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을 보내는 방법

끝난 관계보다, 그 안의 나를 놓아주는 일

by 하하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만남에는 저마다의 때가 있고, 그 끝 또한 이유 없이 오지 않는다는 뜻.

한때의 나는 그 ‘끝’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관계가 멀어질 때마다 이유를 나에게서 찾았다.
왜 그렇게 됐을까, 내가 부족했던 건 아닐까.
이미 지나간 시간을 붙잡고, 스스로를 오래 들여다보는 쪽을 택했다.

지나간 인연보다, 그 안에서의 ‘나’를 더 오래 의심했다.


얼마 전 전시회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너는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야.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래.
그러니 너를 잘 알지도 못하는 이의 평가에 상처받지도, 자책하지도 마.
그건 네게 2차 가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조용해졌다.
나를 설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기분.
이미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시선 앞에서는
굳이 나를 깎아내릴 이유가 없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생각해 보면, 모든 만남이 오래 남을 필요는 없다.
우연처럼 시작된 인연이 시간을 다해 멀어지는 일은
누군가의 잘못이라기보다, 그저 흐름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난 관계를 쉽게 놓지 못한다.
좋았던 기억 때문이라기보다,
그 관계 속의 나까지 부정되는 것 같아서.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인연을 보내보려 한다.
끝을 붙잡기보다, 좋았던 순간만 남기는 일.
이유를 캐묻기보다, 그때의 나를 그대로 인정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잘 모르는 이의 말보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의 말을 더 오래 믿어보기로 한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누군가에게 오래 기억되는 사람이기보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편안한 사람이 되는 것.


좋은 사람을 곁에 두는 일보다,
그들이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지나간 인연은 흘려보내고,
지금 곁에 남아 있는 관계를 더 단단히 바라보는 일.


그렇게 나는,
무해한 사람과 무해한 사람으로
조용히 이어지는 삶을 살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