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침공
무기력생존일기 2
2.
그래서... 그래서 밤사이 지구는 폭발하지 않았고, 나와 상관없이 하루는 시작되었다.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강박이 있었는데 무기력이 그 강박을 이겨버렸다. 왜 그래야 하는데 그래봤자 무슨 의미야. 마음의 병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샤워도 하지 않았고, 머리도 감지 않았고, 세수도 하지 않았다. 못했다고 표현하고 싶지만, 그 잠깐 깨작거리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의미부여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나? 고장 난 시계처럼 바늘이 앞 뒤로 흔들리기만 할 뿐 나아가지 못했다. 하루 종일 같은 자세로 스마트폰 배터리가 다 방전될 때까지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해가 뜬것 같았는데 금세 방이 어두워져 버렸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이 싫어 순간순간 욱하고 가슴이 터질 듯이 화가 났다.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꿈속에 작디작은 아이가 커다란 짐 가방 안에서 울고 있었다. 초록색 타탄체크무늬의 이민가방.
초3학년 때였나? 친구들은 하교 후 놀이터에서 놀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무조건 집으로 내달려가야 했다. 내 키보다 더 높은 담벼락들 골목을 지나 뛰고 또 뛰어도 집은 아직도 멀고 내 다리는 느리게 느껴졌다. 다세대 주택의 계단을 헐레벌떡 올라 낡은 현관문을 열어젖히자마자 확인했다. 끼익 거리는 불쾌한 소리가 내 심장소리 같았다. 질척이는 운동화를 대충 벗어던지며 거실을 재빨리 거실을 훑어보았다. 초록색 체크 짐가방이 있는지... 그리고 가방 지퍼를 열어 없어진 물건이 있는지 살폈다. 모든 것이 제자리인 것을 확인한 후에야 어깨에 매여있는 책가방을 벗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체크무늬 이민가방은 우리 엄마의 것이었다. 엄마가 자신의 화장품과 옷가지들을 구겨 넣은 가방이 거실 한가운데 떡하니 놓았던 이유는 바로 아빠 때문이었다. '나는 언제든 이 집을 떠날 수 있다'라는 아빠를 향한 무언의 협박이었다. 회피성향이 강한 엄마는 알지 못했다. 그 협박이 번지수를 잘 못 찾아 딸에게 향했다는 것을...
엄마가 언제든 우리를, 나를 버리고 떠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착한 딸로 살았다. 세상에 홀로 남겨질 것 같은 슬픔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웠다.
"너는 왜 살아?"
"왜 살아가는 거야?"
"태어난 김에 살아야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