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누어 '우레스파'가 알려주는 진정한 공생의 지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트랙 위에 올려집니다. 출발 총성이 울리기도 전에, 우리는 남들보다 한 걸음이라도 더 앞서가기 위해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맵니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세상이 거대한 '제로섬(Zero-sum)' 게임이라고 가르칩니다. 누군가 파이의 큰 조각을 가져가면 내 몫이 줄어들고, 누군가 먼저 정상에 오르면 내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불안감. 우리는 타인의 화려한 성공을 축하하는 척하면서도 돌아서서 남몰래 초라함을 느끼고, 동료의 뒤처짐에 안도하는 내 비겁한 모습에 스스로 상처받곤 합니다.
소통과 연결을 자랑하는 시대라지만, 스마트폰 액정 너머로 타인과 끝없이 나를 비교하며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날 선 긴장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의 갑옷을 두껍게 껴입고, 남을 밟고 올라서야만 내가 안전해질 수 있다고 믿는 이 차갑고 외로운 경주.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쓸쓸한 사전의 일곱 번째 페이지를 넘기며, 저는 길고 혹독한 겨울이 지배하는 일본 홋카이도의 깊은 원시림으로 당신을 안내하려 합니다. 그곳에는 수천 년 동안 혹한의 눈보라 속에서도 대자연을 '카무이(신)'로 모시며 살아온 아이누(Ainu)족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랜 동화 정책과 차별의 역사 속에서 그들의 언어는 이제 극소수의 노인들만이 웅얼거리는 멸종의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낡은 단어 하나는, 쉴 새 없이 서로를 찌르고 할퀴는 경쟁 사회에 지친 우리에게 따뜻한 모닥불 같은 위로와 통찰을 건넵니다.
바로 ‘우레스파(Urespa)’입니다.
이 투박하고도 부드러운 울림을 가진 단어의 뜻은 ‘서로가 서로를 기르다’, 혹은 ‘진정한 의미의 공생’입니다.
단순히 여유 있는 사람이 부족한 사람을 돕는 일방적인 시혜나 동정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아이누어에서 '우(U)'는 '서로', '레스파(respa)'는 '키우다, 기르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네가 살아야 내가 살고, 내가 자라야 네가 자랄 수 있다는 생명의 완벽한 연결망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인간과 인간 사이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 생물과 무생물조차도 이 '우레스파'의 관계로 단단히 묶여 있다고 믿었습니다.
아이누 사람들은 매서운 추위 속에서 사냥할 때도 결코 숲의 짐승을 씨가 마르도록 탐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이 허락한 만큼만 조심스레 취했고, 사냥해 온 고기는 온 마을 사람들과 평등하게 나누었습니다. 내가 오늘 이웃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면, 훗날 내가 빈손으로 돌아온 날 이웃이 나를 먹여 살릴 것임을 아는 깊은 연대의식. 그들에게 생존이란 남을 짓밟고 얻어내는 전리품이 아니라, 서로의 체온을 기대어 혹독한 겨울을 함께 건너가는 다정한 어깨동무였습니다.
과거의 잊힌 시간 속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는 역사 소설을 쓰다 보면, 저는 수많은 제국과 왕조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벌였던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암투의 기록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누군가를 파멸시키고 쌓아 올린 승자의 역사는 겉보기엔 화려하고 위대해 보이지만, 결국 그 끝은 예외 없이 또 다른 경쟁자에게 잡아먹히는 허망한 몰락이었습니다. 정작 그 잔혹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류를 멸종으로부터 구원하고 삶을 지속하게 만든 것은, 왕들의 날카로운 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전쟁통에도 고아를 거두어 먹이고, 상처 입은 적군의 피를 닦아주며, 한 줌의 씨앗을 이웃과 나누어 심었던 이름 없는 민초들의 끈질긴 '우레스파'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총성 없는 전쟁터에 살고 있습니다. 더 높은 점수, 더 좋은 직장, 더 넓은 아파트를 차지하기 위해 우리는 곁에 있는 사람을 언제든 끌어내려야 할 경쟁자로 여깁니다. 하지만 숲속의 오래된 나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겉으로는 저마다 햇빛을 차지하려 다투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땅속 깊은 곳에서 나무들은 거대한 균사체 네트워크로 뿌리를 얽고 있습니다. 병든 나무에게는 영양분을 보내주고, 어린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곁을 내어줍니다. 나무들은 한 그루가 홀로 우뚝 서기보다, 거대한 숲이 되어야만 거센 비바람을 견뎌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타인의 빛이 결코 나의 빛을 꺼뜨리지 않습니다. 동료의 성취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낼 때 내 손바닥도 함께 따뜻해지고, 누군가의 짐을 나누어 질 때 내 걸음도 기이하게 가벼워지는 마법.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그러나 우리 DNA 깊은 곳에 여전히 새겨져 있는 '우레스파'의 본능입니다.
단어가 멸종된다는 것은 단지 소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다정한 태도 하나가 지워지는 일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우리에게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외치며 혼자 살아남으라고 등을 떠밀어도, 우리는 이 늙은 아이누족의 단어를 꽉 쥐고 버텨내야 합니다. 누군가를 이겨야만 내가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살림으로써 비로소 나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그 숭고한 진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오늘 하루, 당신을 옥죄고 있던 '이겨야 한다'는 무거운 갑옷을 잠시 벗어두는 것은 어떨까요.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의 등을 보며 조급해하는 대신 "너의 걸음이 참 멋지다"고 응원해 주고, 뒤처진 사람을 보며 우월감을 느끼는 대신 가만히 손을 내밀어 당겨주는 다정한 여유를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경쟁과 비교의 피로 속에 지쳐있는 당신에게, 오늘은 북쪽의 하얀 눈밭에서 피어난 단어 '우레스파'로 안부를 묻습니다. 당신과 내가 서로를 다정하게 길러내는 아름다운 숲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 당신의 하루에는 따뜻한 연대의 온기가 가득하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