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옥상에서 내려온 나는 할머님이 깨시지 않게 살살 들어와 작은 방에 들어 가 누웠다. 그러나 이런저런 생각에 잠은 쉽게 들지 않았다. 어젯밤 그 일로 밤새 열이 나고 몸살에 끙끙 앓아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결국 아침엔 일어나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시는 할머님은 그냥 감기몸살로 조금 늦게 일어나는 줄로만 아셨다. 아무리 아파도 일어나 할머님 진지는 꼭 챙겨 드렸었는데 오늘은 그러지 못했었다. 할머님도 걱정이 되셨는지 큰따님한테 약을 사 오게 했고 약을 먹어도 아픈 것은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일어날 수 있었다. 또 아프다는 핑계로 마냥 누워 있을 수도 없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또 몇 달이 지났다. 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집안에 말과 웃음이 사라진 날이 많았다. 나는 집안일을 하면서 꼭 해야 할 말과 일만 했다. 누가 집에 와도 집안의 공기가 차갑고 무겁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추석이 지난 어느 날 여름이 지났는데도 날씨는 더웠다. 할머님은 굳게 정하신 마음을 나를 불러 앉혀놓고 이야기하셨다. 그 보다 앞서 오래전에 내가 아플 때 할머님은 혼자서 마음을 결정하신 것 같았다. "우리 그만 헤어지는 게 좋겠다. 너도 아픈데 집에 가서 쉬고 치료하면서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잘 살길 바란다". 고 하셨다. 갑자기 무슨 말씀인지 알 수가 없었다. 깜짝 놀라서 할머니 왜 그러시냐고 무슨 말씀이냐고 저 아프지 않고 다 낳았으니 걱정하시지 말라고 말씀드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또 다른 사람을 구할 때까지만이라도 있겠다고 했지만 할머님은 들은 척도 안 하셨다. 이미 따님들과 다 의논을 하시고 결정을 내리신 것이었다. 그동안 나를 보내야지 하면서도 혼자서 살 자신이 없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망설이고 또 망설였었는데 그렇게 마음먹고 다짐한 것이 이렇게 늦었다고 하시면서 이제 헤어져서 사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 소리를 듣고 좋았겠지만 그동안 아무런 언질도 없이 갑자기 그러시니 나는 내가 무엇을 잘 못해서 그러는 줄 알고 이유를 몰라했었다. 할머님이 뭐라고 하셔도 나는 내 할 일만 했었다. 그러나 할머님은 살림살이를 아무것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할머님이 직접 진지를 챙겨드시고 설거지를 하고 옆에서 내가 도와 드리려고 해도 손도 못 대게 하시면 서 야단을 치셨다. 가라고 하는데 왜 말도 안 듣고 힘들게 하냐고 하셨다. 할머님 혼자서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냐고 했더니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할머님과 내가 이렇게 실랑이 벌이는 것을 큰 따님이 어떻게 아시고 이야기를 했다. 할머님은 우리들이 돌봐드릴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라고 타일렀다. 진작에 보내줘야 하는데 그동안 힘들게 했다고 하면서 할머님도 쉽게 결정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할머님이 더 힘들게 하지 말고 짐을 챙기라고 하셨다. 우리 좋게 헤어지자고 다시 한번 말씀을 하셔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짐을 챙기기로 했다. 옷을 넣을 것이 마땅치 않아서 트렁크를 사다가 그동안 사서 읽었던 책과 일기장 옷가지들을 챙겨 넣었다. 내가 짐을 챙기는 것을 보고 나서 할머님은 안방으로 가셨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따라갔다. 그동안 여러 날 할머님이 말씀하셨어도 헤어진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는데 막상 짐을 챙기고 할머님을 보고 있으니 눈물이 났다. 내가 울고 있으니 할머님도 같이 눈물을 보이셨다.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고 할머님과 같이 잠을 잤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날이 밝아 오고 할머님과 같이 아침을 먹고 설거지와 청소를 하고 할머님께 인사를 드렸다. 함께 오래 있었던 세월만큼 헤어지는 시간도 길었다. 할머님께 다시 한번 작별 인사를 드리고 나오려는데 발이 무거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나를 할머님이 어서 가라고 떠밀다시피 나는 밀려 나오고 말았다. 대문 밖으로 나오니 미리 정한 것도 아니어서 어디로 갈지 잠시 망설였었다. 그리고 서울에 사는 언니한테 전화를 걸고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언니한테 간다고 말을 했지만 깜짝 놀라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간의 이야기를 하고 밤새 잠을 못 잤다. 다시 아침을 먹고 할머님댁으로 갔다. 할머니 하고 부르면서 집안으로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거실에도 주방에도 할머님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어디를 가셨을까 가실 데도 없는데 불안한 마음에 걱정이 되어서 보이지 않는 허공에 대고 할머님을 소리 질러 불렀다. 그런데 뜻밖에도 할머님은 목욕탕에서 샤워를 하고 계셨다. 할머님이 놀라서 네가 어쩐 일이냐고 물으셨다. 할머님이 걱정이 되어서 왔다고 하니 괜히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하셨다. 네가 마음이 여리고 착해서 그런 모양인데 걱정하지 말고 가라고 했다. 나는 정말 걱정이 되어서 할머님이 진지도 안 드시고 속상해서 누워 있을 것만 같아서 마음이 편지 않아서 온 것이었는데 내 착각이었는지도 몰랐다. 할머님 등을 닦아 드리고 욕실 정리를 하고 나니 할머님이 다시 그러셨다. 지금이 헤어지기 좋은 시기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더 있으면 사이가 나빠져서 이렇게 찾아 올일이 없어지는 것보다 낫지 않냐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네가 없어도 이렇게 밥 잘 먹고 지내고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할머님댁에서 6년 가까이 살면서 살림살이도 배우고 좋은 일 안 좋은 일을 겪으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을 다 들었지만 그것들을 억지로 떼어내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가라고 해서 쫓겨나듯이 나오기는 했지만 언제까지 함께 있을 수도 없는 일이기도 했다. 할머님 말씀처럼 더 같이 있으면 또 힘이 들 수도 있어서 할머님이 하시는 데로 따랐다. 어제 보다는 헤어지는 것이 수월했다. 그렇게 나는 마음 편히 할머님댁에서 나왔다. 어제 무겁게 걸어가던 길을 오늘은 마음 가볍게 해가 지는 것을 보며 걸어 나왔다.
이것이 할머님과의 마지막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할머님을 찾아가 뵙지 못했다. 그것이 늘 마음 한구석이 무겁고 힘들었었다. 그래서 또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난 그 일과 연결 짓는 버릇이 생겼다. 생활이 힘들어서라기보다는 완전히 잊고 싶어서 안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작년 연말에 이 이야기를 끝내려고 했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다음에는 옥이의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어머니와 막내딸이 함께 했지만 다음 편에서는 옥이가 제2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삶을 헤쳐나가는 이야기로 그래서 제목이 어머니의 막내딸로 바꾸어서 들려 드리겠습니다.
항상 글을 쓸데면 며칠을 머릿속으로 구상을 하고 또 컴퓨터에 앉아서 초안을 쓰고 그대로 둔 상태에서 이튿날 다시 글을 이어서 쓰고 저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행을 했더니 로그인으로 넘어가서 다시 들어가니 하루 종일 걸려서 쓴 글이 다 사라지고 초안 써 놓은 글만 남아 있었다. 한 번 그런 적이 있어서 조심하고 잘한다고 했는데 어제 또 그런 일이 생겼다. 밤새 다시 기억을 더듬어서 이 글을 완성했다.
브런치 작가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즐거운 설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