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을 정하고 떠났다
얼마 전 동생이랑 통화하다가 겨울이면 유독 추웠던 우리 집 2층 방이 떠올랐다.
바닥은 끓는데 외풍은 매서워 코끝이 시리던 방.
이상하게도 우리는 그 방을 참 사랑했다.
겨울이면 엄마는 늘 1층에서 지내라고 했지만, 우리 자매는 이미 ‘약간의 자유’와 ‘소소한 해방감’을 맛본 뒤였기에 빨간 밍크 담요를 망토처럼 두르고 버티며 겨울방학을 즐겼다.
그 동네에 흔치 않던 오래된 2층 양옥은
괜히 자매들의 자존심 같은 거라
그 방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거다.
아랫목에 배 깔고 누워 귤을 까먹으며
계몽사 전집 이야기로 밤을 새우던 그 시절 우리들의 겨울방학.
그 시절이 불쑥 그리워진 김에 자매 셋, 그리고 엄마까지 여자들만의 여행을 가기로 했다. 말이 나오자마자 휴가부터 확인하고, 일정 확정까지 딱 이틀.
성질 급하고 놀기 좋아하는 이여사와 H자매들은 늘 속전속결이다.
조건은 단순했다.
1)2박 3일로 조금 아쉬울 것
2)불만은 가이드에게 향할 것
3)비행거리는 2시간 이내
4)온천과 미식은 필수
그렇다면 답은 하나. 일본 온천 패키지.
그런데 가능한 일정이 3박 4일!
아차차!!!위험 신호 감지.
하루 더 있으면 곤란한데......
엄마의 반복된 잔소리에
누구 한 명쯤은 삐칠 수도 있다.
(경험담이라 생략한다)
회의 끝에 결론.
우리의 폭탄은 엄마.
폭탄 제거 담당은 막내 여동생.
물론 엄마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신다.
자기가 폭탄인지도, 우리가 이미 작전 회의를 끝냈는지도.
엄마는 지금 이 여행을 ‘자기를 위한 효도 여행’이라며 괜히 부담스러워하신다.
그 모습이 또 웃겨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은,
폭탄이니까.
그럼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