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 그 책방

내가 서촌에 가는 이유

by 하하

그녀가 고른 에세이들도 좋았고, 혼자 읽을 때는 별 뜻 없이 지나갔던 문장들을 그녀가 그녀만의 관점으로 해석할 때, 머릿속에서 불이 켜지는 순간도 좋았다. 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언어화 될 때 행복했고, 그 행복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던 종류의 감정이라는 걸 가만히 그곳에 앉아 깨닫곤 했다. 가끔은 뜻도 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다. 너무 오래 헤매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최은영 소설 P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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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추운 날이라는 뉴스가 과장이 아니다. 중무장을 해도 입김이 얼 듯한 추위가 온몸을 파고든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독서 모임을 위해 서촌으로 향했다. 책의 여운을 품은 채, 골목에 쌓인 하얀 눈을 밟아본다. 마치 소설 속 '경하'가 되어 조용히 걸음을 옮기는 기분이다. 눈 아래로 새겨지는 발자국마다 이야기가 스며드는 듯하다. '뽀드득 뽀드득'

어젯밤 내린 눈으로 길은 미끄럽고 성가셨지만, 어렵게 읽어낸 책의 감상이 궁금해 조바심을 안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이미 많은 분들이 글방에 모여 각자의 독서평을 나누고 있다. 조용히 자리를 잡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오고 가는 목소리에, 궁금했던 부분이 풀리고 갈증이 해소된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찾아 헤맨 답을 만난 기분이다.

우리의 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글방지기님은 중심을 잡아주시고, 각자가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주신다. 삐죽삐죽 어색한 말에도 열린 마음으로 공감해 주니, 혼자 품었던 생각들이 점차 단단한 형태를 갖춰가는 듯해 뿌듯하다.

글에서 위로를 얻고, 위로를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있어 서촌 그 책방은 유난히 따뜻하다. 나는 이 공간에서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나도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내일도 서촌으로 향할 것이다.

겨울 햇빛 아래 고즈넉한 골목길은 마치 오래된 기억 속 풍경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고, 좁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잊고 있던 감정들이 하나둘 내 안에서 깨어나리라 믿는다. 서촌 그 책방에서 만난 위로가 다시 내 마음에 스며들기를, 따뜻함을 다시 느끼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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