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금 더 깊어진 나를 만난다
운동이 끝나자마자, 숨도 고르기 전에 작업실로 향했다.
오늘은 유난히 하체를 혹사시킨 날이라, 다리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후들거렸다. 그래도 이상하게 발걸음은 가벼웠다.
봄이니까.
공기 속에 묻어나는 그 미묘한 온기가, 몸의 피로를 슬쩍 속여 넘긴다.
거리에는 봄 냄새가 묻어 있었다. 겨울 끝자락의 건조함이 아직 남아 있는데도, 그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따뜻한 기운. 그걸 맡으며 걷다 보면, 괜히 나까지 조금은 부드러워지는 기분이 든다.
작업실에 도착해, 작년에 시작한 장지 그림 위에 다시 색을 얹는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이 이제는 조금 보인다. 같은 색인데도, 시간 위를 한 번 지나온 색은 다르게 스며든다. 종이 위에 남아 있는 결, 그 위에 얹히는 안료, 그리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까지. 모든 것이 겹겹이 쌓여 색을 만든다.
시간이 색을 깊게 만든다는 걸, 요즘 들어 자주 느낀다.
나는 손으로 하는 일에 썩 능숙한 사람이 아니다.
뭔가를 만들기엔 늘 어설프고, 끝맺음은 항상 아쉽다. 그럼에도 이 작업을 좋아하는 건, 붓 끝에서 시작되는 사각사각한 시간 때문이다.
그 리듬에 맞춰 호흡을 고르면, 생각이 조용해진다. 손끝이 조금 떨려도 괜찮다.
오히려 그 미세한 흔들림이 지금의 나를 더 또렷하게 남겨주는 것 같아서,
집중하고 있다는 그 감각에 머문다.
그 한순간을 붙잡는 일이 생각보다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선생님은 이 공간을 늘 “누추하다”라고 말하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다. 큰 창으로 스며드는 햇살과 길게 드리운 그림자, 그 안에서 천천히 말라가는 물감들까지.
이곳의 모든 순간이 나에게는 충분히 좋다.
어쩌면 내가 배우고 있는 건 그림이 아니라,
시간을 들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