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스어 '히라에스(Hiraeth)'가 알려주는 상실과 애도의 태도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 스마트폰 화면을 켰을 때 무심코 떠오른 알림창 하나에 마음이 덜컹 내려앉은 적이 있으신가요.
"3년 전 오늘, 당신의 추억을 돌아보세요."
친절한 알고리즘이 멋대로 골라낸 사진첩 속에는, 지금은 곁에 없는 사람과 환하게 웃고 있는 내 모습이 있거나, 영영 허물어져 버려 이제는 찾아갈 수 없는 옛 동네의 골목길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과거를 완벽하게 박제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고화질의 렌즈는 솜털 하나까지 세밀하게 기록하고, 클라우드 저장소는 수만 장의 사진과 영상을 영원히 썩지 않는 디지털 데이터로 보관해 줍니다.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스크롤을 올려 어제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 하지만 완벽하게 보존된 그 선명한 화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에 설명할 수 없는 시린 바람이 불어옵니다. 액정 너머의 시간은 생생한데, 내 손끝에 닿는 것은 차가운 유리 표면뿐이라는 뼈아픈 괴리감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사전의 다섯 번째 문을 열며, 저는 안개 낀 영국의 서쪽 끝, 웨일스(Wales)의 척박하고도 경이로운 초원으로 당신을 안내하려 합니다. 켈트족의 후예들이 험준한 산맥과 거친 파도에 기대어 지켜온 그들의 언어, 웨일스어에는 현대의 얄팍한 향수병(Homesickness)이라는 단어로는 결코 온전히 번역될 수 없는 아주 깊고 먹먹한 단어 하나가 존재합니다.
바로 ‘히라에스(Hiraeth)’입니다.
사전적 의미로 이 단어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 혹은 애초에 존재한 적 없는 이상적인 과거에 대한 깊은 향수와 애도’를 뜻합니다. 단순히 고향이 그립다는 감정을 넘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영원히 상실되어 버린 어떤 시절, 공간, 그리고 그 속에 머물렀던 내 모습에 대한 강렬한 갈망과 슬픔이 뒤섞인 복합적인 앓음입니다. 웨일스 사람들은 이 감정을 단순한 우울이 아니라,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 오르는 아주 숭고하고도 본능적인 그리움으로 여겼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수많은 '히라에스'를 통과해 내는 지난한 여정일지도 모릅니다.
어릴 적 뛰어놀던 낡은 놀이터가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변해버려 내 유년의 공간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지워졌을 때 느끼는 막막함.
명절이면 구수한 냄새가 진동하던 할머니의 낡은 한옥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남의 손에 넘어가 영영 열어볼 수 없는 문이 되었을 때의 서글픔.
혹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서툴렀지만 찬란하게 빛났던 20대의 나 자신을 문득 거울 속에서 영영 잃어버렸음을 깨닫는 어느 쓸쓸한 저녁.
우리는 이처럼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단층 앞에서 무방비하게 '히라에스'의 기습을 받습니다.
과거의 시간 속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는 역사 소설을 쓰다 보면, 저는 필연적으로 이 '히라에스'라는 유령과 매일 밤 마주 앉게 됩니다. 먼지 쌓인 사료의 행간을 더듬으며 잊힌 시대의 풍경을 재건하고, 역사 속으로 속절없이 스러져간 사람들의 숨결을 활자로 부활시키는 작업을 할 때면 가슴이 벅차오르면서도 동시에 짙은 슬픔이 밀려옵니다. 제가 아무리 고증을 철저히 하고 생생한 문장으로 그 시절의 흙냄새까지 묘사해 낸다 한들, 결국 저는 그 시간으로 단 1초도 돌아갈 수 없는 이방인이라는 잔인한 사실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순간, 저는 제가 창조하고 사랑했던 그 세계와 작별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마치 아름다운 유적지를 발굴해 내고는, 다시 스스로 흙을 덮어 묻어야 하는 고고학자의 애도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이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허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상실 앞에서 너무 빨리 '회복'을 강요받습니다. 슬픔에 잠겨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생산적이지 못한 감정 낭비나 미련한 집착으로 치부되기 일쑤입니다. 이별을 겪은 이에게는 "빨리 잊고 새 출발 해라"라고 말하고, 시절의 변화 앞에서 허망해하는 이에게는 "미래를 보고 나아가라"며 등을 떠밉니다. 우리는 아픔을 덮어두고 쿨하게 앞만 보고 걷는 것을 성숙함이라고 착각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히라에스'를 앓는 영혼들은 갈 곳을 잃고 속으로만 병들어 갑니다.
그러나 웨일스의 이 오래된 단어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위로를 건넵니다.
'히라에스'는 상실을 억지로 지워버리거나 서둘러 극복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텅 빈 상실의 공간 한가운데에 가만히 주저앉아,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그것이 내 삶에 얼마나 눈부신 의미였는지를 온 마음을 다해 아파하고 그리워하는 일입니다.
슬픔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가 어떤 시절, 어떤 장소, 어떤 사람을 잃고 그토록 뼈저리게 '히라에스'를 느낀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그 대상들을 온 영혼을 다해 사랑했음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토록 그리울 리도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 과거를 향해 흘리는 눈물은 결코 부끄럽거나 나약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삶의 가장 찬란했던 한 페이지에 바치는 가장 경건하고 다정한 헌사입니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다정하게 보내주는 유일한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그 시절을 향한 그리움을 충분히, 아주 끝까지 앓아내는 것입니다. 상실의 크기만큼 깊게 파인 마음의 웅덩이를 외면하지 않고, 그곳에 그리움이 강물처럼 고여 흐르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이제 그만 잊자"며 억지로 기억의 스위치를 끄는 대신, "그때 참 좋았지. 참 많이 사랑했지."라며 잃어버린 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조용히 불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충분히 아파하고, 충분히 기억하고, 충분히 애도한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과거라는 무거운 닻을 올리고 새로운 시간의 바다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의 마음속에는 어떤 '히라에스'가 고여 있나요?
돌아가고 싶어도 영영 갈 수 없어 가슴 한구석에 남몰래 묻어둔 시절이 있다면, 오늘은 억지로 덮어둔 그 기억의 상자를 조심스레 열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잠들어 있는 당신의 그리움을 향해, 섣부른 위로 대신 묵묵한 눈물로 다정한 안부를 건네어 보세요.
당신이 상실한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당신의 영혼을 이루는 가장 단단하고 눈부신 조각들임을 기억하며.
시간의 폭력 앞에서도 결코 마모되지 않을, 당신만의 숭고한 '히라에스'를 깊이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