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에 다시 마주하는 <데미안> 2.
어디서나, 어머니 아버지가 계시던 우리 집안에서만 빼고는 어디서나 이 격렬한 두번째 세계가 솟아나오고 향기를 뿜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좋았다.
...그 모든 다른 것들, 소란하고 요란한 것, 음침하고 폭력적인 것이 존재하며 그래도 그런 것들로부터 한 걸음이면 어머니한테로 피신할 수 있다는 것도 경이로웠다.
...그리고 가장 기이했던 것은, 그 경계가 서로 닿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세계에 속했다. 비밀에 에워싸여 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그랬다. 나 자신이 가장 심하게 그랬다. 물론, 나는 밝고 올바른 세계에 속했다. 나는 내 부모님의 자식이었다. 그러나 내가 눈과 귀를 향하는 곳 어디에나 다른 것이 있었다. 나는 다른 것들 속에서도 살고 있었다.
...한동안 내가 가장 살고 싶어한 곳은 금지된 세계 안이었다. (p.12)
그리고 밝음 속으로의 귀환은 - 그것이 제 아무리 필연적이고 제 아무리 선하더라도 - 덜 아름다운 것 보다 지루한 것, 보다 황량한 것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인생에서의 내 목표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처럼 되는 것, 그렇게 밝고 맑게, 그렇게 뛰어나고 단정하게 되는 것임을 나도 때로는 알았다. 그러나 거기까지 이르는 길은 멀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학교에서 배겨내야 하고 대학 공부를 해야하고 온갖 시험들을 치러야 했다. 그 길은 자꾸자꾸 또 하나의 어두운 세계 옆을 지나거나 그 세계를 꿰뚫으며 이어져서 그 세계에 머므로고 그 안으로 가라앉아버리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p.13)
<데미안, 헤르만 헤세, 민음사,2015.> 중
Q. 인생에서의 목표가 아버지, 어머니처럼 되는 것이라...그게 과연 가능할까?
살면서 엄마, 아빠처럼은 안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며 산 적이 많을까, 엄마, 아빠처럼 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적이 많을까? 아니 엄마, 아빠처럼 되는 것이 나의 인생의 목표가 된 적이 있었던가?
술을 드시고, 담배를 피우시던 아빠의 모습을 너무나 싫어하던 엄마를 보면서 아빠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다짐을 했다던 오빠는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담배를 피우고, 술을 열심히 마셨다. 아빠처럼 자신도 술을 잘 마시는 줄 알고 열심히 열심히 마셨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스스로 느낀 것이 아니라 엄마가 싫어해서였다. 우리는 그렇게 엄마가 싫어하는 아빠의 모습은 그냥 따라하면 안되는 것처럼 여겼다. 그런데 엄마의 눈을 벗어나면서, 엄마의 아빠에 대한 불만이 들리지 않는 곳으로 각자 떠나고 나니 그것은 스스로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엄마가 싫어하니까...였던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스스로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세상 착한 아들로 살던 오빠는, 학사경고를 받았다.^^
'어떠해야한다'라는 울타리에 스스로 갇힌 것인지, 주변에 의해 그렇게 갇히게 된 것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오빠는 그 틀을 부수고 나오기 시작했다.
오빠를 보면서 느꼈다. 사춘기를 제대로 겪지 않고,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사는 아이들이 그것이 자신이 원하던 삶이었는지, 부모님이 원하던 삶이었는지를 깨닫기 시작하면서 더 큰 방황과 아픔이 동반된다는 것을...
물론 엄마, 아빠가 만든 틀이라고 하기엔 엄마, 아빠는 너무 원하는 게 없긴 했다. 단지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할 수 있는 것은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을 들어가서 효도하는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만들어낸 틀이라고 하는 것이 오빠한테는 더 맞았을 지도 모르겠다.
오빠의 성적은 전국 상위 몇 %에 들어갈 정도였고, 그렇게 오빠는 좋은 대학을 갔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 마치 그 길이 자신의 길로 정해진 것처럼...
그런데 지금 오빠는 고등학교 수학교사로 즐겁게 삶을 누리면서 세상 편하게 살아가고 있다.
참 다행이다.
자신의 자리가 그곳이 아니라는 것, 자신이 원하는 삶이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오빠는 누구나 부러워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편입을 해서 교사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친척들이 모이면 늘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우리 부모님은 전혀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왜 친척들은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거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부모님이 고생하는 것을 보면 그런 결정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자신들의 아들에게 못하는 이야기를 왜 우리에게는 그렇게 쉽게하는지...거참.)
그때, 엄마, 아빠는 단 한마디도 반대를 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아들의 삶이 어떠해야한다고 틀을 정해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을 했고, 충분히 생각을 했을 것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고, 오빠를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빠를 좋은 대학, 좋은 직장으로 밀어넣었던 것은 엄마, 아빠라기 보다는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라는 틀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했다.
내가 동생이기는 하지만 그 틀을 먼저 깨고 나온 것은 나였다. 그래서 오빠는 지금도 동생이지만 내가 먼저 경험하고 느낀 세계에 대해서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그런 쪽으로는 니가 나보다 경험이 많으니까...'라며.
서문에 적혀있던, '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라는 말이 아마도 이 소설을 읽는 내내 회자되지 않을까 싶다.
살아가면서 환경이나 주변의 상황으로 인해....라는 이야기를 종종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또한 내가 만들어놓은 틀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이 꼭 그러해야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대학을 가고 회사를 들어간 오빠를 보면...오빠는 스스로 만들어놓은 틀 안에 갇혀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보면 나 또한 또 다른 나만의 틀이 있다. 마치 그것이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리화 시키면서...그런데 그것은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정말 아무도 모른다.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자신 뿐이다'라는 헤세의 말처럼...
누구나 내 속에 솟아나오려는 것을 마주하지만 그것을 살아보려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전히 사춘기와 갱년기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 속에 무엇이 자꾸 솟아나오려 하는지를 들여다보면서 인정하고 살아보려한다는 것이고, 그런 용기를 낸 오빠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그러면서 느꼈다. 그 총량의 법칙이라는 것은 정말 존재하는 것 같다고...^^
사춘기에 할 건 사춘기에 해야지 뒤늦게 하니 본인도 주변 사람도 너무 힘들다는 것...
하지만 그 또한 감당할 수 있는 나이에 하는 것이 다행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90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주변의 탓만 하면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어른들을 보면...
지금이라도, 아니 죽기 전에 내가 나를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