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밥버거 사장님이 보여준 리더십

<시니어 다이어리 in 판교> 시리즈

by 오네시보로
멋쟁이 밥버거 사장님

사회 생활의 측면에서 기억에 남는 또 다른 리더가 있다.


한 때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끼니를 책임졌던, 한 프랜차이즈 밥버거 매장에서 알바를 하던 때였다.

당시 내가 일했던 매장은 목동의 학원가 한 가운데에 있었고, 그렇다보니 수많은 학생 손님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나는 이 매장의 사장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내 기억에 사장님은 당시 중령으로 전역을 했고,

2000년대 한국에서 유행을 휩쓸었던 BB크림을 만들어 큰 매출을 만들었던 회사의 CEO였다(고 하신다.)


중국으로 진출을 꾀하던 중, 중국과 계약을 중개하던 브로커(?)가 사기를 치면서 큰 손실을 입었고 정신적인 충격이 크셨다고 한다. 상담을 받아보니, 기존에 하던 일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업무를 해보면 이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이에 사장님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요식업계로 매장을 열게 된 것이다.


사장님의 첫 인상

내가 처음 본 사장님의 첫 인상은, "강한 남자"였다.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체형, 강렬한 눈빛, 무엇보다 매장에 계시는 동안 한 번도 자리에 앉지 않으셨다. 늘 문 밖을 지나다니는 학생들을 관찰하셨고 사장님의 머리 속 프로토콜에 따라 매장을 관리하셨다.


내가 사장님에게서 멋진 리더의 모습을 본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 숙련가가 되도록 도전을 주었다.

알바로 채용된 후,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밥 비비기" 였다.

햄버거로 치면 "번"에 해당하는 주먹밥 덩어리를 만드는 일인데, 이 밥을 만드는 과정이 꽤나 힘들었다.


커다란 밥솥 세 개를 계속 돌렸다. 밥이 완성되면, 큰 대야에 덜어낸다.

갓 지어진 밥은 뜨거운 수증기를 가득 머금고 있다. 여기에 맛기름, 맛소금, 김가루, 통깨 등을 넣은 후 장갑 낀 손으로 직접 비벼야 한다.

갓 지어진 밥의 뜨거운 김은 장갑을 뚫고 손에 달라 붙는다.

그저 뜨겁다고 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알바 첫 날에는 밥을 비비기보다는 밥 속에 손을 넣었다 뺐다 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니 밥이 비벼질 리가 없었다. 이틀 정도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사장님이 심각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정기야, 너 마지막으로 기회 줄건데, 밥 제대로 못 비비면 여기서 알바 못하는거야."


그리고 손수 밥 비비는 모습을 다시 보여주셨다. 이 뜨거운 밥을 어떻게 저렇게 쉽게 비비지?

뜨겁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사장님은 "뜨겁지, 그래도 견디는거야. 견디면 또 견뎌 져." 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시 나의 차례가 되었다.

여전히 밥은 뜨거웠다. 그냥 뜨거운 수준이 아니라, 손의 신경들이 타들어가는, 손이 미친 듯이 아픈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사장님도 했으니까' 내가 못 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고, 이를 악 물고 버티면서 밥을 비볐다.


"내가 이것조차 못 하면, 앞으로 사회 나가서 뭘 할 수 있겠나" 하는 오기도 생겼다.


놀랍게도, 밥이 비벼졌다.

사장님이 비볐던 만큼 완성도가 높진 않았지만, 골고루 재료가 섞였고 윤기나는 밥이 완성됐다.

그러자 사장님은 "그것 봐, 너가 할 수 있으니까 내가 다시 보여준거고 시킨거야. 할 줄 알았어." 라고 하셨다.

사장님은 본인이 겪어봤던 일이고, 본인이 잘 하는 일이고, 가르칠 수 있는 일을 나에게 가르치고 시키고 맡긴 것이었다.


알바 첫 날 밥 한 통 비비는 데 30분 동안 손만 넣었다 빼던 나는

밥 세 통을 비비는 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단체 주문이 들어와도 사장님과 나 둘이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진 것이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인가 싶겠지만, 일하는 직원의 근로의욕을 끌어올리고 도전을 주고, 이를 통해 성장시킨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둘째. "점주"처럼 책임감을 갖도록 권한을 주었다.

내가 알바에 적응을 하기 시작한 무렵,

사장님이 기존 회사 업무 때문에 조금 늦게 출근하시는 날에도 나 혼자 조리, 밥버거 제작, 판매, 매장관리를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혼자 일을 하는 중에도 스스로 머리 속에 업무 순서가 짜여졌고 사장님처럼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 수준이 되었다. 이거 끝나면 저거 하고, 저거 끝나면 다른 거 하고.


어느 날 사장님이 나를 불러 앉혀서 말씀하셨다. 그동안 나는 오전에 이모님들과 바톤 터치하고 오후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매장 오픈부터 오전타임을 맡기시겠다는 거였다. 이모님들이 계셨어도 사장님은 항상 본인이 직접 매장을 오픈하고 마감을 하셨다. 이미 본인 사업에서 사기를 당하신 뒤로 사람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것을 잘 하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 사장님이 나에게 매장 오픈을 맡기시겠다는 거였다.

요식업 계열에서 알바를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오픈조는 꽤나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리고 나에게 지속적으로 강조하신 것은 "정기야, 너가 이제 컨트롤 타워가 돼야 하는거야." 라는 것이었다.


내가 이 매장의 컨트롤 타워가 돼서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하고, 이게 끝나면 그 다음은 무엇을 할 지 스스로 결정하고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움직임을 전적으로 신뢰하겠다고 하셨다.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컨트롤 타워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를 고민하게 됐다. 알바를 마치고 집에 가서 혼자 노트에 매장에서의 동선을 정리했고, 내가 출근하면 무엇부터 시작할지,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돌릴지 정리했다. 물론, 나는 "알바"다. 알바인데 사장님의 저 멘트 한 마디가 나를 마치 자영업자 마냥 일하게 만든 것이었다.


지금 시대 분위기에서는 이 이야기를 마치 가스라이팅처럼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꽤나 큰 책임감이 부여되는 시점이었다. 그렇게 "컨트롤 타워"로써의 역할을 고민하고 정리한 나만의 프로토콜은 첫 매장 오픈조 역할을 실수 없이 수행하게 했다. 그리고 사장님의 보너스 급여가 주어졌다.


사장님은 나를 신뢰했고, 나에게 권한을 주었고, 내게 주어진 권한에 대해서 간섭하지 않았고, 나의 성과에 대해서 보상했다.


회사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리더가 있다면,
나는 지금도 CEO처럼 일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밥버거 알바를 그만두고 대학교로 복학한 어느 날,

사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정기야, 밥버거 매장 정리할거다. 그런데 혹시 너가 이 매장을 인수할 생각이 있다면, 권리금 없이 그냥 너한테 다 넘길 생각인데 어떠냐."


당시 이 매장은, 해당 밥버거 전국 프랜차이즈 중 매출 1위의 매장이었다. 그런 매장을 권리금 없이 넘기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아직 큰 돈을 대출받거나 자영업을 하는 것이 막연하게 두려웠던 나는 그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기회였을 수도 있지만 얼마 안 가 해당 프랜차이즈가 어떤 논란이 터졌으니 나쁜 기회가 됐을 수도 있다.


아무튼,

사장님은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 지금도 사업을 잘 하고 계신다.

나는 사장님이 잘 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다룰 줄 알고, 사람을 성장시킬 줄 알고, 그의 성장을 통해서 본인의 사업을 키울 줄 아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이 알바 경험은, 이후 나의 모든 취업 자기소개서에 자랑처럼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본 받고 싶은 훌륭한 리더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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