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다시 마주하는 <데미안>1.
내 속에서 솟아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 헤르만헤세, 민음사, 2015.중에서> , p. 7
그러게...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울까? 아마도 솟아나오려는 것, 그것을 인정하고 마주하고 알아차리는 것부터가 너무 어려운 일이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 그것부터라도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지않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고,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며 주목할만한 존재이다. 세계의 여러 현상이 그곳에서 오직 한번 서로 교차되면, 다시 반복되는 일은 없는 하나의 점인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한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떻든 살아가면서 자연의 뜻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이로우며 충분히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데미안, 헤르만헤세, 민음사, 2015.중에서>, p. 8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경이로우며 충분히 주목할 만한 존재라는 것, 이토록 아름다운 말이 있을까? 이제서야 이 말의 의미들을 알아가고 있다. 그 자체만으로 경이로운 존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모호하게 어떤 사람은 보다 투명하게,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껏 노력한다.
<데미안, 헤르만헤세, 민음사, 2015.중에서>, p. 9
투명하게 자신이 되는 것이 두려워, 모호하게 노력하며 살았던 것 같다. 나는.
그런데 그 또한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을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위안이 된다.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껏 노력한다고 이야기 해줘서...
그래,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껏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이제 또 다른 방법의 노력, 투명하게 자신이 되어보는 것, 그것을 해보고자 한다. 나만의 방식으로.
'난 왜 이 책을 이제서야 접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일 조금 더 빨리 접했더라면 나만의 생각들을 정립시켜나가는데 도움이 되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초등학교 때 읽었던 딸의 느낌은 어떠했는지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문득...
<2020.12.5> 필사 노트 중에서...
<데미안>을 읽고 써 놓은 첫 문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데미안>을 이야길 할 때도 나는 읽지 않았었던 책이었다. 나의 고전 읽기는 대부분 아들과 하브루타를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항상 고전을 읽을 때는 남편에게 아이들과 읽을 건데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라고 묻곤 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규리가 써 놓은 글들을 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면, 고전 소설에 있어서 우리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선배이다.
어쨌든 아들과 수업을 위해 읽었던 책들을 다시 마주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아니 감동스럽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그래서 또 기대가 된다. 결이 다른 소설을 마주하는 지금 이순간.
그리고 <데미안>이 나의 생각을 정립해 나가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