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모모에서
자주가는 동네 까페가 있다. 거기에는 매장 안에는 테이블이 대여섯개가 있고 구석 쪽에 작은 방이 하나 있다. 그 방은 댓돌을 밟고 올라서는 구조이고 안에는 좌식 테이블이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온돌이 들어오는 방이라 까페로 단체로 오는 손님들이 들어가서 문을 닫고 차를 마시기도 하고, 자주오는 고등학생들이 들어가서 쉬고 나오는 방이기도 한다.
오전에 그 까페로 갔는데 마침 그 방이 비어 있었다. 아침부터 차를 가지고 다니면서 일을 본 탓인지 방안에 가서 발을 뻗고 쉬고 싶었다. "사장님 저 방에 가서 좀 쉬어도 되나요?" "그 방은 좌식이라 나이드신 분이 앉기에는 좀 불편하실 거예요" "....." 대충 이런 대화를 주고 받았다.
까페 사장님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보인다. 나랑 나이가 막상막하인지도 모르겠다. 근데 사장님의 말에 꽂힌 이유는 요즘 나이 들어보인다는 말을 내가 자주 듣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 독서모임에서의 일이다. 매번 멤버가 바뀌는데 이번에 새로운 멤버가 많이 참여하게 되면서 그 새 멤버들과 같이 그룹 토의를 하게 되었다. 30대부터 60대까지 섞여 있어서 나는 그 중에 중간 값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쏠려있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내가 나보다 더 선배인 사람과 나를 비슷한 연배로 비쳐지는 듯한 표현을 했는데, 아무도 거기에 토를 달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한 말에 내가 기분이 안좋아지는 상황이었다. 집에 돌아오면서도 내내 기분이 안좋았다. 젊어보이고 싶고 내심 젊어보인다는 말을 은근히 기대하는 나의 속내가 여지 없이 무너진 탓이다.
나이가 갑자기 들어 보일리는 없는 데 최근 그런 말을 자주 듣는건 이유가 있을 것만 같다.
아닌게 아니라 최근에 뷰티 툴을 두개를 새로 쓰고 있다. 하나는 전동 클렌저다. 하루에 한번 쓰는데 피부의 잔여물을 말끔히 없애는듯, 쓰고 나면 피부가 맑아진다. 그 후에는 레이전가 뭔가 하는 마스크를 쓴다. 이 두개를 한 달 정도 꾸준히 사용했다. 근데 내가 거울을 볼 때는 더 맑아진 것 같은데, '나이드신 분'이라는 표현은 더 자주 듣는것 같다. 인과관계가 명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최근의 일상의 변화가 그 정도란 것이다.
가족들은 내가 아직도 현역이라고 엄지척을 세우며 계속 일하고 있는 것을 좋아하고 나에게 쉽게 일을 놓지 말고 정년까지 일을 하라고 조언을 한다. 남들은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데 '아직 엄마를 찾는 사람이 있고 능력이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라는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남보다 나이가 10년은 젊어 보인다며 엄마가 감기라도 걸려서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 때론 힘들다고 하면 무슨 헷소리라며 나무라기까지 하는 데 듣는 나로서는 나쁘지만은 않다.이젠 나이가 들어서 힘에 부치다고 하면 아직 창창한데 무슨 마음 약한 소리는 하지도 말라며 손사레를 치기도 하는 모양이 곧이 곧대로 들으면 내가 우스워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들지만 나는 역시 난가 하는 근거없는 자만심도 들기는 든다.
30대를 보면 내가 30대의 마음이 되고, 40대를 보면 내가 40대라고 생각된다. 20대의 글을 보면 20대로 돌아가기도 한다. 내 마음은 그대로고 아직 어떤 것도 포기하지도 않았고, 또 남들은 이렇게 살아야 해~라며 나름의 인생 지혜를 설파하곤 하지만 난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구슬들을 어떻게 꿰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직업이 있어서 시계추처럼 시간되면 출근하고, 시간되면 퇴근을 할 수 있 있었다. 그러나 보니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세상이 옳다고 하는 것들에 나의 뼈와 영혼을 갈아넣은 수 많은 시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가치에 쏟았던 나의 시간과 열정과 노력과 애씀. 나 혼자 잘살자고 한건 아니지만 나를 제물 삼듯이 나 자신 자체를 바친 시간들. 해만 보고 가느라 나의 얼굴이 검게 타는 지도 몰랐다. 해를 보고 있으니 내가 해라도 되는 줄 알았나보다. 그 시간을 지나 뒤돌아와서, 지나온 시간 속에 놓인 나를 바라보니 내가 애처롭게 여겨지는 건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해만 보느라 해에 가려진 별을 못봤고 해 이하 어떤 것도 그 빛의 귀함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했다. 나를 너무 오랜 시간 방치했다. 이제 지나온 내가 보이는 걸 보니 그 시간들을 벗어나려나 보다 싶다. 앞으로 나를 어떻게 건사하며 다가오는 시간을 채워야하는지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다. 좀 더 일찍 나를 돌아봤어야 하는 건데 그렇지 못했음에 나에게 미안하다.
"나이듦이 미의 기준이었던 적은 없었다. 젊음은 항상 옳다"고 어떤 분이 힘주어 말을 했었다. 그 분은 뷰티 관련 일을 하고 있는 분이기도 하다. 꼭 그래서 만은 아니겠지만 나이 듦이 아름다움의 기준에 적합하지는 않다. 하지만 세상에는 아름다움이란 가치만 있는 것도 아니다. 진선미라는 단어만 보더라도 미는 세가지 가치 중에 하나일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 그리고 가족들이 보는 나와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나를 대하는 시각에서조차 다른 사람 마음이나 생각까지 내가 신경쓰고 배려해야 할 일인가 싶다. 그건 그들 몫이다. 내 생각과 그들의 생각이 같은 필요도 이유도 없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보는 나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내 나이를 받아들이건 받아들이지 않건 그건 나의 영역이다. '나이가 들어보인다'라거나 '젊어보인다'에 휘둘릴 일이 아니라 내가 나의 시간을, 나의 얼굴을 어떻게 책임지고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최근 2년 열심히 읽고 열심히 썻다. 그랬더니 사람들에 대해, 인생에 대해 보이는게 있었다. 책을 열심히 읽으면서 이해가 안가던 타인, 세상이 이해가 되었다. 이해가 되면서 세상이 곧 내가 아니고, 세상 속에서 사는 나와 세상은 서로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사람은 다 다르고, 자기의 논리로 살아간다는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랬더니 사람들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비로소 편해졌다. 이제라도 사람들을 알게 됐으니 다행이다. 독서와 글쓰기를 안했다면 계속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채, 세상을 손에 부여잡고 싶어, 손아귀에서 놓지 못한채로 스러져갔을지도 모른다. 움켜쥐려 할 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이나 모래를 내 손이 작은 탓이다, 내 손모양이 잘못됐다라며 나를 탓했을 것이다. 물은 물이라서 손에 움켜켜쥘 수 없는 것이고 모래는 모래라서 또 손바닥으로 움켜쥘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세상의 수많은 가치가 다 나름의 속성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책을 더 열심히 읽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책을 읽으며 알게 된 것들을 통해 세상을 보고, 후회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독서를 인생 과제로 삼고 나아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