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선 2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고 걸어가다를 반복하고 나서 그 사람은 돌아왔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 사람은 내가 마음에 안 들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개해 주신 할머님과 그 따님인 언니도 그렇고 다 잘되기를 바랐다. 나보다도 더 할머님이 마음에 들어 하셨다. 인물도 훤하고 키도 크고 할머님이 엄마한테 성사가 잘 되면 결혼한 따님 중에서 막내사윗감이 제일 좋을 거라고 하셨다. 엄마는 할머님의 그 소리에 웃어넘기셨고 나는 속으로 아니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할머님 따님집에서 엄마랑 하룻밤을 더 보내고 나서 엄마는 시골로 내려가시고 나는 다시 이종오빠네로 가서 일손을 도와주기로 했다.
맞선을 보고 온 것을 올케언니도 알고 있어서 그런지 한 번씩 농담으로 '아가씨 그 사람 잘 생겼다면서요. 결혼까지 생각하는 거예요? 좋겠다.' 나는 아직 몰라요 연락도 없었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었다. 하루 이틀 전화가 오지 않아도 그쪽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전화벨소리만 들리면 언니는 날더러 받으라고 했고 그럴 때마다 맞선 본 남자한테서 온 것이 아니냐고 뭐라고 하냐고 전화를 끊기도 전에 질문을 했었다. 그러나 전화는 없었고 헤어질 때 이미 아무런 언질이 없어서 틀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도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거리에 세워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무엇보다 혼자라는 것이 걸렸었다. 그래도 내가 기억하는 맞선 본 남자 중에서 유일하게 기억하는 이름이었다. 성도 모르고 봄 삼월에 태어났다고 춘 0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웃었던 생각이 났다.
그렇게 이종오빠네서 있다가 추석 때 집으로 내려갔다. 아직은 가을 국화가 나오는 시기여서 바쁘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오래 있는 것도 안 좋은 것 같아서 명절을 보내려고 내려왔다.
시골에 내려오니 너무 좋았다. 엄마랑 같이 잠도 자고 작은올케언니가 해주는 밥 먹고 있으니 너무 좋았다. 엄마가 텃밭에서 일하시면 잠깐씩 거들어 드리기도 하고 밤에는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잠도 들었다. 마음속으로는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그래도 참으로 오랜만에 가져보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서울 할머님댁에서의 일들이 조금씩 치유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마음 한구석에 늘 자리 잡고 있었지만 눈으로 보이지 않고 몸도 떨어져 있으니 부담감도 줄어들었다. 할머님댁에서 나와서도 한 동안 자리를 못 잡고 방황했었는데 이제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집은 엄마랑 같이 살던 내 고향집이 아니었다. 이곳은 두메산골이라고 부르던 아주 어렸을 때 학교 다니던 당숙아저씨네서 살던 곳과 조금 가까운 곳으로 오빠네가 이사를 온 것이었다. 둘째 작은오빠랑 막내오빠가 마련한 집이었다. 이곳에서 엄마와 작은오빠내외랑 오빠랑 똑 닮은 조카딸이랑 살고 있었다. 이사를 온 지는 조금 됐지만 나는 나가 있어서 동네사람들과도 안면도 전혀 없었다. 시골은 대문을 항상 열어놓고 있어서 오다가다 마실 오시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더구나 이사를 왔으니 더 심했고 이것이 좋게는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오빠 동생이라는 것도 알고 결혼도 안 하고 또 나이가 차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오시는 어르신들마다 좋은 사람과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인사를 건넸다. 어느 어르신은 울아들 있는데 며느리 삼고 싶다 하시는 분도 있고 또 울아들이 둘이라면 며느리로 들였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어르신이 있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시골에 사는 노총각들이 많았다. 그래서 한 때는 장가를 들려면 일단 서울 가서 직장을 다니다가 여자친구를 사귀고 장가 들어서 농촌으로 내려와서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언제나 여자가 귀한 시절이라 어르신들이 그래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다.
시골에 있으니 오랜만에 헤어졌던 친구도 만나러 찾아다녔다. 초등학교 때 보고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동네를 찾아가 한 친구를 만나게 되니 다른 가까이 있는 친구들도 만나게 되고 결혼해서 사는 친구도 만날 수 있었다. 십 년도 더 넘었는데도 친구들은 변하지 않았고 동네도 여전했다. 전학을 온 상태라서 친구네를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머물던 곳 가까이에 사는 친구들만이라도 만난 것이 참 다행이었다.
그렇게 시골에서 친구도 만나고 재미있게 지내고 있는데 또 맞선자리가 들어왔다. 나는 참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가만히 나를 놔두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좀 편하고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그런 것들이 나를 괴롭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또 밖으로 나가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중신하시는 아주머니는 아랫집 사시는 아주머니시고 시어머님 되시는 분이 직접 나설 수가 없어서 아랫집 아주머니를 내세우신 것이었다. 한동네에 살고 술 담배도 안 하고 착하다고 했다. 엄마는 시어머님 되실 분을 알고 계시지만 나는 얼굴도 모르고 그 착하다고 하는 남자는 길에서 본 적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