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막내딸(37)

떠돌이처럼

by 옥이

할머님댁에서 나온 나는 언니네서 며칠 지내기로 했다. 그동안 오고 싶어도 맘대로 못 오고 자고 싶어도 잘 수 없었던 언니네였다. 병원도 가서 약도 타야 하고 아직은 마음의 안정이 필요하다고 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제 맘 놓고 쉴 수 있게 되어서 있고 싶을 때까지 있으려고 했고 언니도 쉬면서 어떻게 할 것인지 정 하라고 했다. 그동안 영양가 있는 몸보호 하는 맛있는 것도 해줄 테니 먹고 서울 구경도 하면서 천천히 내려가라고 해서 나도 그러려고 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데서 생겼다. 단칸방에 어린 조카와 나까지 끼어서 네 식구가 지내기에는 좁았다.


무엇이든지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한 가지 일이 생긴 것이었다. 형부는 술을 너무 좋아했다. 옛말에 술 한동이를 짊어지고 가라고 하면 못 가지만 그 한동이를 마시고 뱃속에 짚어 넣고 가라고 하면 그것은 갈 수 있다는 속답처럼 형부는 술을 너무 사랑했다. 술만 있으면 무조건 일이 해결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술주정이 심하다는 것이다. 한번 드시면 끝장을 보는 성격에다가 술을 드시고 나면 그 술이 다 깰 때까지 혼자서 말을 하는 것이었다. 상대방이 듣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또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도 없는 말들을 밤새도록 혼자서 하는 것이었다. 체구는 작으신데 술을 드시면 주무시지도 않고 맑은 정신이 될 때까지 잔소리를 하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전에는 술을 드시면 잔소리를 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했고 이 정도로 심한 줄은 처음 알았다. 나는 언니가 이렇게 속 썩고 사는 줄도 몰랐다. 형부의 주정은 저녁부터 새벽까지 이어졌고 밤새 잠들은 한숨도 못 자고 날이 밝아서 나는 짐을 챙겨서 나왔다. 언니는 못 가게 했지만 나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눈치가 보여서 마음 편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오면서 속으로 다짐을 했다. 나는 절대로 술 먹는 사람한테는 시집을 안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형부들이 많은데 세분은 말 그대로 술고래였다. 순서대로 큰 형부는 대단히 심하고 셋째 형부는 꽤 심하고 넷째 형부는 조금 심한 편이었다. 꽤 심한 셋째 형부가 그 정도였다.


집에 오기 전 버스를 타고 봉천동 당숙아주머니댁에 갔다. 시골에서 논밭 팔고 집 팔아서 서울로 올라오신 것이었다. 그동안에는 가끔 한 번씩 잠실에서 당산동으로 할머님심부름을 오고 가면서 한 번씩 들리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잠을 자고 가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가니 아주머니도 반갑게 맞아 주었고 오빠언니들도 좋아했다. 식구들이 많으니 정신은 없지만 재미있게 지내고 있었다. 객식구가 늘어서 밥 해주는 올케언니는 싫을 수도 있었지만 오래 있지 않을 것이라 크게 마음은 쓰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시어머님 시동생 시누이가 둘 나까지 여덟 식구가 있었으니 미안하기는 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도 집에는 있지 않았다. 집에는 짐만 갖다 맡겨 놓고 다시 서울로 왔다. 서울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엄마랑 같이 있으면 나 때문에 신경 쓰실 것 같아서 오히려 나와 있는 것이 더 좋았다. 떨어져 있을 때는 엄마와 같이 있고 싶어서 몸살을 알았는데 막상 같이 있게 되었을 때는 그러지 못했다. 또 작은 올케언니와 있게 되니 조금은 불편해서 가기가 싫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세곡동에 사는 이종오빠네로 갔다. 오빠네는 화분 농작물을 키우는 일을 하니 바쁠 때는 일손도 부족하고 또 조카들이 어리니까 봐주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말 그대로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싫어할 일도 이유도 없었다. 조카들이 어린이집에 가고 학교 가면 데려다주고 그 틈에 농장에서 포터에 흙도 담아주고 잔심부름도 해주고 화분에 물도 주고 그러다 조카가 끝나는 시간이 되면 동네 어귀에 나가서 받아오고 집안도 치워주고 그렇게 날마다 바쁘게 지내고 있으니 날짜 가는 것도 모르고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여름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개울물에 빨래도 하고 조카들과 물장구도 치고 놀았다. 또 가끔 주말에는 오빠가 내가 좋아하는 극장구경도 시켜 주었다. 내가 오래 있으니 서울언니가 나무랐다. 방도 하나인데 오빠언니 불편하게 얼른 집에가라고 눈치도 없다고 하면서 왜 그렇게 오래 있냐고 빨리 가라고 핀잔을 주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언니네 집에 있을 때 형부가 뭐라고 한 것은 아니었나 그래서 술을 많이 드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니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잘 몰랐던 철부지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고 있으니 뜬금없는 맞선자리가 들어왔다. 올케언니가 선을 보라고 했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없다고 싫다고 거절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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