로,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개인적인 '호오포노포노'일 것입니다.
최근 이 단어는 심리 치유의 영역으로 넘어와, 마음속으로 네 마디의 짧은 주문을 반복하는 명상법으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단순하고 투박한 문장들을 눈을 감고 고요히 되뇌다 보면, 신기하게도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돌덩이가 조금씩 바스러지고 굳어 있던 어깨에 부드러운 바람이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단어가 멸종된다는 것은 단순히 종이사전의 두께가 얇아지는 일이 아닙니다. 인간이 상처를 어루만지던 '다정한 방법' 하나가 세상에서 지워지는 일입니다. 하와이의 늙은 할머니들이 숨을 거두며 이 단어의 발음이 지구상에서 서서히 흩어지고 있다 해도, 이 단어가 품고 있는 찬란한 치유의 힘만큼은 결코 멸종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밤, 또다시 당신을 잠 못 들게 하는 아픈 기억이 찾아온다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책하는 대신 태평양의 따뜻한 파도 소리를 품은 이 단어를 입안에서 천천히 굴려보시길 바랍니다. 호-오-포-노-포-노.
당신의 마음에 단단히 묶여 있던 억울함과 슬픔의 매듭들이 마법처럼 스르르 풀려나가고, 그 자리에 고요하고 다정한 평화만이 남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모든 과거로부터 부디 안녕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