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밤 최은영

그때는 서사에, 지금은 관계에 집중한다.

by 하하

3년 전 『밝은 밤』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주인공의 할머니 곁에 오래 머물렀다.
좋아하는 작가의 첫 장편이라는 기대 속에서, 이야기 속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나의 할머니를 불러냈다.
그 시절의 나는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낸 여성의 시간에 더 마음이 갔던 것 같다.
그런데 다시 읽은 지금, 이 이야기는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지연과 그의 엄마였다.
한 사람의 딸로, 또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가며 선택하고 포기해야 했던 시간들,
사랑과 책임 사이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마음들이 유독 선명하게 읽혔다.

같은 책이었지만, 내가 머문 자리는 달라져 있었다.
그 차이는 책이 아니라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을 것이다.
3년 전보다 삶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고,
누군가의 선택과 흔들림을 예전보다 덜 판단하고
조금 더 깊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다시 만난 『밝은 밤』은,
그만큼 내가 조용히 성숙해졌다는 증거처럼 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