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채로도 연결되는 우리의 방식
“언니, 울 둘은 빈티지 감성 비주류 인간인데...... 어떻게 언니랑 친해진 거지?”
어제, 바삭하게 튀겨진 가지를 한입 베어 물던 동생이 물었다. 기름기 묻은 입가도 닦지 않은 채, 꽤 진지한 얼굴이었다.
“맞아. 나도 처음 봤을 때 언니랑은 절대 안 친해질 줄 알았어.”
맞은편 동생이 반달눈을 하고 웃으며 맞장구를 친다.
순간 억울해졌다.
“무슨 소리야. 나 원래 B감성 사랑한다고.”
내 항변은 가볍게 튕겨 나갔고,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언니가 솔직하고, 빈틈을 보여주니까 좋았어. 그래서 우리가 친구지.”
빈틈이라니.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빈틈이 아니라...... 구멍이 슝슝인데.
그래도, 취향 까다롭고 결 확실한 이 ‘비주류 인간들’이 나를 친구로 받아준 건 꽤 기분 좋은 일이다.
그날 밤, 돌아오는 길에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대학 1학년, 어리바리하게 세상을 따라가던 시절, 선배 한 명이 나를 붙잡고 말했다.
“네가 믿는 것에 의문을 가져봐. 뉴스의 뒷면을 보는 연습을 해.”
솔직히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그런데 이상하게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 선배를 따라 학회에 들어갔다.
이름도 꽤 거창했다.‘새벽이 오는 소리.’
지금 생각하면 조금 낯간지럽지만, 그때의 나는 꽤 진지했다.
정말로 뉴스의 뒷면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세상을 다르게 읽어보겠다는 다짐으로.
돌이켜보면, 나는 늘 애매한 경계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 장녀로 자라 반항보다는 순응이 더 익숙했지만, 마음 한쪽에는 늘 작은 테러리스트가 살고 있었다.
정석보다는 변주를,
주류보다는 비주류를,
반듯한 시선보다는 살짝 삐딱한 시선을 좋아했다.
그래서였을까?
어제 만난 그 동생들도 처음엔 나를 ‘같은 과’로 보지 않았지만, 결국은 알아본 것 같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결이 조금 다르다는 걸.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고,
조금 더 나은 사회를 꿈꾼다.
불의를 보면 쉽게 흥분하지만
그 마음을 얼마나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세상의 겉면만 보며 살고 싶지는 않다.
조금 느리더라도, 조금 어설프더라도,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문득, 그 선배가 떠오른다.
그녀는 지금도 어딘가에서‘새벽이 오는 소리’를 듣고 있을까?
여전히 뉴스의 뒷면을 읽으며 세상을 의심하고, 또 사랑하고 있을까?
나는 그 선배가 던져준 질문 하나를 마음에 품고 살다 보니 어느새 빈티지 감성의 비주류 멋쟁이 그녀들과 웃으며 가지튀김을 나눠 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