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본 받고 싶은 리더가 아니다

<시니어 다이어리 in 판교> 시리즈

by 오네시보로


스타트업에서의 경험

스타트업에서 근무할 때 가장 좋았던 점은,

내가 시도한 일이 실제로 회사의 주요 업무로 반영된다는 것이었다.

데이터를 분석해 고객의 Pain Point를 찾아냈고, 개선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 아이디어가 실제 사업에 반영되었고, 고객의 VoC가 감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리더가 적극적으로 내 의견을 지지해주었다.


회사의 작은 부품처럼 일하는 내가 무언가 기여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회사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고, 업무에 대한 자부심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더 전문성을 갖기 위해 관련 자격증을 스스로 공부해서 취득했다.


그렇게 경험을 쌓아, 판교의 꽤 크고 이름 있는 IT 회사로 이직했다. 스타트업 동료들은 모두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판교에서 경험한 리더 이야기와 함께

"나는 저런 리더가 되지 말아야지." 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대기업이라고 하는데..?

처음 입사했을 때는 분사한 시점이라 생각보다 물음표가 가득했다.

'어.. 왜 이전 회사보다 못 하지?'


단 하나 좋았던 것은 복지였다. 분사했지만 대기업 자본을 등에 업은 터라, '이 회사는 돈이 얼마나 많길래 이런 것까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이 회사에 합류하며 기대했던 것은, 대기업인만큼 배울 점이 많은 좋은 동료들과 멋진 리더를 만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문제의 리더

첫째. 첫째. 업무에 대한 지식도, 관심도 없는 리더

현재형으로 쓴 이유는, 입사했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내 업무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고, 이 분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이해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리더가 조직을 관리할 수 있으면 됐지, 왜 실무 능력을 갖춰야 하느냐?"

이전 글에서 "밥버거 사장님" 이야기를 했었다. 밥버거 사장님이 나에게 엄하게 가르치실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이 밥을 잘 비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험과 지식이 있으니 업무를 맡기고 피드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경험도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실무자를 제대로 핸들링하고 피드백할 수 있을까?

내가 경험한 판교의 리더는 "데이터 분석가"가 필요해서 일단 채용했지만, "데이터 분석가"가 어떻게 일하는지 관심이 없었다. 데이터를 가공하고 시각화하고 분석하기까지 어떤 고민을 하고 얼마나 많은 리소스가 드는지 관심이 없었다.

그저 "그게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이야?"라는, 지극히 단순한 피드백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늘 반복하는 말은 "내가 이 쪽 분야에 지식이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였다.

그러다 보니, 나는 데이터 분석 실무자로서 고민을 나눌 리더가 없다는, 생각보다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리더는 헛발질 수준의 피드백만 했다.

매주 위클리를 할 때마다 같은 아젠다에 대한 피드백이 뒤죽박죽이었다. 본인의 피드백을 기억하지 못하고, 본인의 피드백대로 수행한 것을 '왜 이렇게 했냐'며 지적하곤 했다. '본인이 기억을 잘 못 해서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될 뿐이었다.


둘째. 고민도, 준비도 없는 리더의 피드백

우리 리더는 왜 헛발질하는 피드백을 했을까?

우리 리더의 출근 패턴은 다소 놀랍다. 오전 10시 30분에 미팅이 있으면, 10시 30분에 출근한다.

보통 5분 이상 지각도 한다. 자리에 가방을 놓고 노트북을 챙겨 회의실을 향한다.

늘 메신저로 "저 5분만요~ ^^"라는 일방적 양해 요청을 한다.

이것이 모든 미팅 때마다 일어난다.

미팅에 들어와서야 괜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첨부된 문서를 스캔한다.

앞에서 발표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도 리더의 표정은 알쏭달쏭이다. 발표자의 발표를 중간에 끊으며 질문하는 내용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마치 학창 시절에 "선생님의 강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엉뚱한 질문만 하는 학생" 같았다.

누가 봐도, 이 미팅을 전혀 사전에 훑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되는 피드백이었다.


One Paper Report가 필요한 것일까?

이전 이야기에서 나는 One Paper Report 이야기를 했다.

리더들은 바빠서 리포트를 다 읽을 시간이 없으니 한 장으로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리더는 1차 리더다. 실무자들의 업무를 직접 핸들링 해야 하는 위치다.

그럼에도 이 리더의 하루 중 절반은 담배 타임과 티타임이다.


One Paper Report가 필요한 수준으로 바쁘지 않을 뿐더러,

실무자들의 바로 위에 있는 리더라면 실무자들의 미팅 아젠다에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정확한 피드백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이 미팅은, 리더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유로 한 주 더 연장된다.

"조금 더 고민해보시고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보시죠 ^^"


실무자들은 이 위클리를 위해 긴장하고 스트레스 받아가며 미팅 직전까지 많은 고민을 한다.

준비와 고민이 없는 리더의 가벼운 피드백 한마디가, 실무자들의 의욕을 끌어내리는 순간이다.


그리고 다음 위클리가 되면, "왜 이 업무는 진도가 안 나가고 있죠?"라는, 또다시 헛발질 피드백이 시작된다.

그저 리더의 심기를 건드리기 싫은 실무자들은 "더 속도를 내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만다.


이 리더와 함께 하는 조직, 건강한가?
나는 저런 리더가 되지 말아야지.

(다음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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