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친구를 만났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다. 거기에 졸업 후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한 업계 동료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때 이 친구 집에 가서 밥을 많이 먹었다. 집이 좀 부유한 편이라 항상 식사가 풍성했다. 집에 아이 친구가 와서 밥을 먹는게 좋지 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친구 어머니는 한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밥상을 따로 봐 주셨다. 우리 집이 먹을 게 없을 정도로 가난하거나 그런거는 아니었지만, 정성스럽게 밥상을 차려서 대접을 받는건 정말 너무 좋았다.
대학교 때는 자취하던 이 친구네 집에 가서 밥을 많이 먹었다. 기숙사에 살던 나는 항상 배가 고팠다. 짬밥이라 영양가가 없어서 배가 쉽게 꺼진다고도 했다. 아마도 가족과 멀리 떨어진 탓에 생긴 심리적 허기였는지도 모르겠다.
단체 급식이라 반찬 맛이 또 먹고 싶은 맛이 아니었다. 친구의 집밥이 주는 그맛이 좋아서 그 친구 집에 자주 갔다. 정말 내가 많이 귀찮게 한 것 같은데, 한번도 눈치를 주지 않았다. 항상 음식은 맛있었고, 배는 불렀다. 잘 시간이면 따뜻하고 깨끗한 이부자리를 나에게 내밀곤 했다. 사각거리는 이불이 주는 첫 느낌이 마음에서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새 이불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는 그 마음이 고마웠다. 하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다. 바지 주머니나 가방 한 켠에 넣어두고 잊어버렸다. 철지난 바지에서 발견하는 지폐의 반가움 처럼 그때의 고마움이 살아난다.
결혼한 후에 친구네 집에 가서 잔치 국수를 먹은 적이 있었다. 친구는 어린 아이가 있었고 나는 아직 아이가 없던 시기였다. 아이를 한 눈으로 살피며 정성스럽게 국수를 삼고 계란으로 고명을 올리고 김치는 자박 자박 써는 솜씨가 정갈했다. 식탁을 차리고 음식을 옮기고 수저를 놓으면서 내심 대접받는 느낌에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아이를 돌보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을 것이고 집에 사람을 부르고 식사를 하는 일의 부산함은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을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 친구는 사람에게 밥을 맛있게 지어서 대접할 줄 알고,
가장 깨끗하고 정갈한 이부자리를 내어 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가 친해서가 아니라
그 친구는 그럼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사실 이 친구를 만나건 그의 시어머님이 상이 있어서였다. 홀로 지내시던 시어머님을 집으로 모시고 와서 이제 계속 같이 살기로 약속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숙환으로 돌아가시게 된 것이다. 섭섭하다고 했다. 그리고 어조는 담담했다.
하지만 그 시어머님은 친구가 마련한 식사와 이부자리에 무척 고마워했을 것이다. 무심한듯 내어주는 식사와 깨끗한 이부자리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고 존중받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생의 마지막 식사는 평소대로 정갈했을 터이고, 마지막 이부자리 또한 처음의 사각거림이었을 것이다. 이 친구에게 많이 고마워했을 것 같다.
그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에게게 그런 사람이었듯이
시어머님에게도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 그 친구가 이 브런치를 구독하고 있으니 언젠가 선물처럼 받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