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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 Jul 23. 2022

마산여고 앞의 김가네

어릴 적 먹던 추억의 음식

"여고 앞 하교 시간의 풍경" 하면 단짝과 팔짱을 끼고 나오는 여학생들, 재잘재잘 수다 떠는소리, 문구류 및 액세서리 따위를 파는 팬시점, 그리고 분식집에 모여 앉아 떡볶이며 순대를 먹는 모습 등이 떠오른다. 유서 깊은 여고 앞에는 그만큼이나 유서 깊은 분식집이 있기 마련이다.


마산에서 가장 유서 깊은,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마산여고 앞에는 이상하게 그와 어울리는 분식집이 없었다. 아니다. 있었는데 없어졌다. 1학년 때 학교 정문의 슈퍼에서 파는 떡볶이와 토스트는 줄을 서 가며 사 먹었는데, 슈퍼가 주인이 바뀌면서 맛이 변해버려 장사가 되지 않자 문을 닫은 것이다. 그 주변에 두어 개 있던 분식집들도 비슷한 시기에 문을 닫았다.


야자 후 주린 배는 학원으로 걸어가는 길에 있는 닭꼬치 집에서 채울 수 있어 하교 후 갈 수 있는 떡볶이집이 없는 것이 아쉽지 않았다. 또 떡볶이가 먹고 싶은 날에는 조금만 더 발품을 들여 창동으로 나가면 더 맛있는 떡볶이 포장마차가 즐비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험기간이라 석식이 나오지 않는 날의 저녁밥이었다. 우리는 그럴 때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때우거나 학교 근처 아파트 상가의 김가네로 갔다.


김가네에 처음 갔을 때는 주로 참치김밥 I과 참치김밥 II를 시켰다. 그 둘의 차이는 마요네즈가 김밥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의 차이였다. 김가네의 김밥은 무엇을 시키든 속이 든든하게 들어있어 매우 굵은 것이 특징이었다. 그리고 곁들이는 음식은 그날의 지갑 사정과 함께 한 친구들의 취향에 따라 스페셜 떡볶이가 되기도 했고 냄비 우동 혹은 계란 라면 등이 되기도 했다.


김가네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다양한 메뉴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소고기 볶음으로 뭉친 주먹밥에 김가루를 굴린 못난이 김밥을 먹기도 했고, 매콤한 양념장에 버무린 깻잎과 양배추를 바삭하게 지진 만두피에 싸 먹는 보쌈 만두를 시켜 먹기도 했다. 스페셜 떡볶이에 들어 있는 우동 사리가 지겨우면 라볶이를 시켜먹기도 했다.


고 3이 되고 집보다는 학교와 독서실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김가네는 주말 식사를 책임져주었다. 학교에 가지 않는 일요일, 학교 앞 독서실에 가기 싫을 때는 김가네의 즉석 떡볶이를 생각하며 힘을 내 학교 가는 버스에 올랐다. 즉석떡볶이는 위에 올라가는 고명에 따라 종류가 다양했는데, 고기, 김치, 모둠 따위의 종류가 있었던 것 같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주말, 독서실을 정리하며 먹은 마지막 저녁밥도, 수시에 붙어 김가네에서 알바를 시작한 친구와 함께 먹은 콩나물 돌솥밥이었다.


김가네 분식의 인연은 서울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서울 큰 이모가 아는 분이 운영하시던 고속터미널의 김가네는 먼 길을 달려 서울로 유학 온 조카에게 이모가 사준 서울에서의 첫 식사였다. 대학원을 다니던 때, 일주일에 두 번은 경기도에 있는 학교 연구소의 조교로 출근해야 했다. 조교로 처음 근무하던 날, 산속에 있는 연구소의 점심시간에 새내기 조교가 왔다며 선배가 크게 한턱낸 식사는 김가네의 김밥과 떡볶이, 어묵이었다. 그 이후로도 교직원 식당의 밥이 시원찮은 날이면 배달이 되는 유일한 식당인 김가네에서 이것저것 시켜 선배들과 나눠먹었다.  결혼 전 잠시 일했던 교수님의 사무실이 있던 충무로에서도 김가네는 근처 남산에 피크닉 온 기분을 내고 싶은 날 나의 점심 도시락을 책임져 주었다.


요즘은 김가네며 장우동 같은 김밥집들이 전에 비해 많이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오래된 작은 시골 동네라 그런지 아직 김가네 김밥집이 있다고 들었다. 언제 한번 들러 옛날 그 김밥 맛이 나는지 맛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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